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발췌]
‘유표성markedness’이란 대립의 두 극 사이에 ‘비대칭적asymmetrical’이며 ‘계층적hierarchical’ 관계를 말한다(Waugh 1982: 299, Battistella 1990: 1 참조). 유표성을 이루는 대립 쌍은 더 단순하고 일반적인 쪽과 더 복잡하고 특수한 쪽으로 대립된다는 점에서 ‘비대칭적’이며, 범주의 내부 구조는 원형적인 요소와 주변적인 요소가 방사상 구조로 대립된다는 점에서 ‘계층적’이다. 이 경우 단순하고 일반적이며 원형적인 요소를 ‘무표항unmarked term’이라고 하며, 복잡하고 특수하며 주변적인 요소를 ‘유표항marked term’이라고 한다. 무표항과 유표항의 비대칭적이고도 계층적인 모습은 음운, 형태, 통사, 의미에 관한 언어 구조뿐만 아니라, 언어 습득 및 문화 전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언어학에서 ‘유표성’에 대한 최초의 명확한 정의는 1930년 7월 31일 트루베츠코이Trubetzkoy가 야콥슨Jakobson에게 보낸 한 통의 편지로 거슬러 올라간다(Waugh 1982: 300-301 참조). 그는 상관관계에 있는 두 음운에서 한쪽은 ‘표지mark’를 지님으로써 ‘능동적’, ‘적극적’이지만, 다른 쪽은 그러한 표지가 없음으로써 ‘수동적’, ‘소극적’으로 대립된다고 하였다. 이 편지의 답신에서 야콥슨은 상호 관련된 자음들을 유표항과 무표항으로 나눈 트루베츠코이의 견해를 높이 평가하면서, ‘a/non-a’로 요약되는 유표성의 개념은 언어학에서뿐만 아니라 민족학, 문화사 및 ‘삶/죽음’, ‘자유/부자유’, ‘덕행/죄악’, ‘평일/휴일’ 등에 관한 역사?문화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큰 의의를 가질 것이라 하였다.
이로부터 유표성의 문제는 구조언어학의 가장 핵심적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곧 프라그학파에서는 표지의 유무와 중화의 기준에 따라 무표항과 유표항의 대립을 음운론에 적용하였으며, 구조적 유사성의 바탕 아래 문법론과 의미론으로 확장되었다. 한편, 생성문법의 SPE에서는 분절음의 ‘유표 규약marking convention’을 설정하였다. 이 시기의 심리언어학자들은 의미적 복잡성의 가설을 통하여 언어 습득 과정에 유표성의 개념을 적용하였는데, A/B의 두 대립 쌍에서 형태적으로나 의미적으로 B가 A보다 더 복잡하다면, 의미 습득에서 A가 B보다 먼저 습득되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최근 들어, 인지언어학에서는 유표성을 경험적 관찰의 집합체로 보고, 원형 이론과 접맥하여 범주의 구성원, 기본층위, 원형 효과 등을 설명함으로써 유표성의 문제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유표성의 기준이나 해석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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