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히 말해서 이래요. 리톄쒀李鐵鎖와 페이전 두 집이 뒷간 하나를 함께 쓰고 있어요. 리톄쒀네 뒷간이 무너졌는데 고칠 돈이 없어서죠. 그러고 나서 문제가 터진 겁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문제’를 말할 때 칭수는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 무슨 비밀스러운 군사기밀을 말하는 듯 굴었다. 가뜩이나 낮은 목소리가 동물들의 울음소리에 눌려버렸다.
관좡 마을의 서쪽은 물에 가깝고 북쪽에는 언덕이 있어 마을 사람들은 주로 양식을 부업으로 삼고 있었다. 당나귀, 산양, 토끼 따위가 땅에서 뛰놀고, 오리와 거위가 물에서 헤엄쳤다. 하늘을 나는 것으로는 벌, 비둘기, 메추리가 있었다. 칭수의 말에 따르면 바로 육해공 삼군을 모두 갖춘 셈이다. 칭수 본인 역시 반쯤은 양식업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가 기르는 것은 앵무새, 그것도 사랑앵무새였다. 팔기 위해 기르는 게 아니다. 그저 ‘정신 휴양’을 위해서였다. 칭수는 그의 앵무새 한 마리가 〈활 쏘고 돌아오다 打.歸來〉라는 곡을 부를 줄 알아, 입만 열면 ‘서쪽 산으로 해 떨어지고 붉은 노을이 일면, 전사는 활을 쏘고 관영으로 돌아오네’라고 한다고 했다.
그때 멀리서 당나귀 재채기하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판화는 그게 마을의 동쪽 끝 리신차오 李新橋의 집에서 기르는 암나귀라는 걸 알아챘다. 곧 노새를 낳게 되어 잡종을 생산한다는 설렘이 있었다. ‘잡종’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자 판화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번득였다. 페이전이 볼일을 보고 있을 때 톄쒀와 마주친 걸까? 아니면 어떤
행동? 혹시 톄쒀의 부인 야오쉐어姚雪娥가 볼일을 보고 있을 때 상이와 마주친 걸까? 그런 좆같은 일은 확실히 말하기 좀 그렇긴 하지.
판화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어지러운 머릿속을 가다듬고는 물었다.
“그래서?”
칭수는 이때 목소리를 가성으로 바꾸어 아주 가늘게 만들었다. 이게 어디 군인 출신다운 모습이야. 금방이라도 계집애로 바뀔 것 같잖아!
“나중에 페이전이 지랄 같은 일을 발견했어요. 그 말도 안 되는 일은 속옷 때문에 생겼지요. 얼마에 한 번씩은 여자들 속옷이 저녁노을 같아지잖아요. 그런데 적어도 두 달이나 지났는데 톄쒀 부인 야오쉐어의 속옷에 저녁노을이 지지 않았대요.”
--- p.30~31
판화는 밥그릇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쉐어의 배를 한번 살펴보고 싶었다. 쉐어의 배를 생각하자 판화는 태양이 서쪽에서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한 달 전에 향의 가족계획 부서에서 검사를 했다. 그때 계획 밖의 임신이라면 무조건 그 자리에서 잡아 병원으로 보내 그날 밤으로 낙태를 시켜버렸는데, 쉐어가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었지? 페이전이 잘못 본 게 아닐까? 페이전은 당연히 자신이 말한 것처럼 변소에서 문제를 발견했을 리 없었다. 틀림없이 쉐어의 배를 봤을 것이다.
그렇지만 잘못 본 거라면 좋겠네. 만일 쉐어의 배가 정말 불러온다면 문제가 정말 커져. 그건 배가 아니라 시한폭탄이야.
