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체성의 세계 안에는 수천 년 동안 흥망성쇠를 거듭한 중국 대륙과 그 거대한 대륙의 역사가 쌓여온 두터운 사서가 있고, 해협 하나 사이에 두고 이름도 삶도 중국에게 빼앗긴 타이완의 소수민족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있다. 그세계는‘ 신화와 망각. 연속성과 이러한 연속성의 파괴. 미래와 현재, 과거가 똑같이 기억 오류의 결과물’인 세계이며, 이 세계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으로 죽은 자들을 해석’하기에 ‘죽은 자는 이미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정의가 바뀔 때마다 다시 살아 돌아올 것’이라고 샤오는 생각한다.
영화 [비정성시]는 프레드릭 제임슨에 따르면 ‘오늘날 타이완에서 가장 잘나가는 감독’인 허우샤오셴의 ‘야심찬 역사적 서사시’이다. 프레드릭 제임슨은 타이완 현대에 대한 논의에서 서구화의 반대가 중국 그 자체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타이완이라는 공허한 장소는 어떤 상상된 타이완 정체성에 관한 질문들로 가득 채워져 있고, 이것은 하나의 해법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자체로 거대한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타이완‘ 뉴웨이브’는 특히 타이완이라는 섬과 관련된 이미지들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는데, 왜냐하면 타이베이는 전통적인 거대한 본토 도시의 모습이나 역사적 반향과는 연관성이 없으면서, 홍콩처럼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가상적 도시─국가의 폐쇄된 도시 공간 역시 아니라는 분명한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안_ 「되돌릴 수 없는 시간, 그것을 되돌리는 작가
주톈원의 [비정성시(悲情城市)]」 23~24쪽
한국과 타이완의 현대사를 들여다보다 보면, 흡사 이란성 쌍둥이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서로 닮은 것 같지만 또한 서로 다른, 그리고 그 태생과 성장 과정은 함께 공유하지만 그 구체적인 삶에 있어서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이란성 쌍둥이 말이다. 우선 이 두 지역의 유사성은 그 근대화 과정의 궤적을 통해서 확인해볼 수 있다. 일본의 식민통치와 함께 근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과거사를 비롯해서, 좌우 내전으로 인해 분단국가가 된 이후로 지정학적 위치 상 공산진영의 확산을 막기 위한 미국의 전진기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냉전 시기, 군사 경제적 지원과 미·일과의 삼각 국제 분업체제 하에서 자유진영의 모범적인 개발도상국가로 성장 발전해왔던 산업화 과정, 그리고 냉전 시기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 선택되었던 군부 정권과 이들에 의해 시행되었던 독재와 계엄 통치, 마지막으로 탈냉전과 신자유주의 질서의 형성과 함께 군부 정권의 퇴출과 정치적 민주화를 맞이하였던 1980년대 이후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이 두 지역의 현대사는 거의 동보적인 궤적을 그려왔다.
윤영도_ 「타이완의 동시대문학
―‘중국다움’과‘ 타이완다움’ 사이 새로운 시학의 도전」 41~42쪽
영화〈비정성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타이완의 근현대는 일본의 식민통치를 배경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본의 타이완 식민통치는 타이완에 현대화를 가져다주었다. 사회적 설비의 건설 외에도 서양의 관습과 제도와 문학예술사조, 고전음악과 희곡 등이 모두 일본어로 전수되고 학습되었다. 이처럼 일본을 통한 서구화, 이것이 바로 타이완 특유의 현대성이었다. 특히 우리 외가에는 이런 일본의 영향이 일종의 전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나의 문화적 정체성은 외성인 작가인 아버지와 일본문학 번역가인 어머니가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이완 사회의 가장 큰 격동기는 1980년대였다. 중국대륙은 개혁개방의 시대이기도 했다. 타이완에서는 팽배한 민간사회의 역량이 국민당의 계엄해제를 유도했고 일당독재의 와해와 언론통제 해제, 대륙 친지방문허가 등의 변화를 가져왔다. 하나하나 길이 열리면서 우리의 ‘상상된 공동체’는 해산되고 말았다. 하나로 결합되어 있던 운명의 공동체는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했고, 자아질의, 자아전복, 심지어 자아해체의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1980년대부터 세기말에 이르기까지 공동체 균열의 모든 과정이 하나하나 내 몸에 투영되면서 내 작품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세기말로 접어들면서는 모든 것이 ‘포스트(post)’로 규정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탈구조주의(post-structuralism),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 포스트 로열리즘(post-loyalism) 등‘ 포스트’ 학문이 극성했다. 이러한 타이완의 갖가지 변화와 시대의 흐름이 바로 내가 작가로서 존재하는 이유다. 잊히기 전에 누군가는 이를 기록해야 하지 않을까?
