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은 단지 교의학의 끝부분에 위치하는 정도의 위상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적 사고와 삶을 주도하는 전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종말론에 대한 연구는 단지 현학적 관심이나 지적 욕구 충족의 차원에서 이루어질 일이 아닙니다. 기독교적 종말론이 가지는 삶의 실천적 의미는 실로 중요합니다.
본서는 저자의 처녀작, 『얻는 구원 이루는 구원 이르는 구원』이 2015년 출간된 이후, 나온 두 번째 노작(勞作)입니다. 본서의 여러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청중을 앞에 두고 행한 강해설교 형식을 취한다는 점입니다. 청중의 교화를 위한 목적에서 저술된 글들이기에 본서는 명료한 본문해석과 삶에의 적용이 뚜렷하다는 장점을 지닙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본문을 해석하되, 헬라어(Greek) 본문으로부터 그 일을 수행하였기에 성경의 본의를 드러내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였으며, 그 결과 오독(誤讀)으로 인한 그동안의 잘못들을 교정하려는 선한 의도 역시 돋보이는 장점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오직 성경으로써’(Sola Scriptura!)라는 종교개혁자들의 정신에 충실하려는 저자의 신앙적 입장을 드러냅니다.
성경 가운데 아마도 요한계시록만큼 다양한 해석을 일으킨 책은 없을 것입니다. 클라우스(Robert G. Clouse)가 편집한 『천년왕국』(The Meaning of the Millennium)이란 책에는 “역사적 전천년기설”, “세대주의적 전천년기설”, “후천년설”, “무천년설”의 주창자들의 입장이 소개되고, 그 주장에 대해 다른 입장의 대변자들이 각각 논평, 반박하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편집자는 어떠한 일방적 결론도 내리지 않습니다. 이는 그만큼 계시록에 대한 해석이 난해하며, 그러기에 교회 역사상 다양한 견해와 입장이 시대마다 존재해 왔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시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칼빈(J. Calvin)이 요한계시록 주석을 집필하지 않은 이유도 서신의 난해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없지 않습니다.
죽산 박형룡은 그의 『내세론』에서 “교회의 지도자들과 신도들은 이 삼론(무천년설, 후천년설, 역사적 전천년설)의 하나를 자유로 취하되 다른 이론을 취하는 자들에게 이해와 동정으로 대해야 할 것”(저작전집, 『내세론』, p.277)이라고 신중하고도 사려 깊은 지적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죽산은 ‘역사적 전천년설’과 소위 ‘세대주의적인 전천년설’을 구분하면서 후자에 대해 성경해석학적 차원에서 여러 비판을 가하였습니다.
본 추천인은 저자의 입장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본인이 본서를 추천한다고 하여, 본인의 입장이 세세한 부분에 있어서까지 저자의 입장과 전적으로 일치하거나 동일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따라서 성경의 본의에 접근하기 위해 우리 모두는 지속적으로 더욱 치밀한 연구에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본서는 앞서 밝힌 장점들 이외에도 유익한 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지나칠 수 없는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본서의 저술 목적, 곧 경건한 삶을 위한 성경해석에 저자는 큰 관심을 가졌기에, 그로부터 나오는 유익들은 매우 구체적이며, 실제적이란 점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대하는 모든 분들은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본서의 주된 저술목적이 기존의 오역들을 바로잡아 바른 판단을 돕고자 하는데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자 자신이 제안한 것처럼, 이 책과 더불어 여러 건전한 신학자들의 저서들을 비교 연구하며, 관련 내용들을 궁구(窮究)하신다면, 더욱 많은 유익을 얻으리라 확신합니다. 부디 바라기는 성경을 펴고 성령의 조명하심을 의지하며, 본서와 여러 건전한 저서들을 비교 연구하는 가운데 보다 명료한 성경적인 진리에 이를 뿐 아니라, 그 진리를 따라 사는 일에 혁혁한 진전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 최홍석 (총신신대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