생각해본다. 경력이 단절되면 나는 뭘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과거 영광들이 모두 사라지면 내겐 뭐가 남을까. 공부해 대학 가고 공모전에 자격증 준비에 대외 활동에 그리고 입사지옥까지. 근데 이 모든 게 멈춰버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아이러니한 건, 이 경력이 너무 좋고 이 일을 너무 사랑해서 멈추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그냥 항상 뭔가를 하던 내가 멈춰버리는 게 실은 제일 무섭다. ---「비운의 종족 경단녀」중에서
모유수유를 권장하는 이들은 말한다. 좌젖과 우젖을 고루고루 30분 이상 수유해야 아이가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고. 나도 그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내 가슴을 내어주고 영혼이 강탈당한 채 30분씩 수유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소인가 소가 나인가 하는 생각을 멈추지 못하고 흥얼거리는 것이다. 저기 가는 저 기러긔 제 좆는가 내 좆는가, 여기 있는 이 여자는 젖소인가 이겼소인가. 그렇게 중얼중얼거리다가 채널을 돌리다 보면 자연스레 홈쇼핑 채널에 손이 멈췄다. 정신없이 쏟아대는 이야기를 한참 듣다 보면 어느새 손에 쥐여 있는 카드와 휴대폰.---「젖을 물리며 아이템을 물다」중에서
자요? 라고 톡을 보낸 건 아마도 새벽 1시 30분. 술 마신 구남친도 아닌데 자냐고 새벽마다 찌질찌질 묻는 나. 하지만 그 질문이 무색하게 빨리 돌아오는 답장. 그럴리가욧. ㅋㅋ 새벽 1시 30분은 우리가 가장 화끈하게 타오르는 워킹타임이다. 서로 연락하기 약간 미안해지는 시간이 새벽 3시 정도이니 말 다했다. 우리는 이렇게 외롭고 스산한 새벽에 서로를 다독이며 일한다. ---「역사는 모두 밤에 이루어졌다」중에서
어릴 때는 그토록 집에서 나가고 싶었다. 독립해 내 집에서 내 가정을 꾸리고 살고 싶었다. 그렇게 내 가정과 내 집이 생기고 나니 또 다른 내 공간이 필요해졌다. 집, 엄마로 살아가는 그 공간이 아닌 내 이름 석 자가 살아 있는 공간 말이다. 집은 그냥 집인 게 좋은 것 같다. 그러니 ‘집에서 일하니까 참 좋겠어요’라는 말, 하지 말아주세요. 지금도 이 문장 하나 쓰고 세탁기 돌리고 왔거든요. ---「집에서 일을 한다는 것」중에서
세상은 육아를 여전히 스펙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믿고 있다. 세상 수많은 경험 중에서, 어쩌면 세계일주보다도 더 많은 경험과 견문을 쌓아가는 과정이 바로 육아라는 것을. 그 작고 치열한 세계 속에서 우리들의 하루하루는 흘러가는 시간만큼 조금씩 성장
해 나가고 있다. 엄마로 살아간 지 이제 다섯 살. 세상에 적용할 일만 남은 시간들 앞에서 나는 조금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 나에게는 육.아.라는 멋진 스펙이 있으니까. ---「육아도 스펙이다」중에서
“지금 아이는 어디에 있나요? 사업하면 아이는 누가 키우나요?”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나는 자동으로 포지션이 바뀌고 만다. 청년 여성 사업가에서 애 키우다가 아이디어나 발표하러 나온 철없고 이기적인 아이 엄마로. 그리고 이전까지의 힘겹지만 소중했던 시간들이 처참하게 구겨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 낯선 자리와 낯선 사람들 앞에서 왜 내 아이를 키우는 문제를 시시콜콜 변명해야 하는가. ---「애는 누가 키우나요」중에서
남편이 말했다. “요새 택배 많이 오네.”
