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옛날 옛적, 아주 살기 좋았던 시절에 길을 따라 내려오는 ‘음매소’가 있었지. 그런데 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던 이 음매소는 ‘아기 터쿠’라는 이름을 가진 어여쁜 사내아이를 만났어…….
아버지는 어린 스티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버지는 외알 안경 너머로 그를 바라보셨는데, 아버지의 얼굴에는 털이 많았다.
어린 스티븐은 아기 터쿠였다. 음매소는 베티 번이 살고 있는 길을 따라 내려왔다. 베티 번은 레몬향이 나는 막대 사탕을 팔았다.
오, 야생 장미가 피었네.
작은 녹색 들판에.
어린 스티븐은 노래를 불렀다. 그가 좋아하는 노래였다.
오, 푸른 자미가 피어네.
침대 시트에 오줌을 싸면, 처음에는 따뜻하다가 곧 차가워진다. 엄마는 기름종이를 깔았다. 기름종이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났다. 엄마한테서는 아버지에게서보다 더 좋은 냄새가 났다. 엄마는 그가 춤을 출 수 있도록 옛날 선원들이 피리로 불곤 했던 무도곡을 피아노로 연주해 주었다. 스티븐은 춤을 추었다.
트랄랄라 랄라
트랄랄라 트랄라디
트랄랄라 랄라
트랄랄라 랄라
찰스 삼촌과 단테 아주머니가 박수를 쳤다. 두 사람은 아버지와 엄마보다 나이가 많았다. 하지만, 찰스 삼촌은 단테 아주머니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
단테 아주머니는 옷장 속에 빗을 두 개 가지고 있었다. 뒷면을 밤색 벨벳으로 감싼 빗은 마이클 다비트를 위한 것이었고, 뒷면을 푸른색 벨벳으로 감싼 빗은 파넬을 위한 것이었다. 단테 아주머니는 스티븐이 휴지를 가져다줄 때마다 박하사탕을 주시곤 했다.
반스네 가족은 7번지에 살았다. 그들의 부모님은 스티븐의 아버지와 엄마와는 달랐다. 그들은 에일린의 아버지와 엄마였다. 자신과 에일린이 어른이 되면, 스티븐은 에일린과 결혼할 작정이었다. 스티븐이 탁자 아래로 숨었다. 엄마가 말했다.
“오, 스티븐은 사과할 거야.”
단테 아주머니가 말했다.
“오, 만약 사과하지 않으면 독수리들이 와서 그의 눈을 파 버릴 것이야.”
눈을 빼 버릴 것이다,
사과해라,
사과해라,
눈을 빼 버릴 것이다.
사과해라,
사과해라,
눈을 빼 버릴 것이다.
사과해라,
눈을 빼 버릴 것이다,
눈을 빼 버릴 것이다,
사과해라.
넓은 운동장은 소년들로 꽉 차 있었다. 모두 고함을 치고 있었다. 학생 주임 선생님은 목청껏 소리를 지르면서 아이들을 재촉하고 계셨다. 저녁 공기는 창백했고, 한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아이들이 돌격하여 ‘쿵’ 소리를 내며 공을 찰 때마다, 반들거리는 가죽 공은 몸뚱이가 무거운 새처럼 회색빛 하늘 위를 날았다. 학생 주임 선생님의 눈과 아이들의 거친 발길질을 피해가며, 스티븐은 자기 편 가장자리에서 공을 차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그는 공을 차고 있는 아이들 무리 가운데에서 자신의 몸이 작고 연약하다는 사실을 느꼈다. 시력이 약한 눈에는 눈물도 살짝 고여 있었다. 로디 키캄은 자신과 달랐다. 모두들 로디 키캄이 제3 문법반의 주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디 키캄은 점잖은 아이였지만, 네스티 로치는 기분 나쁜 놈이었다. 로디 키캄은 사물함에 정강이 보호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휴게실에는 사식 바구니도 가지고 있었다. 네스티 로치는 손이 컸다. 그는 금요일에 배식되는 푸딩을 ‘담요에 싼 개’라고 불렀다. 어느 날 네스티 로치가 물었다.
“이름이 뭐니?”
스티븐은 ‘스티븐 디덜러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로치가 말했다.
“무슨 이름이 그러니?”
이 말에 스티븐이 제대로 답변을 못하자, 네스티 로치가 재차 물었다.
“네 아버지 직업은 무엇이니?”
스티븐이 대답했다.
“신사야.”
그러자 네스티 로치가 물었다.
“치안 판사시니?”
스티븐은 이따금씩 뛰는 시늉만 하면서 자기편 가장자리에서 슬렁슬렁 왔다 갔다만 했다. 그런데도 그의 두 손은 추위에 시퍼렇게 얼었다. 그는 회색 윗도리에 달려 있는 호주머니에 두 손을 집어넣었다. 호주머니 가장자리에 혁대가 달려 있었다. 혁대는 친구를 때릴 때도 사용되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캔트웰에게 말했다.
“당장이라도 혁대로 네 놈을 한 방 갈기고 싶다.”
캔트웰이 대답했다.
“딴 데 가서 싸울 상대를 찾아보지 그래. 세실 썬더를 혁대로 한 방 갈겨 보는 것이 어떠니? 네가 그래 주면 좋겠어. 그러면 세실 썬더가 네 엉덩이를 걷어 차 줄 테니 말이야.”
