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은 황금빛 물결로 변한 제우스와의 섹스 장면인 셈이다. 말하자면 신과의 섹스 장면을 그린 ‘신성을 침해한 그림’이다. 클림트의 상징주의적 작풍에 따라 이 그림 속의 여러 요소들은 많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사람과 나누는 섹스였다면 얼굴을 찡그린 채 소리를 질러대고 환희에 떠는 모습이어야 했겠지만, 다나에는 그저 잠에 취한 듯 무척이나 황홀한 꿈속에 있는 듯한 얼굴이다. 차마 눈을 뜨지 못한 채 입술은 수줍게 반쯤 벌어져있다. 다리는 모아 오므린 상태이며 길고 섬세한 손가락들은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다. 누군가는 이것을 남자의 성기를 쥐고 있는 모습이라 해석하지만, 이것은 흔히 여자들이 성적 쾌감을 느끼면 이불깃을 모아 잡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르가슴은 여자에게 극치감을 선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식에도 커다란 기여를 한다. 다나에 역시 단 한 번의 섹스로 영웅을 임신한다. --- p.19
그렇다면 요즘은 어떨까? 바에서 높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발끝에 하이힐을 걸고 까닥거리는 것, 게이샤처럼 가느다란 하얀 목덜미를 드러내 보이는 것, 약간 벌려진 입술, 호기심이 생긴다는 듯 눈을 크게 뜨는 것, 가슴을 내밀고 목은 길게 늘인 채 꼿꼿한 자세로 상대를 바라보는 것, 경동맥이 지나는 목덜미를 보여주는 것, 부드럽게 흘러내린 윤기나는 머리카락을 들어 올리거나 빙빙 꼬는 것, 다리를 천천히 꼬았다 풀었다 하는 것. 이것들 모두 여자들이 남자를 유혹하는 데 즐겨 사용하는 성적인 신호들이다. --- p.36
얼마나 격렬한 사랑이었던 걸까? 남자는 입마저 벌리고 혼곤하게 잠에 빠져있는데, 여자는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자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그 못마땅한 분위기를 알아채기라도 한 듯 아기 사티로스들은 뿔고동 나팔을 잠든 남자의 귀에 대고 힘주어 불기도 하고, 그의 기다란 창을 가지고 요란스레 놀고 있지만 남자는 전혀 깨어날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다. 여자가 불러일으키는 긴장을 아기 사티로스들이 장난치는 모습으로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내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압권인 것은 비너스 옆에 서있는 커다란 투구를 쓴 녀석이다. 이 녀석은 너무 큰 투구 때문에 앞도 안보일 터라 마치 디즈니 만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유쾌하다. --- p.84
그렇다면 이 커플은 무엇일까? 이름도 나이도 주소도 묻지 말라는 하룻밤 사랑의 주인공들도 아니다. 그러기엔 여자의 얼굴에 담긴 감정이 너무 깊어 보인다. 이들은 사랑, 그리고 섹스를 나눠왔던 커플인 것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맺어왔던 관계를 끝내려 하는, 이미 관계가 깨져 정리할 일만 남은 커플. 사랑이 사라진 게 아니라고, 다시 한번 되돌려보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커플. 아직 열정이 남아있다 여기며 섹스도 해보는 커플. 그러나 이미 사랑은 없다. 그렇기에 섹스는 이제 이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아니게 되었다. --- p.110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누군가는 물었지만, 사랑은 변한다. 그 사람이 있기에 태양이 빛났고, 내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분명하고도 명랑한 빛을 띠었다. 그것들은 온몸으로 행복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유가 있든 없든, 결국 사랑은 시든다.
헤어지길 ‘잘’ 하는 어떤 남자는, 사랑이 사라지는 걸 어떻게 아느냐는 내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그건 상대와 나누는 섹스가 재미없어질 때, 상대의 몸, 상대의 존재 자체에 더는 열정이 솟아나지 않을 때라고.