응, 왜냐면 뭘 사러 나가기 힘드니까 택배로 사는 거야 그러니까 내 거 산 건 아니고 다 아가 거 샀어 봐봐 그리고 요새 기저귀 세일해서 요새 좀 사서 쟁여두고 있어 응응 분유도 그렇고 직구해야 하니까 여러 개 사는데 박스가 크네 헤헤헤헤헤헤 아 그리고 여름이라 애기 속옷도 좀 사고 응 그래서 그래 자기 좋아하는 명란도 사고 그러느라고 응 그래서 그런 거야 내가 막 쓸데없는 거 사는 건 아니고 다 필요해서 사는 건데 아이고 애기가 생기니까 소비를 안 할 수가 없네 아니 뭐 그렇다고 근데 나 만오천 원짜리 신발 하나 샀어 아아 그러니까 내가 샌들이 진짜 다 떨어지고 하나도 없고 통굽이라서 편할 거 같기도 하고 요새 어른들 뵐 일 많은데 너무 낮은 거 신고 가니까 좀 그렇더라고 슬리퍼 신은 거같이 그래서 그냥 이런 통굽 신발은 비싼 거 사기 좀 그렇고 막 30프로 할인쿠폰도 주고 그래서 하나 샀는데 음 반품할까? 좀 그런가? 응? 주절주절 변명하는 내 주둥이에 지퍼를 채우고 싶었다. ---「요새 택배 많이 오네」중에서
잠든 딸아이 옆에서 또다시 다짐한다. 네가 훗날 워킹맘이 되었을 때, 나는 너의 아이를 가끔씩 봐주면서 정말 아이와 놀아주기만 할 거야. 그리고 도우미 아주머니를 따로 엄마 돈으로 불러줄게. 그때 네가 하고 싶은 살림, 정리 마음껏 다 하고 다 버리렴. 약속할게.
나는, 절대 너의 냉장고를 열지 않겠어. ---「넌 살림을 개떡같이 하고, 이게 뭐냐!」중에서
세종시에서의 피칭도 그랬다. 숨이 가빠오고 갑자기 심장이 벌렁거리더니 목소리가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최대한 차분하게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죄송합니다. 뱃속에서 아이가 너무 열심히 뛰어서 숨이 가쁘네요”라고 양해를 구하고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심사를 보시던 분들 눈에서 ‘어휴, 내가 더 숨차다’라는 표정이 보인다. 그랬다. 나는 참으로 부담스러운 발표자였던 것이다. ---「요즘 엄마들이 문제가 많아, 그렇지 않아요?」중에서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권력, 누구에게도 돈을 받지 않았으니 우리는 돈이 없어 당당하다. 물론 어느 순간 정말 돈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더라도 남편 돈은 절대 받지 않을 생각이다. 남편이 주주가 된다니! 생각만 해도 너무나 피곤한 일이다. 외조도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타는 이 창업의 파도를 부정하지만 않아주면 충분하다. 그야말로 돈 주고 생색내는 것보다 훨씬 값지다. ---「남편 돈 쓰지 않고 창업하기」중에서
어렵게 그룹통화에 접속했다 하더라도 이 또한 쉽지 않다. 우선 아이들은 이 통화에서 자신의 존재를 최대한 부각시키기 위해 인사를 하며, ‘내가 여기 있음’을 증명하기 시작한다. 그냥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고 쿨하게 퇴장해주면 좋으련만. 오늘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는, 최대한 상냥하게 대해주면서 어떻게 하면 저 대화를 멈추게 할 수 있을지, 온갖 전문 지식을 총동원하여 최선을 다해 짱구를 굴리기 시작한다. ---「어수선한 콘퍼런스콜 회의」중에서
돌이켜보면 엄마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 기업가 정신을 자연스럽게 탑재하는 과정이었다. 사업이라는 것이 비즈니스라는 유기적인 생명체를 키워나가는 과정이라면, 우리는 진짜 생명을 키워내지 않았는가. 게다가 그 생명이 그냥 화초처럼 순하고 곱게 크는 게 아니라 얼마나 난리법석을 치며 커가냐는 말이다. ---「엄마들을 위한 창업 교육」중에서
일도 가정도 모두 함께 운영되는, 적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회사를 성장시켜내야지. 그래서 헛소리 하고 다니는 조직의 암세포들에게 뇌세포 치유의 기적을 행하고 싶다.
“집에 좀 들어가요, 지금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가족까지 버려가며 일을 해, 후지게!”
---「카오스적 에미론적 사고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