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동부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온 세상이 제복을 입은 채로 도덕적 차려 자세를 영원토록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권 어린 시선으로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방종한 놀이에는 이제 질린 것이었다. 하지만 개츠비, 이 책에 자신의 이름을 제공한 그만이 내가 이렇게 반응하지 않은 예외적인 인물이었다. 개츠비는 내가 경멸해 마지않는 모든 것을 구현한 사람이었다. 만일 인간의 성격이라는 것이 끊임없는 일련의 성공적인 몸짓이라면, 그에게는 멋진 면이 있었다. 그는 마치 1만 6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지진에도 반응하는 정교한 기계에 연결되어 있는 듯 인생의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러한 민감성은 ‘창조적 기질’로 포장되곤 하는 무기력한 감수성과는 달랐다. 이는 희망을 찾아내는 특별한 능력이자, 다른 이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고 앞으로도 찾아내지 못할 낭만적인 기질이었다. 그렇다. 결국에는 개츠비가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인간의 공허한 슬픔과 짧은 기쁨에 대해 일시적으로 관심을 끊게 된 이유는 개츠비를 먹이로 삼은 것들, 그리고 그의 꿈을 뒤따라 떠도는 더러운 먼지들 때문이었다. --- p.9
나는 그를 불러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베이커 양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에 대해 언급한 바 있었으니, 그 이야기로 대화의 물꼬를 틀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가 어두운 바다로 두 팔을 뻗는 이상한 몸짓을 하며, 혼자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는 걸 불쑥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먼발치이긴 했지만 그가 가늘게 떨고 있는 모습을 분명히 보았다. 나도 무심결에 바다를 바라보았지만, 멀리 떨어진 선착장 끝에서 반짝이는 것으로 보이는 초록의 작은 불빛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개츠비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자리를 뜨고 없었다. 그리고 나는 시끄러운 어둠 속에 다시 혼자 남았다. --- p.40
이웃집에서는 여름 내내 밤마다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개츠비의 푸른 정원에서는 남자와 여자들이 샴페인, 별들 사이를 나방처럼 오갔다. 오후의 만조 때면 그의 손님들이 부잔교에서 다이빙을 하거나, 해변의 따뜻한 모래사장에서 일광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모터보트 두 대는 폭포수처럼 물거품을 일으키는 수상스키를 끌고 해협의 물살을 갈랐다. 주말이면 오전 아홉 시부터 자정까지 그의 롤스로이스가 파티 참석자들을 태우고 승합차처럼 도시를 오갔고, 그의 스테이션왜건은 기차 도착 시간에 맞춰 활기찬 노란 딱정벌레처럼 바삐 돌아다녔다. 그리고 월요일이면 일용직 정원사를 비롯한 여덟 명의 하인들이 대걸레와 솔, 망치와 전정가위를 들고 간밤에 부서진 곳을 수리하며 온종일 열심히 일했다. --- p.66
그는 이해한다는 듯, 아니 이해하고도 남는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상대를 영원히 안심시키는, 평생토록 네댓 번밖에 볼 수 없는 보기 드문 미소였다. 그것은 잠시 외부 세계에 직면했다가(혹은 직면하는 듯했다가), 뒤이어 당신을 향한 사랑을 억누를 길이 없으니 당신에게 집중하겠다는 미소였고, 또한 당신이 이해받기 원하는 만큼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이 스스로 믿고 싶어 하는 만큼 당신을 믿으며, 당신이 최선을 다해 전달하고자 했던 인상을 제대로 받았다고 확신하게 해주는 미소였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그 미소는 사라지고, 내 앞에는 서른한두 살가량의 우아하면서도 거친 느낌의 젊은 남자만 있을 뿐이었다. 격식을 차린 그의 말씨는 자칫하면 우스꽝스럽게 들릴 소지가 있었다. 그가 자신을 소개하기 전부터 나는 그가 말을 조심스럽게 골라 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 p.82
토스토프의 곡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연주가 막 시작되었을 때 나는 대리석 계단에 홀로 서서 만족스러운 눈길로 사람들을 보고 있는 개츠비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는 주름 하나 없이 팽팽했고, 짧은 머리는 매일 손질을 하는 듯 단정했다. 그에게서 사악한 구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가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손님들 사이에서 더 돋보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이 술에 취해 허물없이 유쾌해질수록 그는 점잖아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 p.85
“기가 막힌 우연이군요.” 내가 말했다.
