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장난
탕원푸는 수재 소리를 들으며 자라 명문 대학에 입학한 탕좡 마을의 자랑이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학생에게 수작을 걸다가 쫓겨나 고향으로 되돌아온다. 탕원푸는 온갖 수모를 견디며 다시 일어서기 위한 기회를 엿보며 살아간다. 문화 대혁명이 시작되는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탕원푸는 유마디 진 최고 지도자인 진장 두창밍을 몰아내고 권력을 누린다. 하지만 권모술수에 능한 두창밍은 더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고, 그때부터 탕원푸는 쫓기는 신세가 되는데…….
“당신 누구야?”
내가 소리치자, 그 사람이 소리 죽여 나를 불렀다.
“린빙.”
“탕원푸!”
나는 재빨리 숲 속으로 걸어갔다. 대낮처럼 밝은 달빛 아래 탕원푸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을 잡초처럼 긴 머리카락과 입술 언저리까지 덮고 있는 덥수룩한 수염,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해진 작은 옷. 자세히 보니 여자의 솜저고리를 걸치고 있었다.
탕원푸가 웃으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의 안경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주로 이야기를 했다. 그는 한번 말문이 터지자 일사천리로 말을 쏟아 냈다. 그는 말하는 도중에도 몇 번이나 다짐했다.
“린빙, 안심해. 절대로 너를 끌어들이지 않을게!”
나는 그의 솜저고리를 보며 킥킥거렸다. 그도 따라 웃었다. -44~45쪽에서
진실의 벽
까만 기와와 빨간 기와를 맨손으로 일궈 낸 왕루안 교장 선생님은 거리에 쓰러진 거지 모녀를 거두어 학교 일을 돌보게 한다. 하지만 거지 모녀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소문이 나돌아 결국 교장 자리를 내놓고 교정을 가꾸고 화장실을 청소하며 학교 관리인으로 살아간다.
린빙과 친구들은 그 사건의 진위를 파헤치기 위해 거지 모녀를 찾으러 떠나는데……. 왕루안 교장 선생님의 억울함을 풀어 줄 수 있을까?
이틀 후, 우리는 학교로 돌아왔다. 다른 길로 떠났던 두 팀도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와 있었다. 우리는 교정에서 우연히 왕루안 교장 선생님을 만났다. 나무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왕루안 교장 선생님의 손에는 전지가위가 들려 있었고, 발아래에는 잘려 나간 나뭇가지와 낙엽이 쌓여 있었다. 그는 손으로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 내며 물었다.
“린빙, 네 녀석들 며칠 동안 어디 갔었냐? 너희들 기숙사에 일주일이나 불이 꺼져 있더구나.”
마수이칭이 대답했다.
“저희 집에 놀러 갔었어요.”
“그렇게 놀기만 하면 쓰냐? 공부를 해야지.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학교에 있을 줄 아니?”
내가 말했다.
“이제 그만 놀 거예요.”
“그럼 됐다.”
우리는 열댓 걸음을 걷다가 뒤돌아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마음이 싸하게 쓰려 왔다.
‘왕루안 교장 선생님, 당신은 아마도 영원히 지옥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 같군요.’
다음 날 나와 마수이칭은 까만 기와의 복도에서 햇볕을 쬐며 나머지 두 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셰바이싼과 다른 친구 하나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들 뒤로 두 여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내가 소리를 질렀다.
“찾았구나!” -112쪽에서
선생님, 나의 선생님
린빙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국어를 가르치는 아이원 선생님이 전근을 온다. 아이원 선생님은 린빙의 삶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게 되고, 그녀 또한 까만 기와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데…….
나는 내 작문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꾸준히 아이원 선생님 방을 찾아갔다. 내가 방에 갈 때마다 선생님은 차를 내왔다. 세심한 동작이 무의식중에 내 의식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한편으로는 친절과 존중 같은 감정을, 다른 한편으로는 일정한 거리감을 느꼈다. 그 거리감은 나에게 차분함과 안정감을 주었다.
