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아프리카 연구의 역사는 일천하나 나름대로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지역학과 어문학으로 대별된다. 1980년대 초에 시작되었으니 이제 30여년의 역사를 지닌다. 하지만 아프리카 연구의 방법과 성과에 대한 논의나 컨센서스는 아직 부재하다. 이 책은 아프리카 연구의 한 접근 사례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사회언어학(Sociolinguistics)이라는 분과에서 개척한 새로운 연구 전통이다.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이는 언어학과 사회학의 인접부분을 하나의 학문분과로 정립한 영역이다. 그러므로 사회학과 언어학 중 어느 부분에 더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사회언어학’혹은 ‘언어사회학’이라는 명칭이 가능하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후자보다는 전자의 전통에서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고 대부분의 연구 성과도 사회언어학이라는 접근법에서 더 많이 이루어졌다. 이 책도 사회언어학적 연구 결과에 더 의존하긴 하지만 Fishman(1968)이나 Heine(1979) 같은 책은 사회학이라는 측면에 보다 많은 관심을 할애한 것 같다. 필자는 지난 27년간 강의에서 ‘아프리카 언어사회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아프리카 언어보다는 아프리카 사회가 학생들에게 더 친근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아프리카를 연구함에 있어 언어구조 보다는 사회구조와 현상에 대한 연구가 더 시대적으로 요구되고 있다고 보여 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회학적 연구가 현상만을 기술하거나 취급함으로서 아프리카 고유의 사회적 특징이나 본질을 규명해 내는데 언어학적 접근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 분명했다. 이런 관점은 소위 지역학 연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프리카의 정치와 경제 현상에 대한 연구는 글로벌한 시각, 서구적 시각, 아니면 적어도 우리의 경제와 국제 정치 외교상의 이해라는 앵글이 항상 개입되므로 실제적 이해와 관심사라는 측면을 고려하면 보다 유용한 측면이 있으나, 아프리카 본질을 이해하고자 하는 순수한 연구 목적을 생각한다면 상당한 한계와 제약이 있다는 점은 결코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은 아프리카 사회언어학 이라는 이름으로 결정했다. 언어학은 일차적으로 언어자료와 구조, 발화와 소통 현상을 다루는 것이지만 사회현상과 분리하여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회연구와 자연히 연결될 뿐만 아니라, 언어학이 언어과학(linguistic science)이라고 불릴 만큼 검증과 자료를 중시함으로서 연구 방법론에서의 철저함과 정교함, 원리 원칙에 대한 보편성을 유도해 낸다는 점에서 그 어느 다른 분과에 비교할 수 없는 혁혁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언어학 연구의 발전에 힘입어 단순히 언어구조를 기술한다는 차원을 넘어 언어와 관련된 역사, 비교, 문화, 문학 텍스트 분석 등의 분야가 하나의 과학 분야로서의 그 영역들(역사비교 언어학, 인류언어학, 텍스트 언어학)을 공고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사회언어학의 논의 주제는 거시적인 것과 미시적인 것으로 나뉠 수 있다. 이 책에서 아프리카 사회의 언어문제, 언어정책, 교통어의 출현, 사회영역과 언어기능, 아프리카 국가별 언어상황, 국어/공식어의 선포 등의 주제(제 1장에서 5장 까지)는 거시적 접근에서 나타나는 주제들로 아프리카 사회집단을 염두에 두고 다루어야 할 사항들이다. 후반부의 언어 사용과 선택, 구조변화, 담화-화용적 설명, 언어변화 유형(제 6장에서 8장까지) 등은 언어사용의 주체인 개인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들이 쓰는 언어자체의 구조, 코드의 특성 등은 언어자료에 대한 분석으로 언어학 분야의 핵심영역으로 이어지는 부분이다. 이는 미시적 분석 분야로 이해될 수 있다. 거시와 미시 영역은 겉모습과는 달리 실제적으로는 상호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마지막 9장에서 다시 언어교체와 사멸, 변동 상황으로 되돌아갔는데 이는 개인과 사회가 서로 긴밀하게 함께 작용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하나의 개론서로서 저자가 오리지널하게 기술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연구결과들을 소개하고 설명하며 나아가서는 수정 보완하고 있다는 점에서 편저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이들을 나의 시각으로 배열하고 정리하여 아프리카 연구를 사회언어학적 시각에서 접근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쾰른 대학교 유학시절 내 배움의 기초가 되었던 하이네 교수의 초기 저술이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독자들은 읽어가면서 알게 될 것이다. 이 외에도 허드슨, 피시맨, 화이틀리, 스코튼, 브렌찡거, 볼프 등의 저술이 이 책을 써 내려가는 데 있어 핵심적 영향을 필자에게 끼쳤다.