국무원 총리와 마찬가지로 판화의 머릿속에도 줄줄이 이어진 숫자가 들어 있었다. 가장 분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여자들과 관련되어 있었다. 관좡 마을 인구는 1,245명인데 다섯 개 그룹으로 나눌 수 있었다. 그중 가임기 여성은 143명이었다. 묶은 사람이 78명이고 애를 낳을 수 없는 4명까지 빼면, 언제고 배가 부를 수 있는 사람은 61명이었다. 그중에서 정책적으로 배 부르는 게 허락된 사람은 37명이었다. 그렇게 제거해내면 24개의 배가 남았다. 이 24개의 배가 바로 24개의 폭탄이었다. 그중 하나가 터진다면 나머지 배가 착실하게 잠자코 있을까? 칭수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핵재난’에 비교될 수 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판화의 머리가 찌릿찌릿 저려왔다.
--- p.49~50
칭수는 문을 들어서자 먼저 서랍을 열어 텔레비전 안테나를 하나 꺼내 손수건으로 위부터 아래까지 닦았다. 그러고는 도표 앞에 서서 마치 지형 모형 앞에 서 있는 장군처럼 가슴을 쭉 내밀고 손을 허리에 댔다. 판화가 “멍청한 짓 하지 말고 빨리 살펴봐줘” 하고 말했다.
안테나는 밀 이삭과 오각별, 달 그리고 낫 사이에서 움직이다가 ‘야오쉐어’라는 글자 아래에서 잠깐 멈추었다. 그러고는 붉은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정기 신체검사’란으로 건너뛰었다. 안테나 끄트머리가 움직이면서 어떤 때는 군인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처럼, 또 어떤 때는 잠자리가 물을 차는 것처럼 이리저리 점을 찍었다. 잠시 뒤에 칭수가 보고했다.
“아주 분명합니다. 임신하지 않았어요.”
“배도 나왔는데 임신하지 않았다고?”
칭수가 의자를 밟고 표 위로 몸을 기울여 살펴보더니 다시 판화에게 보고했다.
“맞아요, 임신하지 않았어요. 석류나무에 앵두가 열릴 리가요. 이상하죠.”
칭수는 의자에서 뛰어 내려왔다. 그는 아주 독특하게 뛰어내렸다. 마치 체조 선수가 안마 운동을 하듯 의자 등받이를 넘어서 뛰어내렸다. 땅에 착지한 이후에 칭수는 곁눈질로 힐끗 천장의 들보를 노려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갑자기 서랍을 열고 《해방군 화보》를 한 권 꺼냈다. 화보 안에는 각종 증명서가 붙어 있었는데 윗부분에 모두 ‘왕자이병원’ 직인이 찍혀 있었다. 칭수가 침을 묻혀 빠른 속도로 넘기다가 마지막에 어떤 증명서에서 멈추었다. 기계로 뽑은 쉐어의 신체검사표였다. ‘임신 여부’라는 항목에는 ‘부否’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다.
판화가 말했다.
“아니야, 이걸로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못 속여.”
칭수가 말했다.
“제기랄, 기계에 문제가 있었네요. 미국의 레이더 유도 폭탄 아시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첨단 컴퓨터로 통제하지요. 그래도 문제를 일으키려면 일으켜요. 그래서 마오 주석께서도 미 제국주의는 종이호랑이라고 하셨잖아요.”
판화는 초조해졌다. 초조해지자 거친 말도 쏟아져 나왔다.
“니미! 눈먼 닭 좆같은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왕자이병원에 가서 문제를 좀 분명하게 파악해봐.”
--- p.78~79
리하오는 흙더미에 기대 누워서 저고리로 얼굴을 덮고 있었다.
