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희망이 교차하는 삶의 여울목에 서 있는 해녀는, 어쩌면 21세기에는 영영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해녀들의 생업의 터전인 ‘여’와 ‘코지’는 바다밭에서 방향과 지형을 가늠하는 이정표 역할을 합니다. 섬에서 살아가는 해녀들은 물때가 되면 바닷속 ‘여’를 부여잡고 정직하게 삶을 캐올립니다. 거친 파도에 순응하여 해초처럼 질긴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의 초인적인 삶은 해녀 노래의 고달픈 노랫말에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프롤로그」중에서
내 고향은 우도(牛島)다. 우도는 섬 속의 섬이다. 제주도의 동쪽 끝, 물소가 머리를 내민 모양(牛頭形) 또는 누워 있는 모양(臥牛形)이라서 소섬이라 한다.
우도의 상징은 돌담이다. 제주의 삼다(三多 : 돌, 바람, 여자) 중 으뜸도 다석(多石)이다. …
우도를 찾는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것이 바로 우도의 독특한 돌담 문화다. 돌담을 소재로 한 이름도 다른 지역에선 생소한 이름들이다. 밭담, 집담, 올렛담, 울담, 산담, 불턱담, 범선의 안전을 위해 쌓은 개맛(포구)의 성창(방파제), 원담(돌그물), 돌봉돌…. 곁에서 듣고 있어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 우도의 밭담을 보고 예술품이라 감탄하는 것은, 바람 많고 태풍의 길목임에도 허물어지지 않고 오랜 세월 버텨 왔기 때문이다. 넘어질 듯 무너질 듯 바람 불면 흔들거리며 견뎌내는 모습은, 그대로 우도 사람들의 성품이며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과 돌 사이 숭숭한 구멍을 막으면 숨이 막히듯 넘어지고, 구멍이 엉성할수록 오히려 넘어지지 않는 요술쟁이 돌담에 감탄한다. ---「우도 돌담」중에서
우도 일 번지 동쪽 끝, ?름코지(바람받이) 언덕배기. 그 옛날 해녀들의 애환이 서린 ‘불턱’이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콘크리트 건물을 지어 보일러 시설로 냉온수가 나오는, 해녀들의 쉼터 해녀 탈의장이 지어져 있다. 이 곳 한쪽 칸에는 ‘안비양 해녀의 집’이 있고, 또 앞에는 소원 성취 돌의자가 있어 누구나 한 번쯤 앉아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한다. 물이 써야 들어갈 수 있는 모세의 ?비양(떨어진 비양도) 출입구 길목이다. …
안비양 해녀의 집에 처음 들어오는 관광객들은, 먹을거리도 먹을거리지만, 해녀들의 검게 그을린 얼굴, 이마의 수경 테 자국, 몸뻬를 입은 날씬한 몸매에 먼저 시선이 간다. “이디 왕 앉집써. 무시거 먹쿠광?(여기에 와서 앉으세요. 뭐 먹겠습니까?)” 하는 투박한 말투와 서툰 장사 솜씨가 오히려 매력이다. 머지않아 들으려야 들을 수 없는 해녀의 밑말이다. 뭐니 뭐니 해도 해녀의 집의 자랑은 해녀들이다. 다이어트나 체중 감량을 걱정하지 않는 해녀, 평생을 바다를 일구다 보니 살찔 겨를이 없는 여자들이다. ---「안비양 해녀의 집」중에서
해녀의 물질은 바다의 자연적 조건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거친 환경의 두려움에 적응하며 바다가 베푸는 풍요를 거두는 과정이다. 바람과 물살이 그네들의 생활환경이다. 바람의 방향과 물살의 세기에 따라 순응하며 물질해야 한다. 자연에 거스르면 힘든 과정만 있을 뿐이나, 순응하면 수확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물질은 해산물을 채취하고 잡는 물질과, 장소와 거리에 따른 물질로 구분할 수 있다.
해산물의 시기에 따라 하는 물질은 다시 두 가지로 구분된다. 그 하나는 ‘헛물질’이요, 다른 하나는 ‘?문물질’이다.
‘헛물질’은 일상적인 물질로 주로 패류 작업을 말한다. 바닷속 바위나 ‘머들(돌무더기)’, ‘엉덕(바닷 속 기슭 얕은 굴)’에 사는 전복이나 소라, 오분자기 따위를 찾아내 따야 하는 작업이기에 빈손일 때가 있어 이를 ‘헛물질’이라 부른다.
‘?문물질’은 해산물이 상품이 될 때까지 일정 기간 채취를 금했던 것을 풀어 합의된 날짜에 캐기 시작하는 물질을 말한다. 경계를 푼다는 뜻으로 ‘해경(解警)’, 또는 채취를 허가하여 시작한다는 뜻으로 ‘허채(許採)’이다.
---「물질」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