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다람쥐야
잘 지내니? 나는 잘…… 아니 사실은, 네가 내 생각을 전혀 안 하니까 그다지 잘 지내는 것 같지 않아.
한 번씩 내 생각을 하긴 하니?
그럼 안녕!
―부엉이가 --- p.9
슬픔은 아주 컸지만 온화하기도 했다. 사자는 갈기를 흔들며 한숨을 들이쉬고, 볼에 흐르는 눈물방울을 꼬리로 털어 냈다.
“너도 할 수 있는 게 없잖니, 귀뚜라미야.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거야, 그 누구도…….” 사자는 흐느끼며 말했다. --- p.23
“여행을 가야 해요. 당신은 이제 아픈 것도 지겨운 상태니까요.”
“전 전혀 여행을 가고 싶지 않아요. 저에게 좋을 리가 없잖아요?” 다람쥐가 말했다. --- p.29
그는 덤불 아래 있는 방구석에 앉아 외로운 자신에 대한 생각에 빠졌다. 누군가를 보고 싶은 건 아니고, 누군가로부터 무슨 소식이든 듣기를 바랄 뿐이었다. --- p.32
다음 날 아침 고슴도치가 편지를 발견했다. 편지를 읽자마자 눈물이 흘렀다. “사랑하는 고슴도치”를 읽고 또 읽었다. 사랑하는 고슴도치, 사랑하는 고슴도치. 그래 나는 사랑하는 고슴도치야.
그리고 잊지 않기 위해 편지를 이마 제일 아래에 있는 가시에 찔러 두었다. 바로 눈앞에 편지가 걸려 있어, 그가 사랑하는 고슴도치라는 데에 의심이 생길 때마다 볼 수 있도록. --- p.38
흰개미는 모든 게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좀 더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들을 모조리 내다 버렸다.
결국 덩그러니 혼자만 남게 되었다. 자기 몸마저 버리려고 들어 올려 보았지만, 그러다 바닥에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또다시 넘어지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흰개미는 자신이 완전히 쓸 데 없지는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 p.39
제 생일 케이크를 굽다가 망쳤음을 전합니다.
그러니 제 생일에 오지 마세요.
그래도 생일선물을 주고 싶다면, 뭔가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으로 부탁합니다.
제가 거의 절망 직전이거든요.
― 큰개미핥기가 --- p.47
동물들은 고개를 저으며 큰개미핥기와 그의 절망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제각기 뭔가 용기를 주는 걸 만들어 그에게 보내거나 그의 집 앞에 놓아두었다.
새까맣게 타 버린 케이크 연기로 자욱한 가운데 서서 선물을 풀어 본 큰개미핥기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고는 눈물을 쏟아 냈다. 그날 저녁 큰개미핥기의 절망은 아주 천천히 멀어져, 수평선 너머 관목 숲으로 사라져 갔다.
잠시 후 머리 위로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생각했다. 좀 더 자주 뭔가를 망쳐야겠어……. --- p.50~51
얼마 지나지 않아 온 세상이 춤과 먹을 것으로 넘치고 모두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누군가가 “가끔은 좋을 때도 있어.”라고 하면 또 다른 이가 “지금처럼.”이라고 답했다.
멋진 날이구나. 모두들 생각했다. --- p.62
다람쥐는 다시 생각했다. 나는 바로 지금 존재할 뿐인데. ‘나중’에는 있어 본 적이 없고,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어. 다람쥐는 항상 자기 자신보다 앞서 나갔던 생각들을 더 이상 좇을 수가 없게 되자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그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지금이 아니면 아무 때도 아닌 거야.” 그러고는 곧바로 잠이 들었다. --- p.67
큰개미핥기는 자기 자신이 너무 불만스러워 동물들에게 편지를 썼다.
친애하는 동물들에게
제발 나를 잊어 주겠니?
최대한 빨리 부탁해.
― 큰개미핥기가
(...)
큰개미핥기야
우리는 너를 잊을 수 없단다,
유감스럽게도.
큰개미핥기는 숲속 가장자리에 있는 관목 옆에서 편지를 읽었다.
달빛이 비치고,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 p.68~72
다람쥐가 실의에 빠진 채 문 앞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다. 날씨가 나쁘거나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날이면 느끼는 사사로운 감정이었다. 언젠가 개미가 말해 주었다. 그런 감정을 ‘실의에 빠졌다.’라고 한다고.
--- p.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