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나 며느리의 임신 소식을 들으면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해진답니다. 여자라면 누구도 아니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죠. 이 충격의 90퍼센트는 행복감이지만, 나머지 10퍼센트에는 만감이 뒤섞여 있죠… 내가 할머니가 된다고? 벌써? 이 나이에? 임신이 확실한 거니? 예정일은 언제인데? 아무리 그래도 좀 이른 거 아닌가?”
“하지만 당신은 곧 이런 마음을 접고 기쁨을 마음껏 표출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면 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말할 수 없이 행복하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두려워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이제는 꼼짝없이 인생의 후반기로 접어들었다는 기분 때문이죠. 당신은 여전히 적극적이고 활동적이고 공사다망한 여성이고 그런 생활에 편안함을 느끼고 있지만, 이제는 초보 할머니라는 미지의 세상으로 옮겨가게 되리라는 걸 실감합니다.“
“21세기에 할머니가 된다는 것은 당신이 과거에 경험했던 것과는 무척 다릅니다. (…) 한없는 사랑을 넘어 삶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늘 곁에 있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젊은 사고방식을 유지하고, 예상보다 일찍 이 세상에 나와서 당신을 경악하게 만드는 조그만 병아리가 좋아라 할 모든 것에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주는 할머니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당신과 같은 초보 할머니가 해야 할 일이랍니다.”
“무엇이 다를까요? 9개월의 임신 기간이 지나면 아들/딸한테서 나온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기의 할머니가 되는 것이니, 친할머니이건 외할머니이건 하등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랍니다! 사랑스럽지만 친딸은 아닌 며느리의 임신과 당신이 죽고 못 사는 딸의 임신 사이에는, 안사돈이 배가 불러오는 딸을 보며 맛보는 모성애라는 장벽이 우뚝 서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심각해질 필요는 없답니다, 원래 그런 거니까요. 중요한 건 이 새로운 방정식 안에서 당신이 적절한 자리를 찾는 거랍니다.”
“만약 15년 전에 언젠가는 컴퓨터로 기쁨을 전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말을 들었다면, 아마 당신은 박장대소하며 “그럴 리가!”라고 말했을 겁니다. 하지만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당신도 생각이 바뀌었을 겁니다. 직업적인 이유든, 아니면 세상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든 말이죠. 어쨌거나 아주 잘 하신 겁니다. 지금은 지구상 어디에 있든 컴퓨터로 당신이 원하는 만큼 손주와 바로 연결할 수 있고, 스카이프와 웹캠 덕에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연락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면, 아기 부모와 이야기해 한 시간 정도 미리 시간을 정하세요.“
“할머니의 역할에도 교육적인 부분이 있지만, 그 부분은 어디까지나 보완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아이를 훈육하는 주체는 부모이며, 할머니는 아이 부모가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지나치게 방관적일 때만 살짝 개입할 수 있지요. 앞으로 아이가 성장해가는 동안에도 마찬가지랍니다.”
“그런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주에게 외가와 친가 식구들의 지속적인 사랑이 주어진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비난받아 마땅한 경쟁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든든한 대가족은 아이에게 사랑, 지지, 균형을 가져다주는 소중한 자산인데도요. 저쪽 할머니는 당신의 동맹군이자 또 다른 당신입니다. 혹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도끼를 꺼내들고 전쟁을 벌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도끼를 얼른 땅에 묻어버리세요. 이제부터 영원히요.“
“아이 부모가 부부싸움을 했거나 이혼했을 때, 할머니는 아이의 은신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아이는 부모 곁에서 겪는 긴장의 순간을 피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할머니는 아이 부모의 싸움에 개입해서는 안 되며, 두 사람 중 어느 한쪽에 나쁜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할머니는 기껏해야 중재자 역할이나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뿐이며, 부부의 이야기뿐 아니라 자기의 근심과 고통을 서슴지 않고 표현하는 아이 말에도 귀 기울여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양쪽 집안이나 적대적인 부모 사이에서 지내야 하는 꼬마 녀석을 안심시켜줄 사람이 할머니 말고 누가 있겠어요.“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