김태성_「타이완의 여성작가
주톈원과 주톈신을 만나다」 52쪽
“게이라서 즐겁다”고 말하는 그는 형식에 얽매인 똑같은 결혼식이 아니라 재미있는 공연처럼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가 만든 퀴어 영화〈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 연상되었다. 영화에서 게이 ‘민수’와 레즈비언 ‘효진’은 이혼을 전제로 잠시 위장결혼을 한다. 민수는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효진은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서이다. 진지하면서도 가볍고 슬프면서도 유쾌한 이 영화의 결말은 민수와 효진이 각자의 동성애인과 다시 하는 두 번째 결혼식이다. 그 결혼식은 기존의 모든 틀을 깨고 하객들과 다 함께 어울리는 유쾌한 공연이자 축제와 같다. 김조 감독이 9월 7일에 현실로 보여주었던, 그야말로 즐거운 혁명이다.
성상희_「즐거운 혁명가 김조광수 감독과 나눈
‘황인’과‘ 게이’ 이야기
─ 주톈원『 황인수기:세상 끝에 선 남자』를 읽고」52쪽
내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글이 나에게로 와야한다. 쓰기 전에 나는 이미 글과 만난 상태여야 한다. 나는 내면에 이집트를 갖고 있으며, 그렇게 내 내면을 향해서 날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글이다.“ 글이 나에게로 온다”는 말은, 오직 수동적인 태도로 영감이 떠오르기를 기다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도리어 정 반대이다. 이때 작가는 외부를 지켜보는 단순한 관찰자나 바깥의 무언가를 대변하는 목소리가 되어서도 안된다. 눈과 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는 민감하고도 예리한 수용체가 되어야하고, 미지의 차원을 탐지하는 안테나를 갖추어야 한다. 영혼의 보이지 않는 존데(Sonde)를 풀어놓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파장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신의 정신적 생태계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내 안에 이집트를 가져야 하며, 그것을 발견하고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아도 내장밖에는 보이지 않을것이며, 결국 그것을 꺼내서 쓰게 될 것이다. 자신을 작가로 조성하는 일, 이것은 작가의 일생의 일이며, 글을 쓰고 있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진행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떤 점에서는 글쓰는 행위 자체보다도 작가적인 것이다.
배수아_ 「작가는 어떻게 쓰는가」170쪽
일본 근현대 문학잡지 100년의 시간 속에는 일본 속 식민지인과 작은 마을과 섬의 고통이 함께 흐른다. 사상지들의 최근 이슈 속에서는 재해 이후 비명을 지르며 모습을 드러내는 소수자들이 있다. 일본 영화사의 거장 감독 작품 속에는 조선과 대만의 모습이 식민자의 카메라 앞에 박제된 듯 찍혀 있다. 식민지와 제국주의 전쟁의 기억을 담은 절망의 말이자, 서양을 상대화하고 작은섬과 마을의 소수자들로부터의 발신을 꿈꾸는 말로 쓰이려고 하는 ‘아시아’. 타자에 대한 폭력과 타자와의 만남,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일본 속‘ 아시아적’ 흔적들이 계간《ASIA》를 통해 다른 지역의‘ 아시아적’인 것과 만나 변형되어가길 꿈꾼다.
신지영_ 「일본 속‘ 아시아’와 소수자들」280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