그런 말은 고상한 말이 아니었다. 거친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엄마는 그에게 당부했었다. 엄마는 정말로 멋졌다! 학교로 사용하는 성成에 있는 강당에서 입학식을 하던 날에 작별 인사를 할 때였다. 엄마는 그에게 키스하기 위해서 베일을 코 있는 데까지 두 번이나 걷어 올렸다. 엄마는 코와 두 눈이 빨갰다. 그러나 스티븐은 엄마가 울음을 터뜨리려고 하는 것을 못 본 척 했었다. 엄마는 멋졌지만, 우실 때는 전혀 멋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스티븐에게 5실링짜리 금화 두 개를 용돈으로 주셨다. 아버지는 만약 필요한 게 있으면 집으로 편지를 보내라는 말과 함께, 뭘 해도 괜찮지만 친구를 고자질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교문에서 교장 선생님과 부모님이 작별의 악수를 나눌 때 교장 선생님의 사제복이 산들 바람에 펄럭였다. 곧이어 부모님이 탄 자동차가 출발했다. 차 안에서 엄마와 아버지는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작별 인사를 하셨다.
“잘 있어, 스티븐. 안녕!”
“잘 있어, 스티븐. 안녕!”
공을 뺏으려는 한 무리의 소년들이 서로 뒤엉켜서 난투극을 벌이고 있는 소용돌이 속에 스티븐은 들어와 있었다. 불꽃을 뿜어내는 아이들의 격렬한 눈빛과 진흙투성이 신발이 무서워서 스티븐은 몸을 숙이고 서로 얽혀 있는 다리 사이를 살펴보았다. 소년들은 격렬하게 몸을 부딪치고 신음소리를 내면서, 다리를 서로 맞대어 비비고, 차고, 짓밟고 있었다. 이 때 노란색 신발을 신은 잭 로튼의 발이 공을 교묘하게 빼냈다. 그러자 다른 소년들의 신발과 다리가 공을 뒤쫓아 갔다. 스티븐은 그들을 잠깐 뒤쫓아 가는 척 하다가 이내 멈춰 섰다. 계속 달려 봐야 소용이 없었다. 곧 방학이 될 것이고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저녁을 먹은 후에 스티븐은 자습실 책상 안쪽에 붙여 놓았던 숫자를 77에서 76으로 바꾸어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추운 날에는 운동장에 나와 있는 것보다는 자습실에 있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하늘은 창백하고 추웠지만, 학교로 사용하고 있는 성 안에는 불빛이 있었다. 스티븐은 해밀턴 로완이 모자를 어떤 창문을 통해 경계 벽으로 던졌었는지가 궁금했다. 혹은 그 당시 창문 아래에 화단이 있었는지, 아니면 없었는지가 궁금했다. 스티븐이 성으로 불려갔던 날, 집사는 나무 문 위에 남아 있는 군인들이 쏜 총알 자국을 보여주었다. 그는 스티븐에게 그곳에서 공동생활을 하던 예수회 회원들이 먹었던 것과 똑같은 버터 쿠키를 준 적이 있었다. 성 안에 켜져 있는 불빛을 볼 때마다 스티븐은 기분이 좋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책에 등장하는 어떤 것 같았다. 아마도 레스터 사원이 그와 같은 것이었다. 콘웰 박사의 철자 책에는 멋진 문장들이 있었다. 마치 시 구절과도 같은 문장들이었지만, 그것은 철자를 배우기 위한 문장일 따름이었다. 울시는 레스터 사원에서 죽었다.
울시는 레스터 사원에서 죽었고,
대수도원장들은 그곳에 그를 묻었다.
캔커canker는 식물의 질병이고,
캔서cancer는 동물의 질병이다.
난로가 옆 양탄자 위에 배를 깔고 두 손으로 머리를 괴고 누워서 그런 문장들이나 생각하고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차갑고 질척거리는 하수구 물이 몸에라도 닿은 것처럼 스티븐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밤치기 내기에서 마흔 개의 밤을 물리친 자신의 ‘베테랑’ 밤과 스티븐의 작은 코담배 상자를 바꾸자는 웰스의 요구를 스티븐이 들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어깨로 밀쳐서 변소 하수구 도랑에 빠뜨린 것은 비열한 짓이었다. 하수구 물은 얼마나 차갑고 질척거렸던지! 한 친구는 도랑물 찌꺼기 속으로 커다란 쥐 한 마리가 뛰어드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도 했다. 엄마는 단테 아주머니와 함께 난로 가에 앉아서 브리지드가 차를 들여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난로 망 위에 두 발을 올려놓았다. 보석이 박힌 슬리퍼가 너무 뜨거워져서 정말 따뜻하고 좋은 냄새를 풍겼다! 단테 아주머니는 아는 것이 많았다. 아주머니는 스티븐에게 모잠비크 운하가 어디에 있는지, 미국에서 가장 긴 강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리고 달에서 가장 높은 산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아날 신부님은 단테 아주머니보다 아는 것이 더 많았다. 신부님은 성직자이셨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찰스 삼촌은 단테 아주머니가 영리하고 박식한 여자라고 말했다. 단테 아주머니는 저녁 식사 후에 트림을 하고는 손을 입에 가져다 대곤 했다. 가슴 통증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운동장 저 멀리까지 들렸다.
“모두 안으로!”
그러자 또 다른 목소리들이 중급반과 하급반에서도 들려왔다.
“모두 안으로! 모두 안으로!”
상기된 얼굴과 온 몸이 진흙투성이가 된 채로 공을 차던 아이들이 대열을 좁혀 모여들었고, 스티븐은 실내로 들어가게 된 것에 기뻐하면서 그들 사이에 끼었다. 로디 키캄은 번들거리는 끈으로 공을 매달고 있었다. 한 학생이 로디 키캄에게 공을 마지막으로 한 번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사이먼 무난은 키캄에게 부탁을 들어주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학감 선생님이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탁했던 학생이 사이먼 무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