잠이 든 것 같았다. 흙더미 위에는 사람 키 반 높이로 풀이 자라 있고, 그 위로 느릅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나이가 오래되었는데 지금은 껍질이 완전히 벗겨져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 판화는 하마터면 그 흙더미가 원래는 무덤이고 그 안에 고독한 노파가 묻혀 있다는 사실을 잊을 뻔했다. 노파의 아들 쿵칭강 孔慶剛은 젊은 시절 기세당당하게 압록강을 넘어 항미원조 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하고 조선을 구한다 . 옮긴이) 전쟁에 참여했다. 그때 영웅의 어머니였던 노파는 뽕나무 지팡이를 짚고 마을을 거닐면서 지팡이로 땅을 땅땅 두드리곤 했다. 얼음사탕을 물고 있어서 노파의 뺨은 불룩했다. 판화는 아버지가 국경절이 되면 마을의 첫 번째 홍기가 항상 칭강네 문 앞에 걸리곤 했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났는데도 칭강은 돌아오지 않았다. 노파에게 물으니 죽었다고 했다. 노파는 뽕나무 지팡이를 두드리며 씨발 ×이 뒈졌지만 어쨌든 마오 주석을 빛냈으니 잘 죽었다고, 조금 잘한 것이 아니라 크게 잘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칭강이 그때 죽지 않고 미국인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나중에 타이완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파는 그 일로 낮에 비판을 받고는 그날 밤에 목을 맸다. 판화의 어머니는 그해 막 관좡으로 시집을 왔는데 그곳으로 구경을 하러 갔었다. 어머니 말에 따르면 노파의 혀가 더운 날 늘어진 개 혓바닥처럼 아래턱까지 축 처지고 위에는 개미가 바글바글 기어 다녔다고 했다. 왜 개미가 기어 다녔던 걸까? 노파가 죽을 때 얼음사탕, 그러니까 최후의 얼음사탕을 입에 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파의 친정은 근처 마을 궁좡인데 자오위안이 직접 궁좡으로 가서 그녀의 친정 식구들에게 시신을 수습하러 오라고 알렸다. 그런데 친정 식구들은 자신들이 혁명을 하느라 바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다시 채근하자 그들은 늙은 뼈다귀는 차라리 개에게나 던져 먹여요, 하고 말했다. 자오위안은 화가 났다. 그는 한마디를 내뱉고는 떠나버렸다.
“내가 여기서 한마디 해야겠소. 우리 관좡의 개도 무산계급의 개요. 무산계급의 똥을 먹을지언정 자산계급의 뼈다귀는 먹지 않소.”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곳에서 구더기가 들끓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관좡 사람들이 너덜거리는 멍석으로 시체를 말아 땅에 묻어버렸다. 쿵씨네 집안사람들은 그녀가 조상 묘소로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할 수 없이 이 황무지 벌판에 묻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이곳이 마을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고 들개도 어슬렁거렸다. 판화와 뎬쥔이 예전에 이곳에서 뒹굴 적에 봉분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몇 년 전 노부인 친정에서 사람을 언덕으로 보내 무덤에 흙을 쌓았다. 그래서 이 작은 흙무덤이 만들어졌다. 판화는 2년 전 슈수이에서 막 화장을 실시했을 때 상부에서 경지 면적을 늘리기 위해서는 죽은 사람들이 산 사람에게 길을 양보해야 한다고 지시했던 것을 기억했다. 마을에 있는 무덤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평지로 만들어버리라고 했다. 남겨두는 마을이 있으면 그 마을의 지부서기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런데 맙소사, 어떻게 칭강 어머니의 무덤을 잊어버렸던 것일까. 보아하니 그녀 혼자만 잊었던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 전체가 잊었고, 심지어 궁좡 마을 사람들도 잊었던 것 같았다.
--- p.119~121
“그만하세요. 무슨 요령이고 아령이고, 정수고 골수고 하세요. 감당할 수 없는 칭찬이에요. 저도 바보예요. 판촨 부인보다 더 잘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똑똑한 사람은 생각도 못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는 거죠. 제가 멍청한 사람이어서 멍청한 방법이 나온 거예요.”
