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 동안의 습관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해놓았던 집을 떠난다는 건 예전의 실패와 골칫거리들의 거미줄을 없애고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스스로를 놀라게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나는 바다와 카약과 선스크린 냄새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사흘 전 나는 눈을 감고 물과 개똥벌레 유충으로 가득한 검은 동굴에 거꾸로 뛰어들었다. 예전의 두려움이 계속 남아있을 필요는 없다. 그것이 바로 여행자의 익명성이 지닌 아름다움이다. 나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한 장소에 오래 머무르면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좋은 의도를 지녔다 할지라도,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생각과 범주에 정착하여 그것이 변함없이 우리 자신이라고 믿게 된다.” - 5p
"아낫은 번 선생님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선 채로, 침을 삼킬 때 떨림이 감지되기도 했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한다. 자신은 가자 지구에서 자란 팔레스타인인이라고, 할머니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에서 쫓겨나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삼촌은 10년째 감옥에 갇혀 있다고, 아버지는 허벅지에 총상을 입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부드럽고도 용감하게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유대인들이 당한 참상과 오늘날 자신의 동포들이 겪는 학대가 비교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번 선생님에게 묻는다." - 40p
"내가 궁금한 것이라면 내가 변할 것인지, 변할 거라면 얼마큼, 왜, 어떤 방식으로일 것인지다. 엄마 친구들과 친척들은 내게 ‘너답게 해’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하지만 운동복 바지 아랫단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그리고 운동복 바지를 입은 자신을 책망하면서) 내가 알아내려고 하는 것은 ‘너다운’ 그 내가 누군가이다." - 142p
"휴대전화를 꺼내 노려보는 자웨드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무슨 일이야?” 체크인 카운터의 기나긴 줄에 서서 한 치씩 걸음을 옮기면서 내가 묻는다. 그는 목을 가다듬고 깊은 숨을 내쉰다. “지금 막 카불에서 폭탄이 터졌어.” 나는 갑자기 걱정이 되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아직도 인스타그램 화면이 열려있는 내 휴대전화를 얼른 주머니에 밀어 넣는다." - 153p
"고등학교를 마치고 여행을 그만두고 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는 모른다. 권태, 자유, 그리고 내가 자란 이 학교를 떠난다는 사실이 조금 두렵다. 하지만 한동안 여행을 중단한다는 것이 슬프지는 않다. 퍽 긴 세월을 이렇게 보낸 우리들 대부분이 같은 말을 한다. 새 집을 찾는 노인들처럼, 하는 말이 우습다. “안정을 찾아”나 “작은 냉장고가 있으면 좋겠지” 같은 것들이다. 우리 가족들 곁에서 지난 몇 년간 좀 엉망이 된 모국어를 다시 배우고 종이책을 많이 읽고(우리 학교는 전자책만 읽는다) 스스로를 돌볼 것이다. 마지막 해를 위해 떠나는 지금, 3년 전 에콰도르 행 비행기의 창가 자리에 앉아있을 때와 똑같이, 내 앞에 멋진 가능성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도 무한하게." - 165p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