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祝祭)는 무엇인가? 서구학자들은 신성과 세속의 이분법에 근거한 종교적 행사로 보거나, 일상적이고 노동하는 현실을 탈출하여 유희본능을 충족시키는 비일상적이고 비생산적인 표현문화로 본다. 국내에서는 일반적으로 종교적인 제의(Ritual)와 유희적인 축제(Festival)로 구분한다. 그러나 신라·고려 시대의 연등회가 부처에게 연등공양을 하는 왕이 연회를 베풀어 군신동락(君臣同樂)을 꾀했듯이 제의 속에서 유희적 욕구를 충족시켰고, 지금 전승되는 별신굿을 보아도 오신(娛神) 행위로 가·무·악·희·극(歌舞樂戱劇)을 연행하기 때문에 제의와 축제를 엄밀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따라서 제의가 주술종교성이 축소되고 오락유희성이 증대되면서 축제로 변하고, 축제 속에 제의적 요소가 잔존한다고 보는 관점을 취하는 것이 타당하며, 따라서 축제가 제의보다 광의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축제와 제의를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고 제의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여 축제의 개념을 특정 지역의 특정 집단이 주기적으로 행하는 종교·주술적이면서 오락적인 행사로 규정한다. 집단성(인간), 지역성(공간), 주기성(시간)이 축제의 3대 요건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왜 축제를 할까? 첫째가 신앙적·종교적 기능 때문이다. 자연적·초인간적 존재의 힘에 의지해서 풍요 다산을 기원하고, 악귀와 질병을 퇴치하고, 인간의 공포심과 불안감을 해소하려고 한다. 둘째가 정치적·사회적 기능 때문이다. 역할을 분담하여 집단을 재조직하고, 공동체 의식과 유대감을 강화하고 협동심과 단결심을 고취하려고 한다. 셋째가 오락적·예술적 기능 때문이다. 생산 활동을 중단하고 예술적·오락적인 표현 욕구를 충족시키며, 금기와 억압과 규범을 벗어나 자유와 해방과 일탈의 세계로 들어가려 한다. 넷째가 경제적 기능 때문이다. 풍농과 풍어를 기원하고, 관광 수입을 올리고 토산품과 특산품의 판매량을 증대시키려 한다.
한국 축제의 기원은 고대 사회의 제천 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에서 날마다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춤추며 노래하였다고 하는데, 가무와 음주에 의해 신명풀이를 하였다. 삼한에서는 5월에 파종하고 귀신에 제사지내며 음주 가무할 때 수십 명의 춤꾼들이 땅을 밟으며 몸을 굽혔다 일으키면 손과 발이 서로 호응하여 장단에 맞았다고 하는데, 10월에 추수할 때도 똑같이 하였다고 한다. 오늘날의 지신밟기와 탈춤의 원형에 해당한다. 고구려에서는 나라 동쪽의 큰 동굴에서 신을 맞이하여 동쪽의 물가에 되돌아와 신대[神竿]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식으로 ‘맞이굿-좌정’의 절차로 된 수혈신(隧穴神)굿을 하였다. 금관가야에서는 가락국사람들이 구지봉 위에서 흙을 파서 제단을 만들고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아니 내면은 불에 구워 먹겠다.”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니, 하늘에서 김수로왕이 내려왔다고 하여 신맞이굿에서 신을 맞이하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 사실을 전하는 바, 김해가락오광대의 덧배기춤의 연원을 찾을 수 있고, ‘어름새-베김새-풀음새’의 춤사위로 악귀를 어른 다음 위협하여 누르고, 풀어서 화해하고 포용하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토착신앙에 의한 나라굿은 불교의 전래 이후에는 신라에서 팔관회와 연등회로 대체되어 고려까지 계승된다. 팔관회는 신라 진흥왕 33(572)년에 전사한 병졸을 위한 위령제로 시작하여 고려 공양왕 3(1391)년까지 계속되었다. 