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계획은 단순했다. 그 가게 사장님에게 우리 매장의 가맹점으로 들어오라고 권유하는 것. 단, 가맹점을 한다 해도 간판 비용과 집기 비용 등은 우리 회사에서 전적으로 지원해주고 우리 회사가 확보한 연예인 초상권도 함께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조건을 내걸 작정이었다. 지금처럼 무단으로 출력해서 아무렇게나 붙여놓는 사진이 아니라, 제대로 된 한국 연예인의 사진과 사인을 이용할 수 있게 해줄 작정이었다.
내가 이 같은 계획을 말하면서 파트너에게 의사를 묻자 후배는 이렇게 좋은 조건을 내거는데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있겠느냐고 하면서, 그렇게 할 경우 우리에게는 어떤 이득이 돌아오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후배에게 만약 저 가게를 우리 가맹점으로 바꿀 경우 마닐라에 코리안 핫도그 브랜드가 몇 개 남는지 물었다. 후배는 “하나입니다”라고 답하더니 그제야 내 의도를 이해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p.36
나는 항상 직원들을 볼 때 세 번째 유형의 직원들을 눈여겨본다. 이런 친구들 중 일부는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높아져서 임원으로 남아줄 때가 있다. 이들이 회사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세 번째 유형의 직원들은 독립할 시기만을 마음에 품고 있다. 내가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나 역시 다른 회사에서 일을 배울 때 단 한 번도 회사에 눌러앉을 생각으로 일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이들의 그릇이 회사가 담을 수 없는 크기가 되었다면 넘치기 전에 일찌감치 덜어주는 것이 보다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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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안에서 통화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나자, 고객과의 통화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쉽고 편안해졌다. 일주일간 연습을 하고 사무실에서 다시 전화 영업을 시작했을 때, 나는 이전과는 다른 내가 되어 있었다. 더 이상 옆 사람이 신경 쓰이지 않았고, 주변에 누가 있든 말든 상관하지 않게 되었다. 적막한 사무실에 내 목소리만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날에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고, 창피하지 않았다. 가끔씩 무례한 고객이 얼토당토않은 시비를 걸어와도 자연스럽게 통화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전보다 버벅대는 일 자체가 줄었음은 당연했다.
그 뒤로 많은 시간이 흘러 지금은 내가 직접 전화 영업을 해야 하는 경우는 없어졌지만, 가끔씩 직원들에게 어떻게 하면 고객 응대를 자신 있게 할 수 있는지 내 경험담을 들려주며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한다. 반복된 행동은 각인된다. 그리고 연습을 이길 묘안은 없다.
--- p.68
비록 어느 정도 출혈이 있겠지만, 회사를 빠르게 성장시키려면 100대를 팔아보는 조직이 하루 빨리 되어야만 했다. 이를 위해 나는 부서의 정산을 하지 않은 채 당분간 달리기로 결정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중간에 손익계산서로 정산을 확인하게 되면 손해가 눈앞에 바로 보여 마음이 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서장도 위축되어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힘들 수 있었다.
당시 나는 100대를 팔아본 조직은 금전적인 손해는 볼지언정 그에 합당한 데이터와 경험치는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100대의 판매고를 올렸을 때 비로소 하루 안에 몇 대를 계약할 수 있고, 몇 명의 사람이 필요하며, 몇 건의 미팅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데이터와 경험치가 고스란히 우리 것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경험치를 가지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 차이라고 생각했다.
--- p.119
인생을 사는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사업을 하다 보면 더더욱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바로 적을 만들지 않는 일이다. 사업이라는 행위 자체가 난관과의 싸움이며 돌파의 연속인데, 이때 적까지 나타나 죽기 살기로 나를 옭아맨다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나마 상대가 나를 힘들게 해서 무언가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경우라면 낫다. 정말 무서운 적은 본인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는데도 그저 내가 싫어서 나를 공격하는 경우다. 이런 유형은 달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데다가 잘 지치지도 않는 특성이 있어서, 사업을 곤경에 빠뜨리는 최악의 걸림돌이 된다.
--- p.133
메르블루는 넓은 부지와 풍광 덕에 드라이브를 즐기던 사람들이 자연스레 발길을 돌리는 카페가 되었다. 게다가 애견 카페가 아니었는데도 언제부터인가 하나 둘씩 반려견을 데리고 오는 손님들이 많아지면서 견주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바다가 보이지 않았고 또 실내에는 애견 출입 금지였지만, 바닷바람을 쐬면서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마당에서 반려견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견주들이 만족하고 흐뭇해했던 덕분이다. 손님들이 자발적으로 SNS 등에 홍보해주는 등 운이 많이 따라주어서, 주말에는 음료 빌지가 30장씩 밀려왔고, 토, 일 양일에만 약 2,000명이 넘는 고객이 방문하는 ‘핫한’ 매장이 될 수 있었다.
--- p.157~158
나는 헬스클럽에서 운동기구를 옮겨 다닐 때마다 양손에 핸드폰과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게 그렇게 귀찮을 수 없어. 핸드폰을 달 수있는 텀블러가 있으면 좋겠어. 마음 같아서는 하나 개발하고 싶다니까.”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신변잡기 이야기였지만 나는 지인의 이 말이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생각을 언제부터 했는지 물었다. 그는 10년 전부터 했던 생각이고, 6년 전부터는 주변의 많은 사장들에게 이런 생각을 전했다고 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자기 이야기를 듣는 사람마다 모두 좋은 아이디어라고 반응하면서도 정작 실행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지인에게, 더 이상 아무한테도 이 아이디어를 발설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 p.176
영업을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거절당하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거절당하지 않는 영업은 없다. 수차례의 거절을 맞아야만 한 번의 성사가 이루어지는 것인데, 많은 사람이 바로 이 ‘거절’이 두려워서 영업에 뛰어드는 것을 꺼린다. 거절은 매우 당연한 일임을 명심하자.세상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에게 ‘거절’을 보여준다. 영업직에서경험하는 거절은 아주 사소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사회 초년생들에게 기회가 된다면 거절을 많이 당할 수 있는 영업직을 경험해보기를 권한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거절에 대한 면역력이 생긴다.
--- p.208~209
무턱대고 찾아가기 전에 먼저 전략적으로 편지를 쓰기로 했다. 교장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길게 경청해줄 리 없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장문의 편지에서 밴드부실을 만들어줄 것을 요구하되 우리 밴드부의 요구가 합당한 사실을 조목조목 적은 뒤 학교가 내요구를 들어줄 만한 ‘조건’을 내걸었다.
“우리는 학교의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밴드부실만 지원해주면 연말에 인천에 있는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아 학교의 명성을 드높이겠습니다. 그리고 인천외고는 사립학교니까 계속 주인이 그대로지 않습니까? 저한테 밴드부 연습실을 지원해주시면 10년 뒤에 그 10배로 이 학교에 장학금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 p.227~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