“아뇨, 결코 우연이 아니에요.”
“어째서요?”
“개츠비는 데이지가 해협 바로 건너편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집을 산 거예요.”
6월의 그날 밤 그가 열망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것은 그저 별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무의미하던 화려한 자궁에서 갑자기 해방되어, 생생하게 살아 있는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는 당신이 어느 날 오후에 데이지를 당신 집에 초대한 뒤 자신이 방문할 수 있게 해주길 바라고 있어요.” 조던이 말을 이었다. 조심스러운 그 부탁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는 어느 날 오후에 잘 모르는 이의 정원에 들르기 위해 5년을 기다린 끝에 저택을 구입하여, 날아드는 나방들에게 별빛을 나눠주고 있었던 것이다. --- p.129
작별 인사를 하러 다가갔을 때 나는 개츠비의 얼굴에 다시 당황한 표정이 떠올라 있는 것을 보았다.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에 대해 막연한 의심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무려 5년의 세월이라니! 그날 오후만 해도 데이지가 그가 꿈속에서 그려온 모습에 미치지 못한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이는 그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오랫동안 키워온 그의 환상이 그만큼 생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환상은 그녀를 넘어섰고 모든 것을 넘어섰다. 그는 창조적인 열정으로 환상 속에 자신을 내던졌고, 매일매일 환상을 키워가며 자신 앞에 떠도는 아름다운 깃털을 모아 장식한 것이다. 어떤 열정이나 신선함도 한 남자가 혼자만의 상상으로 마음속 깊이 쌓아 올린 것은 당해낼 수는 없을 터이다. --- p.157
톰은 데이지가 혼자 돌아다니는 게 불안했는지, 다음 토요일 개츠비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그녀와 함께 왔다. 그가 참석한 탓에 그날 저녁은 이상할 정도로 답답한 분위기였고, 그래서 그해 여름 개츠비의 집에서 열린 다른 파티들보다 또렷이 기억난다. 같은 사람들, 적어도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었고, 샴페인도 똑같이 넘쳐났고, 갖가지 소동이 일어난 것도 똑같았지만, 이전의 파티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불쾌함이 퍼져 있었고, 대기 중에 감도는 악의가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그것에 익숙해져서, 웨스트에그를 독자적인 기준과 독자적인 인물을 가진 다른 완벽한 세계인 양 받아들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렇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세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제 데이지의 눈을 통해 그 세계를 다시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적응력을 쏟아 부어 익숙해진 사물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언제나 슬픈 일이다. --- p.170
그가 데이지에게 원하는 것은 오로지 그녀가 톰에게 “난 당신을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뿐이었다. 이 한마디로 3년의 결혼 생활을 지워버리고 나면, 그들은 보다 현실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자유로워지면, 루이빌로 돌아가 그녀의 집에서 결혼식을 올릴 수도 있으리라. 마치 지금이 5년 전 그때인 것처럼. --- p.181
악수를 나눈 뒤 나는 그곳을 나섰다. 울타리에 이르기 직전에 문득 생각난 말이 있어서 돌아보며 말했다.
“그들 모두 썩어빠졌어요. 당신은 그들 모두를 합친 것만큼 가치 있는 사람이에요.” 내가 잔디밭 너머를 향해 소리쳤다.
이렇게 말한 것을 나는 기쁘게 생각한다. 내가 그에게 칭찬의 말을 건넨 것은 그때뿐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치 우리가 이 점에 있어서는 언제나 죽이 맞는 한패였다는 듯이 이내 알겠다는 표정으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화려한 분홍색 양복이 하얀 계단에 대비되어 선명한 점처럼 보였고, 석 달 전 그의 고풍스러운 집을 처음 방문했던 밤이 떠올랐다. 잔디밭과 찻길에는 그를 부패한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그는 불멸의 꿈을 감춘 채 바로 저 계단에 서서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 p.252
나는 해변에 앉아 그 오랜 미지의 세계에 대해 생각하다가, 개츠비가 데이지의 집 선착장 끝의 초록 불빛을 처음으로 발견했을 때 느꼈을 경이로움에 생각이 미쳤다. 그는 먼 길을 돌아 이 푸른 잔디밭에 이르렀고, 그의 꿈은 이제 너무 가까이 있어서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의 꿈이 이미 자신의 뒤, 미국의 어두운 들판이 밤하늘 아래 굽이치는 도시 너머의 광활한 어둠 속 어딘가로 사라졌다는 것을.
--- p.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