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숲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걸으면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도 상쾌해진다. 바우길은 숲이면 숲, 바다면 바다, 산이면 산, 음식이면 음식, 이 모든 조건을 갖춘 명품 길이다. 또한 인물과 역사, 문학과 예술이 살아 숨 쉬는 인문학 교실이다.
---「2구간 _ 대관령 옛길」중에서
바우길은 평등한 공간이다. 길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인도에서는 홀리축제 기간 동안 카스트제도의 모든 신분이 사라진다고 한다. 강릉에도 ‘관노가면극’이 있다. 관노가면극(官奴假面劇)은 강릉부에 소속되어 있던 관노들이 단오제 때 말없이 춤과 동작으로 보여주는 무언극(無言劇)이다.
---「2구간 _ 대관령 옛길」중에서
이번 구간은 벚꽃이 만발한 경포호수와 커피거리로 유명한 안목항을 지나 남항진까지, 해변 모래사장과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15km 5시간 코스다. 강릉 사는 사람도 한 번에 쭉 걸어 보기 힘든 명품코스다. 갯내음과 하얀 파도 철썩이는 모래사장 따라 해변길이 쭉 이어진다. 만나자마자 하고 싶은 말이 쏟아진다. 길 위에 서면 모두가 평등하다. 허균이 『홍길동전』에서 꿈꾸었던 세상이 강릉 바우길에 있다.
---「5구간 _ 바다 호숫길」중에서
길에는 주인이 없다. 길은 걷는 사람이 주인이다. 꼬마가 걸으면 꼬마가 주인이고, 청년이 걸으면 청년이 주인이다. 길은 날씨 따라 다르고, 걷는 사람 따라 다르다. 꽃피는 봄길과 함박눈 쏟아지는 겨울 길이 다르고, 홀로 걸을 때와 여럿이 함께 걸을 때가 다르다. 길 떠날 때 설렘으로 들떠 있는 자가 있는가 하면, 딱딱하게 굳어있는 자도 있다. 길은 이런 자나 저런 자나 모두 품어준다. 앞만 보고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몸도 풀리고 마음도 풀린다.
---「6구간 _ 굴산사 가는 길」중에서
6구간은 남항진에서 월화교를 지나고, 모산봉 넘어, 오똑떼기 전수관에 이르는 17.3km 길이다. 강릉의 속살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단오제가 열리는 남대천, 무월랑과 연화낭자의 애틋하고 풋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는 월화정, 서민들의 애환이 배어 있는 노암동 골목, 인재가 많이 난다는 학산리 등 발길 닿는 곳마다 이야깃거리로 풍성하다.
---「6구간 _ 굴산사 가는 길」중에서
사위 심스테파노의 실명을 알 수 없는 이유다. 천주학의 씨앗이 정약용의 증손녀를 거쳐 사위 심스테파노에게까지 퍼져나갔던 것일까? 정약용이 누군가? 조선의 천재가 아닌가? 원래 천재들은 신앙에 빠지지 않는다. 신앙을 이해하고 분석하려 하기 때문이다. 정약용이 천주교를 학문으로 받아들였는지, 신앙으로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다. 정약용 일가는 천주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골수 ‘천주학쟁이’ 집안이었다.
---「10구간 _ 심스테파노 길」중에서
위촌리는 대동계(大同契)와 도배례(徒拜禮)로 유명하다. ‘강릉 사람 세 명만 모여도 계를 만든다’는 속담이 있다. 계(契)는 율곡 이이가 만든 서원향약에서 비롯되었다. 강릉에는 금란반월계(金蘭半月契) 등 오래된 계가 많다.
---「10구간 _ 심스테파노 길」중에서
수원성 축조과정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에 공사에 참여했던 백성 이름이 나온다. ‘작은 끌톱장이 김삽사리(金揷士伊), 목수 박뭉투리(朴無應土里), 김개노미(金介老味), 최망아지(崔馬也之).’ 이게 사람 이름인가? 짐승 이름인가? 백성을 개돼지 취급하면서 공자, 맹자만 공부해서 목민관이 되겠다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니! 이게 말이 되는 얘긴가? 이러니 허균이 『홍길동전』을 쓰고, 곳곳에서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이다. 조선 말기 백성들이 왜 동학과 천주학에 빠져들었겠는가? 백성을 개돼지가 아니라 사람대접 해주었기 때문이다.
---「14구간 _ 초희 길」중에서
천재는 타고난다. 천재는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안다. 이파리가 움직이는 것만 보고도 바람의 근원을 찾아낸다. 천재는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하다. 천재는 시대를 잘 타고나면 능력을 꽃피우지만, 그렇지 않으면 시대와의 불화를 겪으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다. 강릉에는 조선의 천재 율곡 이이가 태어난 오죽헌이 있고,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의 저자 매월당 김시습기념관이 있다.
---「16구간 _ 학이시습지길」중에서
길은 학교였다. 길은 책이요 스승이었다. 길 위에는 음악도 있고 미술도 있고 역사와 체육도 있었다. 바우길을 걷고 나면 어김없이 글 몸살을 앓는다. 나는 현장 취재기자처럼 걷는 내내 들여다보고, 물어보고, 메모하느라 분주했다. 어떤 자는 뭘 그렇게 적느냐고 했지만, 그건 몰라서 그렇다. 메모는 글쓰기의 기본이다. 글 안 쓰고 홀로 여유롭게 걷는 답사를 상상해 본다.
---「16구간 _ 학이시습지길」중에서
바우길은 고해소였다. 함께 했던 자들은 오래 묻어두었던 아픈 상처를 보여주었고, 못다 했던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길은 의사였다. 걷다 보면 상처가 나았고 고민도 해결되었다. 나만 아프고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나보다 더 아프고 더 힘들어하는 자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 내 삶이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노고에 기대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바우길은 강릉의 사람과 자연이 빚어낸 ‘교향악’이요 묵언으로 가르침을 준 큰 스승이었다. 강릉 바우길이여! 영원하라!
---「17구간 _ 안반데기 구름길」중에서
책 내는 일은 여전히 외롭고 고달팠다. 나는 노트북을 들고 매일 같이 대학교 도서관을 오갔다. 점심은 어린학생들 틈에 끼어 학생회관에서 ‘혼밥’으로 때웠다. 도서관에서 원하던 자료를 찾았을 땐, 어린아이처럼 좋아서 어쩔 줄 몰랐고, 빌려온 책을 들고 돌아와 밤늦게까지 읽고 썼다. 마치 내가 강릉 홍보 대사라도 되는 듯, 강릉의 인물과 역사에 깊이 빠져들었다.
---「에필로그 Epilogue」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