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대학교에서 중어중문학을 공부하고 출판사에서 일하다 그림책의 매력에 이끌려 어린이책 작가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는 이야기, 따뜻하고 잔잔한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정작 아이들과 좋은 친구가 되는 것조차 어렵다는 걸 깨닫곤 합니다. 그동안 《우리 집에 나무가 있다면》, 《집을 나간 껌벙이》 같은 책들을 썼고, 그림책 《개뼈다귀 소뼈다귀》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난 유일한 할아버지는 ‘서구 문물’에 대한 갈증이 커져 가던 1904년, 아버지 유기현의 뜻에 따라 아홉 살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가 홀로 공부를 시작합니다. 미국으로 가는 배 안에서 돈 보따리를 잃어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많은 고생을 해야 했지만, 정직함과 성실함으로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받으며 의젓하게 성장합니다. 미국에 와 있는 사이 형편이 어려워진 집안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어려서부터 신문배달을 시작한 유일한 할아버지는, 이후 남들이 힘들어하는 일을 도맡아 하며 대학까지 졸업합니다. 공부뿐만 아니라 운동도 열심히 해 미식 축구부 주장으로도 활약했고요. 대학을 마친 뒤에는 기업을 일으켜 크게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하고자 조국으로 돌아왔지요. 일제강점기 조국으로 돌아온 유일한 할아버지는 1926년에 ‘유한양행’을 세우고,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동포를 위해 여러 사업을 펼쳐 나갔습니다. 수많은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바르고 정직하게 기업을 꾸려 나갔고, 그 공로로 나라에서 주는 훈장과 상을 여러 번 받기도 했습니다. 유일한 할아버지는 기업가일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가이기도 했습니다. 광복이 되기 전에는 일본군에 맞서 싸우고자 이미 쉰 살이 넘은 나이에 특수공작원 훈련을 받았고, 또 광복 뒤에는 우수한 인재를 길러 내기 위해 ‘유한공업고등학교’를 세웠습니다. 그 뒤로도 유일한 할아버지는 어린 학생들을 보살피며 사회를 위해 애쓰다가 1971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으레 남은 재산은 자식에게 물려주기 마련이지만, 유일한 할아버지는 전 재산을 사회에 기증하고 빈손으로 떠나, 또 한 번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지금 유한공업고등학교 안에 있는 유한동산에 잠들어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