봐봐, 모두 좀 봐봐. 이런 걸 깨달음이라고 하는 거야. 칭수야, 칭수야, 넌 저 사람과 비교하면 정말 하늘과 땅 차이구나. 판화는 선거가 끝나면 샤오훙에게 가족계획 업무를 맡겨야겠다고 다짐했다. 샤오훙에게 먼저 일부를 맡겨 위신을 세워주고, 몇 년이 지난 뒤에 전면적인 업무를 맡겨야겠다. 난 두 번만 더하고 그만두자. 그리고 그때 반드시 자리를 멍샤오훙에게 넘겨줄 방법을 생각해야겠어. 멍샤오훙은 내 그림자야. 우리 둘은 어쨌든 똑같잖아. 내가 하는 거나 샤오훙이 하는 거나 같은 것 아닌가?
그때 가족계획과 관련된 말을 듣자 샤오훙이 말했다.
“제가 메가폰을 들고 알릴 필요도 없어요. 막 밥을 먹어서 마침 한 바퀴 돌려고 했으니까 사람들 집을 뛰어서 돌아다니면 되겠네요. 마을 조장한테는 알리지 않는 거지요?”
봐봐, 총명한 사람은 한마디 더 할 필요가 없이 똑똑하다니까. 당연히 메가폰을 사용해서는 안 되지. 리하오도 말하지 않았던가. 사람이 많으면 안 좋고 사람이 적어도 안 좋다고. 당연히 너무 많은 사람이 알도록 해서는 안 된다. 마을 조장 다섯 명도 참가할 수 없다. 또 무슨 대표대회도 아닌데 개나 소나 한마디씩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 p.148
뭐가 새고 말고야. 저 자식이 지금 이 왕고모님한테 무슨 수수께끼라도 내겠다는 거야 뭐야?
“지적해주시면 확실히 고치도록 할게요.”
뉴 향장이 산아제한정책 문제를 거론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의 귀는 개보다 더 예민했다. 이미 야오쉐어라는 이름 석 자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뉴 향장이, 야오쉐어라는 여자가 잔뜩 부른 배를 하고 도망친 것 아닙니까, 하고 물었다. 판화의 해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뉴 향장이 탁자를 내려쳤다.
“계획 외 임신이라니! 당신들 대체 간땡이가 얼마나 부은 겁니까?”
판화는 숨길 수 없었다. 결국 야오쉐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뉴 향장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에잇’ 하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은 뭔 놈의 하지만이야? 망할 놈의 하지만! 배때기! 배때기! 당신은 어떻게 그놈의 배때기 하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겁니까?”
“저도 얼마 전에 겨우 알았습니다. 지금 수술해도 안 늦어요. 수술로 그냥 떼버리기만 하면 되는 건데!”
“말이야 그럴싸하지! 원래 좋은 일은 집안 문도 못 건너지만 나쁜 일은 천 리 밖까지 가는 법입니다. 이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버렸어요.”
뉴 향장이 자기 얼굴을 ‘철썩, 철썩’ 소리가 나도록 내리쳤다.
“당신들 때문에 정말 내가 아주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어요!”
판화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거야 리톄쒀가 저지른 짓이지. 당신이 한 짓도 아니면서 대체 뭐가 얼굴을 들 수 없다는 거야? 하지만 판화는 이내 그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누군가 이번 사건을 현에 제보하는 바람에 현에서 조사를 나왔구나. 하지만 대체 누가 윗선에 줄을 대는 능력이 있는 거지? 이어진 뉴 향장의 말에 판화는 다소간 이해가 되었다. 뉴 향장이 말했다.
“사실 말이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동네가 어디 하나라도 있겠어요! 우리 왕자이향이 더러우면 저 난위안향이라고 그리 깨끗할 리 없다고요. 그런데 더러운 건 어쨌든 더러운 거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든 이불로 덮어서 겉으로는 안 드러나게 하려는 거라고요. 그런데 당신은 전 세계가 다 알도록 했으니 아주 잘하셨습니다!”
씨발, 그러니까 류쥔제가 그 일을 폭로한 거야? 쥔제! 아! 쥔제! 이 병신 같은 새끼가 나를 아주 잡는구나!
단단히 마음먹는 것 외에는 판화에게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뉴 향장에게 쉐어의 임신 문제는 자신이 책임지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하겠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한 번 두고 보시죠.”
--- p.357~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