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만은 테이블에 여러 개의 열쇠를 올려 두고,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려는 거만한 태도가 아니라, 독자들이 어떤 문을 어떤 열쇠로 열어야 할지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한다.
---「한국 독자를 위한 서문」중에서
T.L. 축구 경기를 시청할 때 사람들이 튀어 오르는 공을 먼저 보는지 아니면 선수의 문신을 먼저 보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Z.B. 축구 경기장은 오늘날 사람이 가장 많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장소입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논의하고 있는 보편적인 관심사에 대해 가능한 해결책을 찾고자 할 때,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축구 경기장에서 논의한다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기장에 모인 열정적이고 만족스러워하는 수많은 팬과 함께라면 믿을 만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길 테니까요.
--- p.27~28
T.L. 우리는 지금 소녀와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소년이나 남성 이야기가 아닙니다. 남성이 미용 시술에 의존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남성 가운데에는 시술을 받았다고 자부심을 보이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죠. 왜 그럴까요? 요즘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처럼 심미적인 열망이 크고 때로는 여자아이보다 더한데도 말입니다······.
Z.B. 미용 시술에 의존하는 남성은 매력 지수가 떨어질 위험이 있으니까요.
--- p.38~39
T.L. 그렇다면 현대사회에서 문화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을까요?
Z.B. 여기서 당신이 추적해 봤으면 하는 방향은 분쟁 해결 과정에서 폭력과 강요 그리고 억압이 되풀이되는 현상인데, 이는 ‘더불어 사는 방식(modus co-vivendi)’을 위한 대화와 상호 이해를 위한 논의에 장애가 되고 있어요. 나는 이런 상황 전개에도 중요한 역할이 있고 미래에도 새로운 통신 기술에 의해 그 역할이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원인이 아니라 주요 촉진 조건으로서 말입니다.
--- p.48
T.L. 지그문트 선생님, 오늘날 이 같은 젊은 여성 리더의 등장은 모계사회의 부활을 의미하는 걸까요?
Z.B. 언뜻 보기에 현시대의 특징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징표로 모계사회나 부계사회 어느 한쪽을 지목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양성 간의 만남과 절충이 역사나 전기의 영향 아래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어요. 현대에는 성 역할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유동적이며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잘살 때나 못살 때나” 한때 모두를 굳건하게 결속시키던 고정관념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
런데 이런 성 역할은 지속적으로 불안을 유발합니다. 자신이 현명한 선택을 했는지 확신하지 못해 불안감이 커집니다. 그들의 대안이나 선택 과정에서 빠진 “다른” 가능성도 여전히 확신하지 못하는, 요컨대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상황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 p.79~80
T.L. 지그문트 선생님, 노동의 유연성이 액체 세대를 효과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유동적인 인간도 정말 유연한 노동에 만족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들은 불행한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일까요? 유연한 사랑은 인간존재의 DNA에 포함되어 있을까요? 저는 여기서 다부다처의 복혼제(polygamy)를 생각해 봅니다. 많은 학자들이 수백 년에 걸쳐 인간존재는 복혼제 시스템에서 탄생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유동적인 사랑은 인간의 섹슈얼리티의 기원으로 돌아간다는 뜻일까요?
--- p.91~92
4차 산업혁명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화두가 되고 있는 지금, 엑스 세대나 와이 세대 또는 고체 세대나 액체 세대라는 말은 마치 호모루돌펜시스, 호모에렉투스, 호모사피엔스 등등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인간 종이 살았던 먼 옛날에 그랬듯이, 오늘날의 인류 세대가 전혀 다른 인간 종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현재 트렌드를 주도하는 가운데, 기성세대 중 가장 젊은 엑스 세대마저 이들이 주도하는 세상의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입장이 되었다. 변화를 받아들인 세대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밀레니얼이 주도하는 조직과 사회의 혁신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거침없는 도전, 개성과 독창성을 보며 ‘따라 하기’, ‘쏠림 현상’이 체화된 엑스 세대는 확연한 세대 간 격차를 실감할 것이다.
오늘날 드러나는 세대 차이는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바우만은 이 현상을 ‘갈등’으로 파악하여 이를 문제시하는 것은 편협한 정치계와 언론계가 만들어 낸 프레임이라고 본다. 그는 세대 차이를 인정하고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라고 조언한다. 그런 점에서 바우만과 레온치니, 두 사람의 세대를 넘나드는 대화를 담은 이 책은 현대세계가 직면한 세대 간 대화와 협력의 중요성을 직접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바우만은 세 가지 주제를 언급하며 그것이 액체 세대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밀레니얼의 특징이기에 그것을 이해하라고 독려한다. 현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행인의 실상이라는 것이다. 바우만은 그들을 부정하지 않고, 그들의 다양한 변화상, 곧 피부, 공격성, 사랑을 통찰하려 한다.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에 찬반 논리를 내세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 역시 액체 세대와 고체 세대 사이에 ‘낀’ 세대로서, 부모를 모시고 자식을 키우는 세대로서, 양쪽 세대 간 차이와 이해의 당위성에 고개가 끄덕여지곤 했다.
하지만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는 액체세대의 특징이 많이 언급되어 어려움이 컸다. 특유의 간접화법으로 진행된 두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과 짧지만 깊은 대화 또한 그 맛을 살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독성을 위해 원문에서 멀어지면 앞서 국내에서 출간된 바우만의 저작들과 결이 맞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설픈 문장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다만 옮긴이로서 세대 간 차이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고 급변하는 현대사회에 우려와 사랑을 남기고 떠난 바우만의 통찰과 메시지가 제대로 전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끝으로 번역에 도움을 주신 김하종(P. Vincenzo Bordo) 신부님과 사회학 전공자로서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신 수원교구 최영균 신부님 그리고 귀한 시간을 내어 감수의 말씀을 해주신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김경일 교수님께 깊이 감사 드린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김혜경
---「옮긴이의 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