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상이동의 개념
‘가상이동(fictive motion)’은 비이동체를 이동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인지 능력으로, ‘실제이동’의 경험을 기반으로 나타나는 ‘비사실적 현상(nonveridical phenomena)’(Talmy 2000) 중 하나이다. 즉, ‘가상이동’은 ‘한 개인의 인지체계 내에서의 불일치(Talmy 2000: 99)’를 말한다.
‘가상이동’은 ‘실제이동’의 경험에 기반하는데, 각각의 이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Langacker 2008: 529).
(1) a. An ugly scar runs from his elbow to his wrist.
(추한 흉터가 그의 팔꿈치부터 팔목까지 달린다.)
b. An ugly scar runs from his wrist to his elbow.
(추한 흉터가 그의 팔목부터 팔꿈치까지 달린다.)
c. The pitcher ran from the bullpen to the mound.
(그 투수는 불펜에서 마운드로 달렸다.)
예문 (1)은 이동동사 run과 경로를 나타내는 from, to의 쓰임을 통해 이동의 상황을 나타낸다. (1a, b)는 ‘가상이동’의 예로, 비이동체인 an ugly scar가 주어로 나타나며, (1c)는 ‘실제이동’의 예로, 이동체인 the pitcher가 주어로 나타난다. 그리고 (1)에서 이동동사 run과 from, to에 대한 인식은 유사해 보인다. 즉, ‘실제이동’과 ‘가상이동’에서 그 전경의 이동 유무에 따라 이동의 인식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이것은 ‘실제이동’의 경험이 어떻게 확장되어 나타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데, (1)을 통해 이동체에서 비이동체로 인식이 나타난다는 것은 실제 대상에 대한 시각적 확장으로 간주된다.
〈그림 2-1〉는 동일한 ‘객관적 내용(OC)’과 ‘처리시간(T)’을 가진다. 우선 〈그림 2-1a〉는 ‘실제이동’의 도식으로, 소문자 t는 ‘개념화 시간’을 나타내는데, ‘개념화 시간(conceptualization time)’이란 그 시간에 따른 이동의 주사를 말한다. 즉, 〈그림 2-1a〉에서 개념화자는 이동체가 경로를 동일하게 ‘주사(scanning)’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다음으로 〈그림 2-1b〉는 ‘가상이동’의 도식으로, 개념화자는 각 위치들의 경로를 따라 주사하지만 그 경로는 전체적인 형상을 나타낸다. 즉, 개념화자는 〈그림 2-1b〉에서 관찰 대상인 비이동체의 형상을 구축한 후에 나타나는 경로를 따라 주사한다.
〈그림 2-1〉의 도식을 통해 ‘가상이동’은 한정된 공간에서 객관적 상황에 둘러싸여 있고, 처리 시간에 따라 어떤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각각의 대상은 전체로 인식된다. 반면 ‘실제이동’은 각각의 대상이 독립적이고,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이를 통해 ‘가상이동’은 ‘처리시간(T)’에 따라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실제이동’에서 나타나는 속성은 ‘이동 사건(motion event)’의 틀에서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Fillmore 1982, 1985; Talmy 1985, 1991, 1996, 2000; Choi & Bowerman 1991, 임지룡 2000, 임태성 2012, 2013, 2015a, b). Talmy(1985: 61)는 ‘이동 사건’의 틀에서 나타나는 의미 속성을 [전경], [배경], [경로], [이동] 및 [방식], [원인]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는데, 이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 a. 전경(figure): 다른 물체와 관련하여 실제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고 한 장소에 위치한 물체.
b. 배경(ground): 전경의 참조점으로 기능하며 전경의 경로나 장소를 특징지어 주는 정지된 환경.
c. 이동(motion): 사건에서 이동 또는 처소의 존재.
d. 경로(path): 배경과 관련하여 전경이 따라간 행로 또는 위치한 장소.
e. 이동방식/원인(manner/cause): 이동의 방법 및 이동 사건을 발생시킨 원인.
(2)는 ‘이동 사건’에 나타나는 의미 속성들로, 이 속성들에서 [전경], [배경], [이동], [경로]는 필수적 속성, [이동방식/원인]은 부가적 속성으로 분류된다(Talmy 2000: 25-27). 이 속성들은 이동의 인식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것으로, ‘실제이동’뿐만 아니라 ‘가상이동’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다음 예를 살펴보자.
(3) a. 기차가 대구에서 서울로 간다.
[전경] [경로] [이동]
b. 이 길이 대구에서 서울로 간다.
[전경] [경로] [이동]
예문 (3)은 (1)에서 제시한 ‘실제이동’과 ‘가상이동’의 예를 ‘이동 사건’의 의미 속성을 통해 분석해 본 것이다. (3)에서 볼 수 있듯이, ‘실제이동’과 ‘가상이동’에 나타난 의미 속성이 동일하다. 단지 ‘기차’, ‘이 길’로 나타나는 [전경]의 속성이 이동체 혹은 비이동체이냐에 따라 개념화자의 이동 인식이 달라지게 된다. 즉, ‘이동 사건’의 속성 중에서 [전경]은 ‘가상이동’ 인식에서 중요한 속성 중 하나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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