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황자님 첫 목욕식은 유시부터라고 했다. 등불을 켜고 중궁직 하인이 보통 옷 위에 백견 도포를 입고 목욕물을 날랐다. 목욕통을 앉힌 받침대는 모두 흰 천으로 씌워져 있었다. 오와리노쿠니 지방 수령인 지카미쓰와 중궁직 시장인 나카노부가 목욕통을 메고 발 있는 데까지 날라 오면, 발 안에서 기요이코(淸子) 명부와 하리마(播磨) 여방이 그 통을 받아 물 온도를 가늠하고, 오모쿠(大木工) 여방과 우마(馬) 여방이 그것을 받아 항아리 하나하나에 부었다. 열여섯 개의 항아리를 다 채우자 나머지 물은 욕조에 부었다. 여방들은 얇은 천의 우와기와 당의를 입고 오목 무늬 치마를 둘렀으며, 앞머리에는 사이시를 꽂고 뒷머리는 하나로 해서 흰 천으로 묶었다. 머리가 평상시보다 단정하고 깔끔했다. 황자님께 물 끼얹는 역할은 사이쇼 여방이 하고, 그 보조역은 다이나곤 여방이 맡았는데 두 사람 모두 흰옷 입은 모습이 매우 정갈하게 보였다.
황자님은 대감님께서 안고 오셨는데, 고쇼쇼 여방과 미야노 내시가 각각 신검과 호랑이 두상을 들고 그보다 앞섰다. 내시의 당의는 솔방울 문양이 그려진 것이었고, 치마는 바다 그림 위에 주변 경치를 수놓은 것이었다. 특히 눈에 띈 것이 치마 허릿단으로, 얇은 천에 당초 문양을 수놓아 매우 화려했다. 고쇼쇼 여방도 허릿단에 가을 풀숲, 나비, 새와 같은 문양을 은사로 수놓은 치마를 둘렀는데 옷감은 신분에 따라 정해져 있으므로 허릿단을 색다르게 꾸며서 입은 것이리라.
대감님의 두 도련님과 겐노 소장(源少將)께서 쌀을 뿌리시는데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소리가 크게 나게 뿌리셨다. 마침 호신법 때문에 대령해 있던 조도사 스님은, 쌀을 피하려고 얼른 부채를 펴서 머리 위에 썼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운지 젊은 여방들은 웃음을 못 참고 내내 키득거렸다.
ㆍ천황님 행차 날이 가까워지자 대감님께서는 집안 단장에 한층 더 신경을 쓰셨다. 실로 멋있게 핀 국화를 어디에선가 캐 오시어 집 안을 환하게 장식하셨는데, 형형색색으로 핀 국화 중에서도 탐스러운 노란 국화를 아침 안개 사이로 보고 있자니, 옛말에도 있듯이 몸이 저절로 젊어지는 것 같았다. 아, 내가 이 허무한 세상에서 적당히 사는 사람이었더라면 이런 광경을 보면서 얼마나 행복을 느낄까? 이렇게 멋있고 근사한 것을 앞에 두고도 오히려 출가하고픈 마음만 더 강해지니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모든 게 우울하고 한탄스럽기만 하다. 그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안 좋은 일은 다 잊어버리자고 굳은 결심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고, 이런 식으로 살면 오히려 죄만 더 깊어진다며 하루라도 빨리 마음을 고쳐먹으려고 해도 날만 새면 또다시 멍하니 상심에 빠지게 된다. 연못의 물새들도 언뜻 보면 아무런 근심 없이 유유히 노닐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과연 그럴까?
저기 물새를 물 위에 뜬 허망한 거라 보겠나 이 몸 또한 뜬세상 허무하게 사는데
저 물새들도 남 보기에는 즐거운 듯해도 그 몸이 되어 보면 나처럼 힘든 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ㆍ대감님께서 ≪겐지 이야기≫가 중궁님 어전에 있는 것을 보시더니, 농담 식으로 매실 아래 깔린 종이에 다음과 같이 쓰셨다.
바람둥이라 소문 다 나 있으니 본 사람마다 모두 꺾었을 거라 이 몸은 생각하네
그래서,
“남에게 아직 꺾인 일 없는 사람 그 어느 누가 바람둥이라는 말 함부로 하는 건가
이상도 해라” 하고 여쭈었다.
ㆍ2일, 중궁님 대향은 중지되고 임시 손님맞이만 동쪽 마루방을 꽉 채운 채 진행되었다. 열석한 공경님들은 부대납언, 우대장, 중궁 대부, 4조 대납언, 권중납언, 시종 중납언, 좌위문독, 아리쿠니 재상, 대장경, 좌병위독, 겐 재상 등으로, 서로 마주 앉아 계시는 식이셨다. 겐 중납언, 우위문독, 좌우 재상 중장은 중방 아래쪽의 당상관 자리 상석에 앉아 계셨다. 대감님께서 황자님을 안고 납시어 인사를 올리도록 하셨는데, 그때 안방마님께 “작은 황자님을 안아 드리게” 하시자, 큰 황자님께서 “싫어” 하며 투정을 부리셨다. 대감님께서 얼른 큰 황자님을 달래셨는데 그 모습을 우대장께서는 흥미롭다는 듯이 보고 계셨다.
공경들께서 세이료덴에 대령하고 주상 전하께서 대전에 납시자 아악 연주가 시작되었다. 대감님께서는 언제나 그렇듯이 술에 취해 계셨다. 나는 시끄러운 것이 싫어 나가지 않고 숨어 있었는데 결국 대감님께 들켜 버렸다. “자네 아버지는 아악 연주에 불렀는데도 대령하지 않고 바로 퇴청해 버렸다네” 하며 기분이 상한 듯 말씀하셨다. “내 화가 풀리도록 노래 하나 읊어 보게나. 아버지 대신 벌을 받는 거니까 그렇게 알게. 더구나 오늘이 초자일이니 노래를 읊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지” 하고 재촉하셨다. 하지만 바로 읊어 올린다 해도 제대로 된 것은 아닐 것이다. 대감님 얼굴은 취기? 올라 불그스름한데 그 모습이 불빛에 비치니 빛이 나고 보기에도 좋았다. “이 수년 동안 중궁께서 아이 하나 없이 쓸쓸히 계셨는데 이렇게 양쪽에 황자님이 계신 모습을 보니 그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소”라고 하시며 침상 휘장을 제치고 황자님의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곤 하셨다. 그리고 “들판에 어린 솔이 없었더라면” 하고 읊조리셨다. 이런 때는 새로운 노래를 읊는 것보다 옛 노래 중에 걸맞은 것을 읊조리는 것이 더 풍취가 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