아이원 선생님은 어수선하고 지저분하다는 사실마저도 깨닫지 못했던 고집스럽고 무식한 촌뜨기 소년을 청년기로 가볍게 밀어 넣었다. 나는 침착하고 조용해졌으며 눈빛도 예전에 비해 훨씬 총명해졌다. 그리고 아무 의식 없이 세상을 대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선생님이 했던 말들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사물을 가만히 응시해 봐. 그러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143~44쪽에서
소년과 어른 사이
중학교 때 린빙에게 비참한 열등감을 느끼게 했던 부잣집 아들 자오이량은 결국 까만 기와에 입학하지 못한다. 염색 공장을 하는 아버지를 항상 부끄럽게 여기던 자오이량은 결국 가업을 잇기로 하고 열심히 살아가려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화재로 집과 공장이 모두 잿더미가 되어 버리고 마는데…….
“누가 뗏목을 풀고 목재를 훔치고 있어!”
마수이칭이 다가와 큰 강을 손가락질하며 소곤거렸다.
우리는 도둑을 잡을 생각에 신이 나서 발소리를 죽여 가며 살금살금 앞으로 나아갔다. 강이 보이는 곳에 이르자 숲 속에 몸을 숨기고 자세히 관찰했다. (중략)
“나무를 내려놔, 이 도둑놈아!”
그런데 그는 목재를 내려놓기는커녕 오히려 꼭 끌어안았다.
“어서 나무를 내려놔, 이 도둑놈아!”
그 사람이 몸을 덜덜 떨면서 목재를 땅으로 떨어뜨리자 흙탕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야오싼촨이 사방에다 대고 소리 질렀다.
“도둑 잡아라!”
그런데 그 순간, 그 사람이 우리 앞에 무릎을 꿇었다.
“린빙, 나야…….”
그가 고개를 들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어둑어둑한 날씨 속에서 우리는 희미하게 그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자오이량!
그는 입술을 꼭 문 채 온몸을 떨며 목구멍에서 오열을 터뜨렸다. 쉴 새 없이 퍼붓는 비를 맞아 그의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흘러내리며 두 눈을 덮고 있었다. 절망에 빠진 그의 두 눈이 우리의 동정을 구하며 떨고 있었다.
나와 마수이칭, 셰바이싼, 야오싼촨이 함께 약속했다.
“우린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을 거야.” -220~222쪽에서
연애편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린빙은 몸의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쑥쑥 자라고, 손발은 날이 갈수록 투박해졌고, 밤이 되면 중학교 때부터 짝사랑하던 타오훼이를 애타게 그리워하며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녀의 집 앞에서 서성이지만, 끝내 말 한마디 건넬 수 없었다. 3학년 2학기가 끝날 무렵, 린빙은 용기를 내 그녀에게 연애편지를 쓰는데……. 과연 린빙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졸업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들자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일주일 동안 정성을 다해 한 자 한 자, 이제 막 글쓰기를 배우는 아이처럼 정성 들여 써 나갔다. 낭만적인 감정에 빠져 화려한 미사여구와 과장된 형용사를 마구 사용했는데, 심지어 소설에서 몇 구절 베껴 쓰기까지 했다. 그 당시의 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나는 편지를 단단하게 봉한 다음 마수이칭에게 건넸다. 내가 직접 타오훼이에게 건넬 수는 없었다.
마수이칭은 그날 저녁 5시에 타오훼이에게 건네주겠다고 했다.
나는 야간 자습 시간에 들어가지 않았다. 연못가 나무 그늘에 앉아 두근거리며 덜덜 떨리는 두 손을 잡은 채 학교 교정에 어둠이 깔릴 때까지 앉아 있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기숙사로 돌아왔다.
편지를 받고 난 뒤의 타오훼이 얼굴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하루 더 수업 시간에 들어가지 못했다. 황혼이 질 무렵, 까만 기와로 걸어가는 타오훼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