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의 유래는 당唐대 조주선사의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에서 그 근원을 찾는다.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에게 “일체 모두가 불성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럼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니 조주 스님이 “없다(無)”라고 하시니, 그 스님이 생각하기에 ‘모든 것에 다 불성이 있다 하셨는데, 왜 오직 개는 불성이 없지’라고 하는 ‘의문(疑情)’이 생겨야 하며, 그 의문이 자연스럽게 간看?관觀의 대상이 되어서 행주좌와어묵동정과 오매寤寐에 ‘구슬이 쟁반 위를 퉁기지 않아도 저절로 구르듯’ 한순간도 떠나지 않고 또렷또렷(惺惺歷歷)하게 계속되어, 저도 모르게 능연能緣인 간看과 소연所緣인 화두話頭가 본래 하나인 자리로 들어가게 함이 바로 간화선 공부의 묘미다. (-‘해제’ 중에서)
‘식정이 곧 진공묘지’라 절대로 달리 지혜가 있을 수 없거니와, 만약 달리 얻을 수 있고 달리 증득함이 있은즉 오히려 옳지 않느니라. 고요한 곳으로 옮음을 삼고 시끄러운 곳으로 그름을 삼을진댄, 바로 세간의 모습을 무너뜨리고 진실한 모습을 찾음이며, 생멸을 여의고 적멸을 구함이라. 고요함을 좋아하고 시끄러움을 싫어할 때, 바로 공부를 몰아붙일지니, 문득 시끄러움 속에서 고요할 때의 소식을 어둠이 밝음 되듯 되찾는다면 그 힘이 부들방석 위에서 보다 훨씬 더 뛰어나리라. (-76쪽, 증 시랑에게 답하는 편지_ 두 번째)
그러므로 오직 깊은 곳은 얕게 해야 하고 얕은 곳은 깊게 하며, 설은 곳은 익게 해야 하고 익은 곳은 설게 할지어다. 만약 세간의 번잡하고 수고로운 일들을 헤아린다고 느껴질 때거든, 애써 물리쳐 버리려 하지 말고, 다만 헤아리는 곳으로 가서 살며시 마음을 화두에다 돌려놓으면 무한한 힘을 덜고 또 무한한 힘을 얻으리니, 청컨대 그대는 다만 이와 같이 화두만 끝까지 다잡아갈지언정, 마음을 두어 깨닫기를 기다리지만 않는다면 별안간(忽地) 스스로 깨달으리라. (-203쪽, 조 대재에게 답하는 편지)
뜻대로 되는 가운데 반드시 뜻대로 되지 아니한 시절을 늘 생각하면서 부디 잠시도 잊지 말지어다. 오직 근본만을 얻을지언정 끄트러긴 (枝末) 근심치 말며, 오직 부처되기만을 바랄지언정 부처가 말할 줄 모를까 근심치 말지어다. 이 한 점은(一着子) 얻기는 쉬우나 지키긴 어렵나니 부디 소홀치 말지어다.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바르게 하여 깨달은 것을 넓혀서 충실하게 한 다음에 자기의 나머지를 미루어서 사물에 미치게 할지니, 그대가 채득한 것을 한쪽만 고집하지 않을뿐더러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을 일으켜 애써 지니려고도(管帶) 하지 않으며, 마음을 메마르게 하여 뜻을 잃어버리지도 않으리라 여기노라. (-220쪽, 유 보학에게 답하는 편지)
바로 번뇌할 때에 자세히 헤아려 따져 묻되 “어디로부터 일어났는가”라고 하라. 만약 일어난 곳을 끝까지 따져도 밝히지 못하면 “지금 번뇌하는 것은 도리어 어디서부터 왔는가” 마침 번뇌할 때, ‘있음인가, 없음인가? 헛됨인가, 참인가’를 끝까지 따지다 보면 마음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리니, 생각(思量)하고 싶거든 곧장 생각하고 울고 싶거든 바로 울어 버려라. 울고 울다가, 생각하고 생각타가 마음(藏識)속에 허다한 은애습기를 모두 떨어 버려 다할 때에 자연히 얼음이 물에 돌아감과 같아서 나의 이 본래 번뇌도 없고, 사량도 없고, 근심도 없고, 기쁨도 없는 곳으로 돌아갈(還) 뿐이라. 세간에 들어서 세간 벗어나기를 남음이 없게끔 한다면 세간의 법이 곧 불법이요, 불법이 곧 세간의 법이니라. (-294쪽, 왕 내한에게 답하는 편지_세 번째)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더라도 좋다.”고 하였으니, ‘깨닫는 것이 무슨 도인지’ 모르겠네! 여기에 이르러 어찌 눈 깜박하는 순간인들 용납하겠는가! 또 ‘나의 도는 하나로써 꿴다.’고 함을 인용해서는 안 되느니라. 반드시 스스로 믿고 스스로 깨달을지니, 말로 할 수 있건 결국 입증할 증거가 안 되느니라. 반드시 스스로 보아야 하고 스스로 깨달아야 하며, 스스로 믿어서 끝내어야만 하느니라. (-338쪽, 왕 장원에게 답하는 편지)
평상시 생활(四威儀) 속에 차별 경계를 겪으면서 힘 덞을 깨닫는 때가 바로 힘 얻는 곳이니, 힘 얻는 곳은 지극히 수월한 곳(省力)이라, 만약 한 터럭만큼이라도 기력을 써서 버티려(支撑) 한다면 반드시 삿된 법이요 불법이 아니니, 다만 끈질기고 꾸준한 마음(長遠心)을 가지고 ‘구자무불성’ 화두와 더불어 겨루어 갈지어다. 이리 겨루고 저리 겨루매 마음이 갈 바가 없다가도 홀연히 잠에서 꿈 깬 것 같으며, 연꽃이 핀 것 같으며, 구름을 헤치고 해를 본 것 같으리니, 이러한 때에 이르면 자연히 한 덩어리를 이루리라. (-362쪽, 종 직각에게 답하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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