불교와 토속신앙이 습합된 종교행사인데, 고려 태조(왕건)가 평양에서 팔관회를 베풀고, 팔공산 전투 때 전사한 신숭겸과 김락 장군이 자리에 없는 것을 한탄하여 허수아비를 만들어 조복을 입히고 자리에 앉힌 뒤 술과 음식을 하사하니, 술이 갑자기 없어지고 허수아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흡사 산사람처럼 춤을 추었다고 하여 무속적인 위령제에서 제의적인 인형극이 연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연등회는 신라 경문왕 6(866)년에 처음 실시하였는데, 고려 시대에는 궁중에서 가무백희를 공연한 바, 문종 31(1077)년에는 무희 55명이 춤을 추어 “군왕만세(君王萬歲)”나 “천하태평(天下泰平)”의 네 글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고려 태조 왕건은 훈요십조 제6조에서 “짐이 원하는 바는 연등과 팔관에 있는데, 연등은 부처를 섬기는 까닭이고, 팔관은 천령(天靈)과 오악(五嶽), 명산대천, 용신을 섬기는 까닭이었다. 후세에 간신들이 가감할 것을 건의해도 이를 막아야 한다.”라고 유언을 남겨 팔관회와 연등회의 전통이 연면하게 지속될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한 조선이 건국됨에 따라 국가적인 축제의 전통은 단절되고, 연등회는 사찰행사로 명맥을 유지한 채 민속화 되었으며, 고을굿과 마을굿 형태의 지방축제가 중앙집권적·유교적 주류문화의 대항문화로서 활성화되었다. 그러다가 근대화와 산업화 시대에는 전통축제는 쇠퇴하고 관 주도의 문화제가 축제의 난장과 신명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다가 지방자치와 지방화 시대를 맞이하여 바야흐로 민간 주도의 지역문화축제가 백화제방(百花齊放)하게 되었다. 특히 축제의 경제적 기능이 중시되어 이벤트성·비즈니스성 축제가 등장하였고, 지역민의 자족적인 축제에서 외지인에게도 개방하는 관광상품적인 축제로, ‘보고 감상하는 축제’에서 ‘참여하고 체험하는 축제’로 진화하였다.
그리하여 축제에 대한 연구도 민속학, 역사학, 연극학, 인류학을 넘어서서 행정학, 사회학, 공연학, 관광학으로 확장되었는데, 이 책에 수록한 논문들은 주로 민속학(또는 역사민속학)과 연극학(또는 예술학)의 관점에서 접근한 것들이다. 축제 자체에 대한 연구에 머물지 않고 축제와 예술의 관계에까지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는 제의에서 연극과 신화가 발생하였다는 제의주의의 입장을 취한 데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책의 체재는 4부로 나누어 구성하였다. 먼저 제1부에서는 지역축제, 제2부에서는 단오축제, 제3부에서는 불교축제, 제4부에서는 축제와 문학의 관계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그리고 부록을 네 편 수록하였다.
이 책은 한국축제의 전통성을 조명하는 작업의 산물이다. 그렇지만 축제학과 예술학의 접경지대도 주목하여 학문융합의 시대적 추세에도 부응하려 노력하였다. 축제는 현실의 질서를 파괴하였다가 회복함으로써 강화와 유지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일상과 노동과 통제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생명력을 재충전하는 데도 기여한다. 따라서 이 책이 전통축제에 대한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이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축제가 지나치게 이벤트 위주로 경도되는 현 시점에서 문화예술이 빛과 향기를 발산하는 현대축제를 창조하고 발전시키는 데도 방향타와 길잡이 역할을 해주길 소망해본다. 무엇보다 문화적 전통은 단절되거나 소멸되지 않고 시대의 변화 속에서 변형·생성되면서 현재까지 연면히 계승되어 왔고, 여전히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서 보존하고 후대에 물려줄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널리 인식시키는 기폭제가 되길 기대해본다.
2015년 8월 17일
1억 년 전의 공룡발자국이 있는
대구의 욱수천변(旭水川邊)에서
박 진 태
---「머리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