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설의 엄밀한 학에 대한 요구는 그 어느 철학자보다도 집요하고 근본적이다. 후설은 역사상 그 어느 철학도 엄밀한 학이라는 참된 이상을 실현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엄밀한 학의 이념은 철학이 처음 출발할 때부터 지녔던 것인데, 이제껏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는 것이 후설의 진단이다. 따라서 후설은 철학이 당연히 갖추어야 할 학문성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도대체 이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파헤치면서 철학의 역사에 관심을 갖는다. 그의 후기 철학은 특히 이러한 철학사적인 관심에 의해 강하게 이끌렸다. ---p.6
후설은 바로 이 전체로서의 세계에 대해 탐구하고 또 탐구해야 하는 것이 전통적인 철학의 근본과제임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킨다. 그리고 자신의 현상학은 바로 이러한 전통철학, 정확히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본래 이념의 충실한 계승자이자 또 그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현상학적 철학은 ‘존재자의 총체에 관한 학’이라는 철학의 본래 이념에 따라 곧 존재자 전체를 보편적으로 다루어야 하며, 이를 다시 말하면, 하나의 보편적 학문의 틀 속에서 해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pp.32-33
생활세계는 말 그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적 삶의 세계로서 직접적 경험 속에서 주어지는 세계다. 그런데 근세 자연과학의 영향을 받은 현대의 성인들은 이 생활세계는 오히려 주관적인 세계라는 이유로 참된 세계로 여기지 않고, 자연과학적으로 규정되는 엄밀한 객관적 세계만이 참된 세계라고 여긴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세계를 도외시하는 태도 자체가 학의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것이 후설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러한 생활세계로 우리의 시선을 돌려 근세 자연과학, 나아가 서구의 객관주의가 은폐시킨 생활세계의 참된 의미를 드러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이념화가 이루어지기 이전의, 순수하게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그대로의 원초적인 세계, 후설의 표현에 의하면, ‘선과학적인 세계’로 귀환을 해야 한다. ---pp.90-91
후설이 이렇게 사랑에 가치를 부여하는 이유는 사랑이 지니는 의지적, 정신적, 윤리적 성격 때문이다. 후설은 사랑을 특별히 ‘윤리적 사랑(『상호주관성 Ⅲ』, p.174)’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또 이러한 사랑만이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에게 윤리적 사랑은 그리스도적 사랑이 표본이며, 따라서 모든 인간에게 열려진 포용적인 사랑, 곧 ‘모든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상호주관성 Ⅱ』, p.174)’이 이상이 된다. 이러한 사랑은 ‘인간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에게 자신을 열고, 또 그들 자신이 스스로를 열도록 하는 추구(『상호주관성 Ⅱ』, p.175)’의 의미를 지니면서 이른바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가능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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