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세 끼 밥도 제대로 못 먹이는 지도자는 참다운 지도자가 아니오. 여러분들은 어떤 정책이나 법률을 입안할 때 반드시 국민에게 밥을 먹일 수 있는 방법론과 연관을 시켜서 발상을 해야 합니다.(2권 본문 29쪽)
스스로 노력하고 협동하는 마을은 적극적으로 돕되, 노력하지 않거나 협동하지 않는 마을은 돕지 않겠다. 이 길만이 수 천 년 내려온 의타심을 뿌리 뽑고 자조하는 정신을 자각시키는 길이다. 이와 같은 방침으로 설령 선거 때 표를 못 얻어 져서 정권을 내놓는 한이 있어도 이 신상필벌의 원칙만은 바꾸지 않겠다.(2권 본문 32쪽) --- 「새마을운동 시동 걸다」 중에서
타국을 침략할 정도의 군사력까지는 필요하지 않지만, 적국이 우리를 먹으려고 드는 경우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공격 자세를 취할 정도의 자위력은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2권 본문 69쪽)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국가이익을 위해서는 어제의 적국을 오늘의 우방으로 삼고, 피도 눈물도 없는 적자생존의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 냉혹한 생존경쟁의 시대에 있어서는 힘없는 민족은 세계무대에서 영원히 낙오되고 만다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중략) 이 시련을 극복하는 데는 우방의 지원이나 협력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의 굳센 결의와 분발과 단결이며 피와 땀을 흘려가며 국력을 기르는 일입니다.(2권 본문 98쪽)
--- 「고슴도치 이론」 중에서
1973년 1월에 선포된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공업화 정책은 한국이 처한 국가 안보적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월남전의 수렁에 빠진 미국은 닉슨 독트린 발표로 난관에서 빠져나오고자 했다. 닉슨 독트린은 주한미군 철수라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북한 공산집단의 거듭된 남침 위협에 노출되어 있던 한국은 자주국방을 위해 방위산업 건설이 절실했다.(2권 본문 139쪽)
--- 「농업이 아니라 공업이다」 중에서
3. 세 번째 쿠데타
박정희는 고민에 빠졌다. 중화학공업 육성에는 10년 이상의 세월과 천문학적인 투자가 요구되었다. 그런데 자신의 임기는 3선 개헌을 통해 임기를 4년 더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1975년까지로, 3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비상한 정치적 결단이 요구됐다. 1972년 10월 17일 저녁 7시, 갑자기 정규방송이 중단되고 긴급뉴스라는 자막이 떴다.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 동시에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의 정치활동을 정지하는 등 헌법의 일부 효력이 정지되며, 효력이 정지된 헌법조항 기능을 비상국무회의가 수행한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담화문이 발표됐다. 유신헌법 골격은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 1과 모든 법관을 임명하고, 긴급조치권, 국회 해산권을 가지며, 대통령의 임기는 6년에 연임할 수 있다. 대통령 선출제도는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하는 직선제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선출하는 간선제로 바뀌었다. 3권 분립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틀이 무너지고 입법·사법·행정의 3권이 대통령에게 집중된 것이다.
사실상 10월 유신은 일종의 준(準)전시 동원 체제였는데, 박정희가 이를 선포한 배경에는 방위산업과 중화학공업 육성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숨어 있다.(2권 본문 181쪽)
--- 「닉슨 독트린, 그리고 주한미군 철수」 중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메모에서 국산 미사일 개발의 세 가지 기본방침을 제시했다.
첫째, 독자적 개발체제를 확립할 것.
둘째, 지대지 미사일을 개발하되, 1단계는 1975년 이전 국산화를 목표로 할 것.
셋째, 기술 개발을 위해 국내외 기술진을 총동원하고, 외국 전문가도 초청하며, 외국과 기술 제휴를 할 것.
이 비밀 프로젝트는 ‘항공공업 육성계획’이라는 위장 명칭으로 포장됐고, 후에는 ‘백곰’이라 불렸다.(2권 본문 282쪽) --- 「국산 무기를 개발하라」 중에서
박정희는 1972년 초 김정렴 비서실장과 국산무기 개발의 일등공신 오원철 경제수석을 집무실로 불러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핵무기가 필요하다. 기술을 확보하도록 하라”고 극비리에 지시해 1970년대 말경에는 이 핵무기 프로젝트가 거의 완성단계에까지 가 있었다.(2권 본문 327쪽)
미국은 한국의 핵 보유가 동북아지역의 안정을 해치는 중대 요소가 될 것으로 보고 집요하게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원자력연구소, 국방과학연구소, 대전기계창 같은 현장은 물론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과학기술처, 재무부 등 각 기관의 부서장들에겐 주한 미국대사관 요원과 CIA 요원들이 밀착감시를 하고 명시적으로 핵개발을 중지하라고 압박을 가했다.(2권 본문 349쪽)
--- 「암호명 ‘890’계획」 중에서
4. 그리고 ‘혁명’
미국은 박정희의 핵 개발을 감시하기 위해 주한 미국대사관에 과학무관을 파견했다. (중략)
“한국이 망하지 않으려면 핵 개발을 포기하라.”(2권 본문 374쪽)
--- 「핵개발 실패, 박정희의 죽음」 중에서
박정희 정권은 비록 민주화 운동을 억압했지만 경제발전을 통해서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한국 다원주의 근간이 되는 중산층을 창출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에 크게 기여했다.(2권 본문 409쪽)
---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