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지금 이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이 문득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가 찾아온 듯, 다시 떠오른 것이다. 이 이야기들은 너무나도 강렬한 색채와 지금껏 경험한 그 어떤 것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묘한 예감들로 가득 찬 향기를 품고 있었다. 거기엔 나숄트 씨네에 살던 리제가 저녁마다 건물 입구 앞 통로에 앉아 감자 껍질을 벗기며 이야기를 들려주던 시간들이 있었고, 일요일만 되면 아침 댓바람부터 바지를 둥둥 걷어붙이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가재나 작은 물고기를 잡으러 가던 시간들도 있었다. 나중에 흠뻑 젖은 나들이옷 때문에 아버지에게 매를 맞을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그땐 수수께끼 같이 진기한 일들도, 그리고 사람들도 참 많았었다. 지금 와 돌이켜 보니 정말 오랫동안 그런 걸 잊고 지냈던 것 같다. (중략) 그러면서 한스는 이 어둡고 좁은 골목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사실, 그렇다고 해서 생동감 넘치고 경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pp.38~39
아무도, 어쩌면 한스를 측은하게 여기는 보충 담당 교사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소년의 조그마한 얼굴에 번진 저 무기력한 미소 뒤에서 영혼이 침몰하며 고통스러워 하다가 두려움에 차서 절망적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익사하고 있다는 걸 알아보지 못했다. 또한 아무도 학교가, 그리고 아버지와 몇몇 교사의 야만적인 공명심이 이 깨어지기 쉬운 여린 성정의 소년을 그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감수성이 가장 풍부하고 또 가장 위태로운 소년 시절에 그가 그렇게 날마다 밤이 깊도록 공부를 해야 했던 건 왜였겠는가? 사람들이 그에게서 토끼를 빼앗아 가고 라틴어 학교 시절에 의도적으로 친구들과 떼어 놓았던 건 왜이며, 낚시와 한갓진 시간은 누리지 못하게 금지해 놓고 천박하고 소모적인 공명심이라는 공허하고 속된 이상을 주입한 건 또 왜였겠는가? 왜 사람들은 시험이 끝난 뒤조차도 그가 수고하여 얻은 휴가 기간을 누리게 해 주지 않았던 걸가? 그들이 그렇게 몰아대던 그 어린 말은 이제 길가에 쓰러져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어 버렸다. ---pp.166
총명한 소년 한스 기벤라트는 가족과 주위의 기대와 격려 속에서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엄격한 규율과 학업에 대한 부담감, 우정에 대한 갈망 속에서 흔들리다가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헤르만 하일너와 가까워진다. 도식적이고 갑갑한 교육 체제에 맞서 저항하는 헤르만 하일너가 학교를 벗어난 이후 신경쇠약이 심해진 한스는 결국 학교를 나와 고향으로 돌아온다. 우울증과 자살 충동, 무기력의 나날 속에서 방황하던 한스는 결국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모를 죽음으로 삶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