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을 둘러보면 생각보다 많은 꽃이 있다.
봄이 오면 우리가 기다리는 벚나무 외에도, 길에서 흔하게 볼수 있는 공조팝나무, 비슷한 시기에 생김새도 비슷한 설유화, 겹설유화. 점점 조경수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흩날리는 이팝나무, 도시의 조경으로 심어둔 튤립과 주민센터 앞의 단골손님 팬지.
좀 더 따뜻해지면 여름의 초입에서 덩굴로 피어나는 들장미들, 본격적인 여름이 되면 수국과 목수국(불두화), 백묘국, 코스모스, 강아지풀. 그리고 드라마틱하기 이를 데 없는 능소화!
가을에는 단풍, 마가목 열매, 늦더위 같은 해바라기, 학교 화단에서 익숙하던 국화과의 꽃들.
겨울에는 주목, 편백, 측백, 가문비나무, 향나무 등 침엽수들과열매, 마른 가지들, 빨간 포인세티아……. 이름만 늘어놓기에도 한참을 이야기해야겠지.
가끔 수강생분들로부터 예전에는 바깥에 꽃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며 요즘 길의 꽃들이 참 예쁘다고, 이름을 몰랐던 때에는 그냥 지나쳤던 꽃들을 이제는 조금 더 시간을 들여 바라보게 된다는 말을 듣곤 한다. 나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괜히 신호대기에 걸려서도 횡단보도 옆 화단에 이상하게 심어진 튤립들이 귀엽고, 강변북로의 아무도 보지 않을 것만 같은 곳에서 열심히 꽃피우는 붉은 장미들에 감동한다. 아무리 바빠도 시선에 꽃을 담을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 pp.25-26
땅이 없는 나는 정원을 꿈에서 갖는다. 그리고 나의 작은 정원 오차원. 이곳엔 뿌리가 없는 꽃과 나무가 가득이다. 더 짧고, 더 아름다우며, 더 더 더 기억에만 존재할 곳. 나는 정원을 일구는 농부처럼 매일 꽃을 가꾸고 물을 비우고 닦고 쓸고 자르고 버리고 솎고 다시 가져오고 잎을 떼고 줄기를 자른다. 그리고 내 뿌리 없는 식구들은 여기저기로 당신들에게로, 오직 당신만을 위해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 p.65
이 순간,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을 때 아름답다.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곳,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장면. 다시 만나지 못하는 인연, 마지막이었던 그 모든 아름다웠던 순간들.
만일 꽃이 시드는 것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처럼 마음 놓고 좋아할 수 없었을 것이다.
--- p.91
오차원에서는 미리 만들어 둔 다발을 파는 일은 거의 없고, 주로 주문 제작으로 만든다. 나의 취향이 아주 많이 반영되긴 하지만. 주문을 받으면서 꽃을 받을 사람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혹은 어떤 꽃을 주고 싶은지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눈다. ‘아, 이 사람은 이런 것을 좀 더 좋아할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건 이것이니 이렇게 해 주시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머릿속으로 곰곰 생각해 보고 되뇌면서 하나의 다발을 만든다.
--- p.149
세상의 로맨틱이 다 어디로 갔을까.
세상사 힘들고,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치이고 스트레스가 쌓이고 어떻게도 풀 길은 없고, 이것도 생각하고 저것도 생각하면서 아무의 기분도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게 가능할까? 그런 건 없고 필요하다면 날카로운 말을 해야 하고, 그리고 그 말에 대해서 후회도 하고, 너그럽지 못한 내 못난 모습에 실망도 하고. 왜 자꾸 실수를 하는지. 돌이킬 수도 없고 책망할 수도 만회할 수도 없을 때. 이런 나를 다독여 달라고 설명할 기운도 없다.
Hello hellebore! helleborus, christmas rose. 헬레보루스. 크리스마스로즈. 연약하게 생겼는데 이름에 ‘ hell’이 들어가서 좋아한다.
굽어 있어 얼핏 보기에 시든 듯하지만 질기고 오래간다. 추울 때 눈 속에서도 핀다고 해서 ‘크리스마스로즈’라고도 불린다.
꽃말은 ‘나의 불안을 진정시켜 줘.’ 굽은 듯 약한 듯 질기게 아름다운 이 꽃을 곁에 두고 힘을 얻길.
--- p.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