본문의 해당부분에 일일이 그 출처를 밝혀 원하는 독자들의 보다 세심한 내용을 공부할 수 있게 하였다.
아프리카 지역 연구에는 본질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내재해 있다. 서구의 경우에도 연구 전통에 따라 그 주안점을 달리하고 있다. 아프리카를 직접 식민 지배했던 영국과 프랑스, 아프리카 커넥션을 여전히 갖고 있는 독일 등 유럽지역은 아프리카연구가 정치와 경제 등 사회과학이 한 분야를 이루고, 다른 한편으로는 언어와 문화를 중심으로 한 또 다른 분야가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특성상 지리, 환경, 지질, 해양 등 자연과학부분에서는 나름의 관심주제에 따라 이 지역을 연구하기도 했다. 결국 아프리카 연구는 이론상 모든 학제분야에서 가능한 것이다. 인문학 분야에서 오랜 식민지배 역사라는 현실 때문에 아프리카의 본질이 흐려지거나, 혼합되거나 혹은 왜곡되어 진정한 모습을 읽어내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대륙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서구 언어들이 공식어 지위를 향유하고 있고, 현대적, 근대적 영역에서 이 언어들의 역할이 주도적이다. 아프리카는 극심한 변화의 압력 아래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해도 본래의 그들 모습이 무엇이었고 지금 새로 등장한 외부문화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2090여개 아프리카 전통 언어들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문화자산으로 간주되고 있다. 어휘와 문법은 이들의 문화이며 동시에 아프리카인들의 정신구조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아프리카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이들 아프리카 언어들을 연구하는 것이라 생각된다(Heine & Nurse 2000, 2008). 고도의 언어학적 전문 지식과 훈련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이를 바탕으로 언어외적 요인인 역사와 사회를 이해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1980년대 초 스와힐리어 사전편찬 작업 이후 스와힐리어 문법(권명식 2011)을 국내에 소개했고 역사 비교언어학적 방법을 토대로 아프리카 언어들을 계통분류하면서 아프리카인들의 기원과 이주, 그리고 현 시점의 정착 과정을 기술한 ?아프리카어 연구입문, 계통분류 및 구조비교 분석(권명식 2004)?은 이런 정신 선상에서 출간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분기(divergence)와 계통연구에 이어 나와야할 언어집단간의 수렴(convergence)과 접촉의 문제(Aikhenvald & Dixon 2001, 2006)는 바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아프리카 사회언어학의 핵심주제이다. 대륙 내부뿐만 아니라, 대륙 외부로 부터 들어오는 다양한 요소들과의 접촉은 언어공존을 통한 다언어 상용, 언어선택, 코드-전환, 언어교체 등의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다(Dimmendaal 2001, 2007, 2010). 아프리카 국가들이 해결해야 할 언어정책, 언어적 소통의 문제 등은 국가 권력의 문제로 이어진다. 오늘날 지구촌 사회에서 아프리카는 주도적 힘을 상실하고 경쟁에서 탈락하여 그로인한 결과로서 수많은 전통 언어집단들이 사멸과 소멸의 과정을 겪어가고 있다는 연구보고들이 있다(Dorian 1981, Brenzinger 1992, 1998). 또 다른 많은 소수 언어집단들이 아프리카 링구아 프랑카와 글로벌 언어인 영어, 프랑스에 내밀려 주변화와 혼종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 피진 크리올어는 아프리카인들의 주도적, 주체적, 그리고 창조적 반응으로 평가될 수도 있으나 그 뒷전에 있는 사회, 역사적 맥락은 강한 식민화 의지가 작용하고 있는 외부 권력의 존재를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도 아프리카 연구가 아프리카 인들의 목소리(구전 전통의 기술과 해석)에 귀 기울이고, 아프리카인들 스스로 직접 자신의 언어로 기록한 문헌 텍스트를 번역하고, 해석하는 작업(문학 자료에 대한 텍스트 언어학적 접근)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도움이 없지 않았다. 아프리카 사회언어학 강의를 주의 깊게 듣고 토론한 아프리카어과 학생들, 아프리카 제 문제에 대한 학술적 논의를 가능케 하고 있는 한국 아프리카 학회, 외대 아프리카 연구소, 학과 동료 선배교수들과 후배 강사 여러분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연구를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도록 평생 뒤에서 물심양면 보살펴준 나의 정신적 친구이자 생의 반려자인 아내 송미루에게 이 책을 내면서 더없는 감사와 말 할 수 없는 기쁨의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다. 끝으로, 이 책을 품위 있고 아름답게 출간해준 한국외대 출판부 직원 관계자 선생님들께도 다시 한 번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이다.
2011년 10월 20일 쉰여덟 번째 생일날
왕산 연구실에서 저자 권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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