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가장 밑바닥 체험에서 자신의 시들을 길어 올린 '서민 시인' 유용주가 첫 산문집을 상재했다. 유용주는 우리 문단에서 드물게도 서울이 아닌 충남 서산에 붙박혀 독보적인 시 세계를 일궈왔고, 또한 문단 권력에 전혀 얽매임 없이 자유롭고 분방하게 자기를 표현해왔다. 그런 그가 시집 『크나큰 침묵』(1996)을 세상에 선보인 지 4년여 만에 가장 선명하게 자신을 드러낸 산문집을 출간했다. 물론 그의 산문들은 크게 보아 그의 시가 꿈꿔온, 그려온 세계의 산문적 변주이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작가 자신의 삶의 정직한, 투명한 기록이다. 거기에는 작가의 절실한 생활 체험이 올올이 담겨 있고, 그가 꿈꿔온 문학, 그리고 세계가 가감 없이 새겨져 있다. 그렇지만 작가의 산문들은 그의 시들이 그렇듯이, 그 동안 독자들 앞에 정신 없이 쏟아져 나온 그 숱한 에세이들과는 유를 달리한다. 곧 기성의 산문들에 비해 예외적이고 별종적인 산문집이라 감히 자부할 수 있다.
이 산문집은 요즘 유행하는 고상한 예술취나 이러저러한 이론취理論趣, 시골이나 산골 생활을 예찬하는 다소 낭만적인 야생취野生趣 등의 글과는 계界가 다르다. 또한 지사志士 풍모나 중생 구제에 힘쓰는 도인道人의 체취가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유용주 글의 예외성은 우선 험한 체험을 통해 자아를 세웠다는 점, 그것도 시쳇말로 '밑바닥' 삶을 절절히 체험해온 시인이라는 데 있다. 유용주 산문에 강기剛氣가 느껴지는 것은 그가 지독했을 생활고를 딛고 자신만의 문학 밭을 갈았기 때문이다. 그 밑바닥 체험 속에서, 생활고와의 정직한 싸움 속에서 낳은 문학이기에 거기엔 자기 아픔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 아픔으로 더 아픈 이웃을 감싸안는 사랑과 항심恒心과 평심平心의 도道가 숨쉬고 있다. 그래서 이 산문집에 수록된 글들은 치열하면서도 넉넉하고 깊다.
특히 78개의 단상斷想으로 이루어진 「그 숲길에 관한 짧은 기억」은 주목할 만하다. 그 동안 발표했던 작가의 글과는 형식을 달리하는데, 낱낱의 단상들은 독립적이면서도 하나의 일관된 흐름으로 수렴된다. 거기에는 작가 자신의 처절한 자기 반성과 깊은 깨달음이 속속들이 녹아 있다. 그들은 '시적 산문', 곧 웅숭 깊은 사색과 절절한 밑바닥 삶에서 우러나오는 경험을 명징한 언어와 간결하면서도 서사성 짙은 문체로 담아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내 문학은 내 삶뿐이다"는 작가 자신의 외마디 존재 증명과 직결된다. 그 밖의 그의 글들도 마찬가지로 작가의 삶이 깊숙이 배어 있고, 자신과 이웃, 그리고 세계로 열린 작가의 애정이 한껏 녹아 있다. 유용주의 산문은 이문구의 유장한 가락과 넉넉한 낙관, 그리고 박상륭의 사색의 깊이를 빼닮았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거기에서 벗어나 있다.
이 책에 실린 몇 편의 발문―한창훈·박남준·이정록 등―도 의례적인 덕담에서 멀찍이 벗어나 그들의 문학 세계를 통해 작가의 문학관 등을 간접적이되 효과적으로 펼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