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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와 공포의 용은 익히 아는 자여라(Project LC.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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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와 공포의 용은 익히 아는 자여라(Project LC.RC)

홍지훈 | 알마 | 2020년 04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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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4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192g | 114*189*13mm
ISBN13 9791159922954
ISBN10 1159922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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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안으로 들어가니 오카차 우카차 우아올라 옹사옹사라는 가사를 되풀이하는 음악이 더더욱 크게 울렸다. K는 질색을 하면서 M의 정원 구석구석을 살폈다. 대문 밖과 다르게 그 안은 이상하리만치 어두웠다. 아니, 어둡다기보다는 공간의 명도가 낮은 것에 가까웠다.
K는 M의 정원을 보며 위화감을 느꼈다. 그 위화감의 정체는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정원에는 식물이라고는 잡초 한 포기도 없었던 것이다. 단지 악취미적인 취향의 전위예술이거나 이국의 독특한 문화가 담긴 것이 아닐까 싶은 조각상들이 두서없이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댁은 뭐 하는 양반이기에 이렇게 주말마저 소란입니까?”
“나는 탐구자요.”
M은 다시 한번 쩌억, 하고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K는 기도 차지 않는다며 콧방귀를 뀌고는 그의 이야기를 흘려 넘겼다. 무엇을 탐구하는지는 물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선생의 집에 숨어든 그런 존재를 탐구하지.”
K가 이 한마디를 꺼내기 전까지는.
--- pp.20-21

K는 연탄집게를 바닥을 향해 내리치면서 도마뱀을 찍어 누르려고 했다. 도마뱀은 수조라는 좁은 우리를 벗어났는지라 더 빠른 속도로 K를 피할 수 있었다. K는 답답해진 나머지 연탄집게를 던져버리고는 온몸을 던져 도마뱀을 덮치려 했다.
숨이 가빠졌고 천장은 높아졌다. K는 바닥을 네 발로 빠르게 기어다니며 도마뱀을 쫓았다. 도마뱀은 여전히 시선을 돌리면서 웃고 있었다. K는 너무 빠른 속도로 기어다닌 나머지 그만 벽에 부딪혔다. 그 이후로는 꼬리를 흔들어서 균형 맞추는 법을 깨달아 더 집요하게 도마뱀을 쫓았다.
K는 곧 도마뱀과 1센티미터도 안 되게 가까워지도록 추격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콧등에 난 뿔로 도마뱀을 들이받으려 했지만 도마뱀은 그 육중한 몸을 던져 벽을 타고서 전등갓까지 도망치고 말았다. K는 사방팔방으로 뛰며 분을 참지 못했다.
--- pp.30-31

중학생이었던 나는 소수자 차별이라는 주제로 발표 수업을 준비하면서 B와 그 패거리에 대해 알게 되었다. 페이스북에서 어째서 여성이 남성보다 임금을 적게 받을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그는 내 과제를 위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샘플이었기에 나는 그에게 쪽지를 보내 연을 맺고 말았다.
B는 내가 자신의 의견에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이 감명 깊었는지 나에게 무척 우호적이었다. 나는 나대로 그와의 교분을 마칠 이유를 찾지 못했다. B는 내 영혼의 북극성이었다. 무언가 고민이 되고 성찰해야 할 문제를 만났을 때 그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지켜본 뒤 그가 고른 선택지만 고르지 않으면 최악의 결과는 피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내린 결론이 B의 결론과 같을 때는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달리 말하자면, B는 내 전용 ‘윤서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 p.59

(…) 언젠가 하루는 오이 두 개를 비비면서 놀더라고요. 그러면 뽀득뽀득 소리가 나거든요. 킷캣은 다섯 시간을 그랬어요. 게스트하우스 방에 누워서요. 다섯 시간을.
어디가 좋냐뇨. 그런 게 좋은 거죠. 박사님이 연구실에 너무 오래 계셔서 모르시나 본데요. 진짜로 사치스러운 건 그런 거예요. 시간을 낭비하는 수준이 아니라, 신경을 쓰지 않는 수준. 킷캣은 그런 사람이었어요. 다른 누구보다도 부자였다고 해도 좋죠. 오이 두 조각으로 그렇게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부자예요.
물론 그뿐만은 아니었어요. 킷캣은 맹하기는 했죠. 툭하면 넘어지고 요리하다 베이고 그랬는걸. 하지만 아픈 기색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바로 다음 일로 넘어갔어요. 몸이나 마음이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죠. 아픔을 모르는 사람도 아니었어요. 다만 언제라도 다시 나을 거라고 믿었죠. 믿는 대로 되었고요.
저는 킷캣을 보고 있노라면 이 사람은 어딘가 이 세상보다 더 큰 무언가에 연결된 사람이구나, 감탄하고는 했어요. 좋은 사람한테만 찾을 수 있는 안정감이죠. 그리고 킷캣은 좋은 사람이었어요. 제가 이제까지 이 세상에서 만난 그 어떤 사람보다도요.
--- pp.9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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