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몽 1936]
애순(문예봉 역)은 주부이지만 허영이 심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 남편 선용(이금용 역)이 그녀를 내쫓자, 애순은 딸 정희(유선옥 역)를 내버려둔 채 정부 창건(김인규 역, 김한의 본명)과 함께 호텔에서 지낸다. 공연에서 본 무용가에게 관심을 보이던 애순은 창건이 돈 많은 유지가 아니라 세탁소 일꾼임을 알게 된다. 창건 일당은 호텔에서 강도를 저지르고 이를 눈치 챈 애순은 경찰에 신고한다. 애순은 무용수를 쫓아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가다 정희를 친다. 병실에서 정희와 같이 누워있던 애순은 약을 먹고 자살한다.
[군용열차 1938]
김점용(왕평 역)과 이원진(독은기 역)은 함께 살고 있는 친구 사이이다. 점용은 열차를 운전하는 기관사로 군용열차를 운전하길 원하고, 원진은 점용의 여동생 영심(문예봉 역)과 결혼하려는 연인 사이이다. 하지만 기생인 영심은 일을 그만두려면 돈 2천원을 내야만 한다. 이 때 스파이가 원진에게 접근해 돈 2천원을 줄 테니 군용열차에 대한 정보를 달라고 한다. 원진은 스파이에게 정보를 주고 난 뒤 양심의 가책을 느껴 친구 점용에게 사실을 털어 놓고 점용은 군용열차가 폭발당하기 전에 경찰에 신고해 중국계 스파일 일당은 모두 검거된다. 만주에서 점용의 큰 형님이 돌아오고, 점용은 군용열차의 기관사가 되어 북으로 출발한다. 원진은 점용이 운전하는 군용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점용은 원진의 시신 앞에서 묵념하고 그의 유서를 발견해 읽는다. 점용이 모는 열차는 기적 소리를 내며 힘차게 출발한다.
[어화 1939]
인순은 서울서 일하고 있는 옥분을 따라 서울로 가고 싶어 한다. 연이은 흉어로 빚 독촉에 시달리는 아버지 춘삼(윤북양)은 좋지 않은 날씨에 인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장주사(나웅)는 빚 대신 인순을 첩으로 데려 가려 하고 그의 아들 철수는 서울에 직장을 구해 주겠다며 인순을 데려가 순결을 빼앗는다. 철수와의 관계로 괴로워하던 인순은 옥분의 도움을 받아 거처를 옮기지만, 짐이 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기생이 된다. 결국 인순은 자살을 기도하지만 목숨을 구하고, 천석과 함께 고향으로 내려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작품설명
[미몽]
“난 새장에 든 새는 아니니까요!”
“살림살이 잘하는 사람과 사시구려. 나하고 안 살면 그만 아니요?”
양주남 감독의 1936년 작 <미몽>에서 주인공 애순(문예봉)은 ‘데파트’에 가는 걸 막는 남편에게 이같이 단호하게 쏘아붙인다. 1930년대를 살았던 여성, 심지어 유부녀인 그녀의 외침은 꽤나 도발적이다. <미몽>은 ‘새장의 새’가 되길 거부하고 거리로 나선 유부녀 애순의 일탈과 참회의 과정을 담은 통속극이다. <미몽>에서 주인공 애순은 ‘데파트’, 카페, 호텔, 공연장 등 다양한 공적 (소비) 공간을 누비며 초창기 한국영화사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를 선보인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문예봉이 애순 역을 맡아 파격적인 연기를 펼친다. 문예봉은 이 영화에서 <춘향전>(1935)에서 보여줬던 전통적인 여인상과 거리가 먼 애순 역을 연기해 기존의 대중들이 그녀에게 기대하던 순종적이고 정숙한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여지없이 배반한다.
[군용열차]
“자네가 군용열차를 운전하는 조선철도의 중대한 사명을 다하는 이때 내 혼이나마 이 철도를 지켜 황군의 무운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네.”
1938년 작 <군용열차>에서 주인공 영심(문예봉)의 남자친구 원진(독은기)은 황국신민화에 동조하는 유서를 남긴 채 군용열차가 지나가는 철로에 몸을 던진다. 원진은 돈 이 천원에 팔려갈 기생 영심을 구하기 위해, 영심의 오빠이자 절친한 친구인 기관사 점용(왕평)을 이용해 군용열차의 기밀을 빼내는 스파이가 된다. 하지만 결국 군용열차가 폭파되기 직전에 원진은 점용에게 모든 것을 참회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군용열차>는 원진의 유서 내용처럼 ‘황군의 무운’을 위해 달리는 ‘조선철도의 중대한 사명’을 설파하는 조선 최초의 친일 어용영화로 알려져 있다.
[어화]
“때는 좋다 벗님 나네 쾌지나칭칭나네, 노세 노세 젊어 노세 쾌지나칭칭나네”
그 해의 풍요를 기원하는 풍어놀이에 ‘칭칭소리’ 한 판이 벌어졌다. 마을 사람들이 ‘쾌지나칭칭’을 흥겹게 따라 부르는 풍어제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찍힌 <어화>의 풍어제 장면은 전체 영화 내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이 장면은 영화 초반과 후반 두 번 삽입돼 <어화>의 주인공 인순(박노경)이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 벌이는 고난의 서사를 열고 닫는 액자 구조의 형식을 만들어낸다. 도시 생활에 지친 인순이 몸져누운 날, 옛 애인인 천석이 찾아와 염려 말라며 이제 자신들의 고향으로 가자고 말한다. 이어 액자 내 이야기를 닫는 두 번째 풍어제가 등장한다. 이때의 풍어제 장면은 시간의 경과를 알리는 동시에 하나의 이야기가 끝난 이후 그들의 심정을 펼쳐내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예고한다. 풍어제가 끝난 후, 사족처럼 들어간 마지막 장면에서 인순은 “모든 것이 이전과 같지 않소?”라고 묻는 천석에게 “그래도 사람은 변하지 않았어요?”라고 되묻는다. 천석의 말처럼 비록 꿈결마냥 “사랑만은 변하지 않았”을지언정, 고향 바다를 바라보는 인순의 얼굴에는 이전과 달라져버린 자신의 모습이 씁쓸히 되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