(…)
상대가 나를 만질 때 전혀 행복하지 않다면, 혹은 내가 상대를 만지고 싶지 않다면, 그리고 그것이 단지 잠시가 아니라 계속되는 감정이라면, 더는 그가 내게 ‘특별한’ 존재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인정하시라. 사랑은 이미 두 사람을 떠나갔다. --- p.112~113
‘이것이 내가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던 것이란 말인가?’ 롤라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 밤, 살의 향연은 더없이 화려했다. 마리온의 살은 향긋했고 부드러웠다. 그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마음이 담기지 않은 섹스, 영혼의 조우가 없는 섹스는 롤라에게 텅 빈 공허만 안겨주었을 것이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 후에도 남자들은 때때로 ‘후회’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고도 하니, 마리온 같은 여자와의 하룻밤은 그보다 더한 회한을 남겼을 것이다. --- p.187~188
이렇게 연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아버지를 배신하는 이유는 어쩌면 어린 소녀였던 딸들이 성숙한 여자가 되려면 아버지로부터의 사랑을 끊어내야 비로소 타인인 이성에게 마음을 주고 성인으로서 독립을 하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랑했던 아버지를 배신할 정도로 사랑의 유혹은 뿌리치기 힘든 것! 그러니 아버지들이여, 딸들에게 주는 사랑은 땅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지는 사랑이라며 아쉬워하지 말기를…….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딸의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자존감’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피어오를 테니…….
--- p.255
예로부터 성을 떠난 예술은 생각할 수 없었다. 특히 회화는 그 시대 인류의 성 역사와 문화를 알게 해주는 가장 좋은 자료들이었다. 우리나라 성 인문학 분야에서 독보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배정원 박사의 새 책 '그림 속 성 이야기'에 큰 기대를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 김원회 (대한성학회 초대회장, 부산대학교 의대 명예교수)
수많은 언어의 수사와 문화가 발명된 것은, 결국은 포유류의 음험한(!) 욕망을 애써 감추고자 했던 종의 허세였다고, 나는 믿는다. 세상을 이루는 최소의 조건인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에는 무수히 많은 핑계와 변명이 있다. 그러나 그 수많은 말들은 욕망, 섹스, 그리고 또 다시 욕망과 섹스로 이어지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볼테르는 말했다. ‘욕망을 욕하지 마라. 우린 모두 그것을 통해 잉태되었다.’
배정원은 볼테르의 이야기를 빌려와 예술이란 이름으로 채색된 남녀의 이야기를 해석하고 들려준다.
결국 볼테르가 옳았다. 그래서 배정원도 옳다!
- 김태훈 (팝 칼럼니스트)
성(SEX)은 생명의 가장 깊고 내밀하며 근원적인 에너지이다. 창조하고 성장시키다가 모두 부수고 파멸에 이르게도 하는 성 이야기를 배정원 작가는 우리가 한번쯤 봤거나 배웠을 그림에서 찾아냈다. 유쾌하게, 때로는 짓궂게 우리 욕망의 원형질을 들추며 작가는 매혹적으로 은밀하게 이야기를 건넨다. 다만 한 가지, 당장 유럽으로 미술관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 각오하고 책을 펼치자.
- 박재희 (모모인컴퍼니 대표, 에세이스트)
명화와 성을 다룬 글들 가운데 배정원 소장의 글은 독특하다. 물수제비 아래 동심원을 떠올리게 한다. 톡톡 혜안을 던지며 생각의 여운을 남긴다. 넘치지 않고 은은하다. 또 포근하고 넉넉하다.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오랫동안 성 문제를 상담하며 쌓인, 사람에 대한 통찰력과 애정이 문장에 켜켜이 녹아 있는 듯하다. 책갈피를 꽂고 밑줄을 치며 읽고 또 읽다가 친구의 손을 잡고 함께 펼쳐 보고 싶은 ‘지혜로운 성 담론서’ 하나가 비로소 태어났다.
이성주 (코메디닷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