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변덕스런 존재다. 한 순간 인류애를 부르짖다가도 바로 돌변해 이웃을 고소하고 동료를 경멸하고 이른바 적들에게는 폭탄을 투하하고 거짓 고소를 함으로써, 상처 입은 사람을 다시 짓밟는다. 하나님과 조국의 이름으로. 두려움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
인터넷, 뉴스 속보 덕분에 우리들은 끊임없는 불안 가운데 살고 있다. 이라크의 차량 폭탄, 아프가니스탄의 어린이 폭탄 테러. 런던의 지하철 폭탄, 글래스고 공항의 차량 폭탄. 이 모든 폭력이 연일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정보화 시대가 우리를 조금 지혜로운 사람들로 만들어 주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실직, 퇴직, 치매, 심장병, 유방암, 결장암, 피부암. 유괴, 성범죄, 사기, 대량 살상무기, 고문, 테러범, 헤즈볼라, 알카에다, 빈 라덴, 우고 차베스, 김정일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는 조지 부시, 쓰나미, 홍수, 지진, 화산폭발, 태풍, 지구 온난화까지.
걱정거리라고는 아이들의 예방 접종일이나 아이들이 신발을 제대로 신고 있는지, 숙제는 제 때 마쳤는지, 생일 초대장은 다 보냈는지 같은 단순했던 시절은 이제 없다. 유괴, 학교 총기사건 그리고 성범죄가 우리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우리는 두려움을 먹고 마신다. 공황 상태에 중독되어 끊임없이 먹고 마신다.
-2장 두려움을 먹고 마시다
유치원 시절 그린 그림을 기억해보라. 엄마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크레파스로 그린 그 그림을 냉장고 앞에 붙여 두었을 것이다.
“엄마예요, 제가 직접 그렸어요.” 형제들은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뽐내며 자랑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흐뭇하게 미소 지으시는 사이, 그림 그리는 재주는 젬병이면서 말버릇은 무례하기 짝이 없는 오빠가 매부리코를 가리키며 큰소리로 웃는다.
“엄마를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사악한 마녀처럼 그려 놓았잖아.”
“아니야!” 저항을 해 본다. 하지만 다시 살펴보니 사실이다. 냉장고에서 그림을 떼어 손아귀로 쑤셔 넣고는 울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나중에 방으로 들어온 엄마가 옆에 앉아 울지 말라고, 엄마 생각에는 세상에서 가장 잘 그린 그림이라고 위로해준다.
이런 식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지만 그렇다고 성을 내시거나 우리를 나무라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 옆에 앉아 우리가 무슨 일을 했는지 깨달을 때까지 우리를 위로하신다.
-4장. 사랑, 길에서 벗어나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