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아빠


베란다 밖에선 선풍기 같은 송풍기가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열심히 돌아가고 있고
안에선 냉방기가 시원하게 풍류를 즐기고 있다
디지털을 위해 밀려난 아날로그.
디지털 숫자가 그의 작업량을 알려준다
냉방기와 송풍기가 함께 만났던 때가 언제였던가
창문 하나의 사이가 태평양만큼 멀어
서로 연결되어 있으나 함께 자리한 기억이 멀다
그다지 시원하지 않은 살갗들 닿는 좁은 공간이어도
선풍기 앞에 식구들 모여 있기 좋아하고
그에게 얼굴 가까이 대며 도란도란 모인 식구들에게
방 안 더운 공기도 서로 바삐 움직이면
시원한 공기 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던 아날로그.
언제부턴가 그는 끈적끈적한 친밀함보다
식구들의 쾌적하고 뽀송뽀송한 바람을 위해
높은 아파트 베란다 밖 뜨겁고
위태로운 좁은 공간으로 혼자 이사를 갔다
태평양 거리 같은 창문을 사이에 두고
바깥에서 부지런히 땀 흘리는 노동으로
디지털이 만들어놓는 안쪽 세상에 봉사하고 있다
선풍기에서 송풍기로 자리를 바꾼
아날로그 기러기 아빠.

우리는 몸과 마음이 지치고 아프면 자연을 찾아간다. 물과 숲과 바람은 모성처럼 우리 몸을 받아주고 위무해주며 상처를 치유해 준다. 우리 몸은 자연에 기대어 자연의 여유로움, 한가로움, 넉넉함을 회복한다.<br/>이러한 자연과 같이 사람의 상처를 품어줄 치유의 시집이 나왔다. 서로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혜안이 담긴 《꿈의 소리를 듣다》가 바로 그것.<br/>시집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몸의 소리를 듣다’는 세상의 욕망을 버리고 겸허하고 정결하게 살려는 시인의 의지가 담겨 있고 제2부 ‘자연의 소리를 듣다’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자연의 여유로움과 넉넉함에 기대어 살고 자연의 지혜를 깨달아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려는 시인의 소망을 담고 있다. 제3부 ‘길의 소리를 듣다’는 생활인으로서, 또는 신앙인으로서의 지향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제4부 ‘사람의 소리를 듣다’는 가족과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각각 담고 있다.<br/>시에 담긴 내용과 메시지도 아름답거니와 음악처럼 반복되는 리듬도 아름답다. 가까이 놓아두고 오래오래 애송하고 싶은 아름다운 시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꽃과 이파리들이 피어 무리 지어 살듯 우리의 삶 또한 그렇다. 이파리가 먼저 피어 꽃의 길을 열어주고, 꽃이 먼저 피어 이파리의 길을 열어주듯, 우리 삶 또한 누군가 먼저 길을 열어주어 그 길을 가는 것이다. 이처럼 같은 길을 동행하는 것이 사랑의 길이요, 또한 사람의 길이다. 이광용 시인은 이 길을 ‘아름다운 동행’이라고 말하고 있다.<br/>이광용 시인이 듣는 소리는 자기 자신은 물론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 사물들이 꿈꾸는 소리이며, 그 꿈은 사랑의 동행이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꽃과 이파리들이 서로 길을 열어주듯, 본 적도 들은 없는 사람들도 같은 길을 가며 서로의 길을 열어주는 길동무가 되기를 소망한다. 시집 《꿈의 소리를 듣다》는 바로 이런 사랑의 길 트기, 사랑의 집짓기이다.<br/>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는 즐거움에서 시작하여 지혜로 끝난다.”라는 말처럼 그의 시는 시를 읽는 즐거움에서 시작하여 우리 삶에 필요한 소중한 지혜를 깨닫게 해 준다. 그의 시는 사랑과 나눔의 삶이 참된 삶의 길임을 깨우쳐 주고, 삶에 대한 지혜와 성찰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고 나면 우리는 더욱 지혜로워지고 경건한 성스러움으로 충만해진다. 그런 면에서 그의 시집은 우리들의 몸과 영혼의 갈증을 채워 주는 성수와 같은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