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8년에 태어난 조선 시대 사림가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신동(信童)이고,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 중검(仲儉)이며, 어머니는 부사 이관식(李寬植)의 딸이다. 본관은 함양(咸陽)이고, 자는 경번(景蕃)이며, 호는 소요당(消遙堂)이다. 중종 11년(1516) 생원시에 합격한 뒤 조광조, 김정 등 신진사림들과 교유하기도 했으나 기묘사화가 있은 다음 크게 상심하고 실의해 학문에만 전념했다. 그러다가 중종 26년(1531)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에 들어가 헌납을 거쳐 사관(史官)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곧은 성정과 직필(直筆)로 말미암아 최고의 권신이던 김안로(金安老)의 미움을 받아 중종 34년(1539)에 오늘날 경상남도 하동인 마전군수로 밀려났다가 곧바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중종 39년(1544)에 전적(典籍)·참교(參校)가 되어 다시 조정으로 돌아온 그는 조광조의 신원(伸寃)을 요청하는 상소문을 올렸으며, 그해에 ≪동몽선습≫을 간행했다. 을사사화가 일어나던 이듬해 사복시정이 되었다가 안변부사로 나갔으며, 그 뒤에 내자시정·내섬시정·군자감정 등을 두루 거쳤다.
조선 말기의 문인으로서 본관이 한양(漢陽)이고, 자가 광지(光之)이며, 호가 서애(書崖)다. 야곡(冶谷) 조극선(趙克善)의 후손으로 명문가의 가업을 계승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학문에 전념하고 자제들의 교육에 열의를 다했다. 그리하여 고종 30년(1893)에 ≪야곡선생집(冶谷先生集)≫을 간행했고, 1899년에는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동몽의학(童蒙宜學)≫을 찬술했다.
일제 강점기에 서점을 운영하면서 출판업에도 종사하던 지식인으로, 소설가 박종화의 집에서 신구서림(新舊書林)이라는 서점을 운영하면서 ≪유년필독≫·≪대한역사≫·≪동국사략≫·≪월남망국사≫ 등의 역사서와, ≪구운몽≫·≪춘향전≫·≪숙영낭자전≫ 등의 고소설 및 ≪귀의성≫·≪치악산≫·≪금수회의록≫ 등의 신소설을 발행했다. 그리고 1915년에 몽학 교재인 ≪유몽선습(幼蒙先習)≫을 발행한 이래로 1916년에는 ≪진수당감정시행간례휘찬(進修堂監定時行簡禮彙纂)≫을 간행해 관혼상제(冠婚喪祭)와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에 관해 설명했으며, 또한 ≪통감언해(通鑑諺解)≫(1920), ≪고문진보후집(古文眞寶後集)≫(1920), ≪상밀주석사략언해(詳密註釋史略諺解)≫(1921) 등을 발행했다.
일제 강점기에 경기도 안성에서 광안서관(廣安書館)이라는 출판사 겸 서점을 운영하면서 1917년에 ≪천자문≫, 1926년에 ≪유몽선습≫ 등을 간행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강원대 한문교육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홍만종 시학 연구>로 석사, <하서 김인후 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도회 한문연수원과 중앙승가대학 불전국역연구원 등에서 한문 공부를 했고, 권우 홍찬유 선생으로부터 지어재(之於齋), 연민 이가원 선생으로부터 인재(仁齋)라는 아호를 받았다. 연세대 국학연구원과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했으며, 연세대·강원대·공주교대·상지대·한성대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충북대 우암연구소 전임연구원 및 고려대 교육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며, 경희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조광조 평전인 『위대한 개혁』을 비롯해 『삼봉 리더십』·『하서 김인후의 시문학 연구』·『하서시학과 호남시단』·『화랑세기』·『한문학의 이해』·『한국시가의 정신세계』·『한국시가의 자연관』·『동몽선습』·『백련초해』·『명심보감』·『백유경』·『반야심경』·『초발심자경문』·『경제문감』 등 90여 편의 논저를 냈으며, 국문학 및 동양고전 전반에 걸쳐 연구하고 강의하고 저술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