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에서 딱 하루만 짧게 관광을 해야 한다면 당연히 프라도 미술관에 가는 게 우선이었다. 스페인에 오기 전부터 아내와 막내는 ‘반드시’라고 미술관 관람을 요구했다. 우리 가족의 가이드 역할을 맡은 소연이도 ‘당연히 마드리드에 가면 프라도 미술관을 봐야 하고, 자신이 켈리 언니에게서 여러 번 교육을 받았으니 어지간한 작품 해설이 가능하다’고 프라도 미술관 관람을 추천했다.
--- 「마드리드의 심장, 프라도 미술관」 중에서
바로셀로나까지 6시간 운전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을 감안해 아침 일찍 마드리드를 떠났다. 덕분에 아직 관광객이 별로 없는 한적한 시간에 톨레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톨레도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언덕 위에 잠시 차를 세우고, 예전에 성벽이었을 난간 위에 올라서 사진을 찍었다. 푸르게 굽이쳐 흐르는 타호 강을 끼고 고딕 양식의 주택들이 밀집해 있는데,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주황색 지붕을 이고 있었다. 유럽에 와 있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전해주는 톨레도 시가지 전경에 우리 가족은 그저 황홀할 뿐이었다. ‘그래 정말 유럽에, 스페인에 우리가 왔구나.’
--- 「태양을 조각한 톨레도 대성당」 중에서
후반전이 진행되면서 큰 TV를 보고 있던 멕시칸들이 자주 탄식을 했다. 잘못하면 16강 탈락의 위기였다.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응원하던 우리 넷과는 달리 지금껏 조용히 보고 있던 멕시칸 몇이 “꼬레아! 꼬레아!” 소리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딱 보니 견적 나오네. 이 애들 스웨덴한테 지니까, 독일이 크게 이기면 저희들 떨어질까 봐 겁먹었다. 우리가 최대한 독일과 비기기라도 해달라는 거다. 그때부터 그 카페의 갑은 우리 가족 넷이었다. 최대 다수인 멕시칸들이 저희 나라 응원은 안하고 큰 TV에서 작은 문간방 TV로 시선을 돌렸고, 우리가 이끄는 대로 ‘꼬레아!’를 연호하며 함께 응원했다. 뭐, 우리한테는 심히 고마운 일이었다.
--- 「발렌시아, Again 2002」 중에서
바로 그때, 차 뒤쪽 멀리서 불빛이 반짝 보였다. 자동차다. 누군가 이 산길로 우릴 따라오고 있다. 누굴까. 집 주인이 마중 나온 것이라면 당연히 앞쪽에서 와야 했다. 이 야심한 시각에…… 칠흑 같은 이 산길을…… 누가, 왜 따라온단 말인가?…… 집주인과 저 추적자가 혹시 한패인가? 본능적인 경계심으로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무기가 될 만한 걸 찾아야 했다. 휴대폰을 좌우로 급하게 비추며 몽둥이가 될 만한 게 없는지 찾고 있는데, 어느새 그 차가 벌써 우리 차 뒤에 와서 섰다. 나를 향해 라이트를 상향으로 비추고 있어 운전자가 내리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운전자가 성큼성큼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아직 몽둥이를 준비하지 못했다. 나는 여차하면 휴대폰으로 머리를 칠 요량으로 휴대폰만 꽉 쥐고 전방을 주시했다.
--- 「공포의 집」 중에서
소매치기가 들끓는 해변 모래사장에 여권과 귀중품을 모두 가지고 가서 해수욕을 즐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크게 안심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공영주차장에 제대로 주차해놓은 차 안에 귀중품을 넣어두고 필요한 것만 가지고 해변으로 가자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게다가 만일 우리 가운데 누구 하나의 여권만 없어져도 결국 네 사람이 같이 움직여야 하는 터이니, 차라리 여권을 모두 모아 한 가방에 넣고 밖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트렁크 맨 안쪽에 놓아두는 게 안전할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그런데 흡사 우리 생각을 누가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차 안 다른 물건은 손 안 대고 트렁크만 뒤져 귀중품을 모아놓은 노란 가방만 가져갔다. 그것도 벌건 대낮, 사람이 많이 다니는 주차장에서 멀쩡한 차 창문을 박살내고. 그 안에는 현금 1,400유로와 여권 세 개, 스페인 이케르네 가족에게 줄 고급 수제 핸드백, 화장품, 충전기, 지갑, 국제면허증 등 우리 여행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자산과 필수품이 모두 들어 있었다. 아뿔싸……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랬는데……. 우리는 여행의 초입에 모든 걸 잃고 말았다.
--- 「아, 노바 이카리아 해변」 중에서
천만다행으로 이번 여행을 위해 만든 신용카드 한 장만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노란가방이 아닌 내 옷 주머니에 넣어두었었다. 그 카드마저 없었다면 우리의 이번 여행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을 터였다.
“아빠, 해산물이 좋아 보이는데 좀 비싸네.”
“한국보다 더 비싼걸?”
“여보, 어떻게 할까, 다른 거 먹을까?”
“먹어, 아껴서 이백만 원 도둑놈도 줬는데, 실컷 먹어. 걱정은 한국 가서 하자. 소연아, 저 잘생긴 오빠한테 먹고 싶은 거 다 달라고 해.”
가장의 마음을 아는지, 시장의 천장 위로 세차게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바르셀로나 관광은 끝났다. 예약해놓은 구엘 공원에는 가보지도 못했다. 여권과 현금과 귀중품을 모두 잃어버린 우리는 암담했다.
--- 「아, 노바 이카리아 해변」 중에서
나는 캠핑 예찬론자다. 캠핑이 다른 취미생활보다 좋은 건 가족 간에 이루어지는 대화가 캠핑의 주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아끼는 직장 후배에게 캠핑을 권유하기도 했다.
“캠핑을 해. 자네 애들이 좋아할 거야. 캠핑장 가면 할 게 없잖아. 모닥불 피워놓고 맛난 것 먹으며 할 일이 뭐겠어. 대화밖에 없잖아. 자연히 애들하고 많은 이야길 하게 돼. 부모 자식 간에 대화를 하는 집에 애들이 잘못되는 경우는 없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 아이들은 금방 커. 자네를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 「캠핑 퐁 드 아비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