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명대사 몇 구절을 암송했다고 본문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절기와 성전은 복음서 이야기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되는 중요한 요소다.
드라마 대본이 주인공의 대사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듯이, 이러한 배경들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대사들과 합쳐져서 엄청난 시너지를 낸다. 게다가 스토리에 잘 맞는 배경 음악까지 깔린다면 완전히 몰입해서 당시의 상황을 이해할 뿐 아니라 공감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성경을 읽으면서 이러한 시간적, 공간적 배경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아마도 이것이 드라마는 한두 번 보고도 내용을 훤히 기억하지만, 성경은 수십 번 읽어도 덮으면 늘 새로운(?) 이유가 아닐까 싶다.
- p. 26
유일하게 예루살렘에서 보내지 않은 유월절
오병이어 기적은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 중에 유일하게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보내지 않은,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성서시대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최고의 명절인 유월절에 성전을 방문했고, 예수님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는 절기마다 성전에 모습을 보이셨다. 그런 예수님이 왜 이번에는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시지 않았을까? 이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처형한 헤롯 안티파스의 서슬 퍼런 칼날이 머지않아 자신을 향해 올 것임을 잘 아셨다. 게다가 세례 요한을 따르던 무리가 그의 참수형과 함께 예수님에게로 몰려들면서, 예수님은 헤롯 안티파스 공안 당국의 ‘지명수배 1호’에 올랐다. 이러한 헤롯 안티파스의 의도가 누가복음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헤롯이 이르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 _눅 9:9
‘헤롯이 예수를 보고자 했다.’ 이 부분을 무심코 읽으면 그 의미를 놓치기 쉽다. 당시는 우리로 말하자면 박정희 대통령 말기의 긴급조치가 발령된 상황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즉 ‘지명수배 1호’에 오른 ‘반체제 인사’를 중앙정보부에서 ‘보고자 했다’는 것이다. ‘헤롯이 예수를 보고자 했다’는 말씀은 그러한 살 떨리는 긴박함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 건너편 벳새다로 자리를 피하셨다. 벳새다는 헤롯 빌립이 다스리는 지역으로 헤롯 안티파스의 마수가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특히 빌립의 아내를 안티파스가 취함으로써 이복형제 사이는 급속도로 소원해진 상황이었다. 세례 요한의 죽음도 안티파스의 불륜적 결혼이 부당함을 지적했다가 빚어진 일이었다. 결국 벳새다는 헤롯 안티파스를 피해 떠나는 예수님에게 최고의 망명지였던 것이다.
- p. 53-54
회칠한 무덤은 무엇일까?
유월절 한 달 전(아달월 15일)부터 성전은 전국에서 몰려드는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준비에 들어간다. 성전에서 파견된 사람들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올라오는 모든 길들을 보수한다. 이것은 오늘날의 ‘도로 보수’와는 다른 개념이다. 성서시대의 가난한 자들은 땅을 대충 파서 시체를 묻었는데,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유대 산지는 흙을 조금만 파도 석회암 바위가 나오기 때문에 깊이 팔 수가 없었다. 이들의 무덤은 아무런 표시가 없는 ‘평토장한 무’(unmarked grave)이었고 깊이 파서 묻지 않았기 때문에 때로 뼈들이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했다. 순례자들의 몸이 무심코 무덤이나 시체에 닿았다가는 레위기적으로 일주일 동안 부정하게 되고, 그런 상태로는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 성전 파견단은 순례자들이 다니는 길에서 이러한 평토장한 무덤을 찾아 회칠로 표시하는 일을 했다. 순례자들은 이 표시를 보고 길을 우회해서 갔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시체 접촉으로 인한 부정을 피할 수 있었다. 예수님은 유월절에 돌아가시기 마지막 주간을 성전에서 힘 있게 가르치셨다. 때로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과 열띤 설전을 벌이기도 하셨는데, 예수님은 외식하는 이들을 가리켜 ‘회칠한 무덤’이라고 비유하셨다.
참으로 시의적절하며 촌철살인의 풍자가 아닐 수 없다.
- p. 64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초막절’만 같아라
우리나라에 설날과 추석이 있듯이, 유대인들에게는 유월절과 초막절이 있다. 설날과 추석 중 어느 것이 더 큰 명절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곤란하듯이, 유대인들에게 유월절과 초막절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 명절이냐고 물으면 동일한 반응을 볼 수 있다.
초막절은 우리나라의 추석에 견줄 수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표현이 있듯이, 유대인들에게 초막절은 감사, 기쁨, 기대가 충만한 절기다. 이때는 초실절(4월경)의 보리 추수와 칠칠절(6월경)의 밀 추수로 시작되는 곡식 추수, 포도, 올리브, 종려나무 등 여름 과실의 수확과 저장을 마치고 ‘추수감사제’를 드림으로 한 해의 농사 시즌을 종결하는 때다.
유대인의 3대 명절 가운데 유월절과 초막절이 중간에 낀 칠칠절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한 해 농사 시즌의 시작에 있는 유월절과 달리 마지막에 있는 초막절은 훨씬 더 자유롭고 들뜬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마치 대입 수능 시험을 마친 수험생의 기분이랄까?
- p. 207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