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빅토리아 시대 활약했던 자메이카 출신 간호사 겸 사업가. 스코틀랜드 장교였던 아버지와 자메이카 원주민 출신으로 약초와 전통요법에 통달했던 치료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기도 했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의료기술과 천부적인 사업적 재능을 토대로 일찍이 간호사, 조산사, 의사, 약사 등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며 특히 콜레라, 황열병 등 열대성 질병에 대해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시콜의 치료소는 위생, 환기, 보온, 수분 공급, 휴식, 공감, 좋은 영양 및 죽음에 대한 보살핌을 포함하는 간호 기술을 선보였으며 이는 보건위생에 대한 개념을 최초로 확립한 것으로 알려진 나이팅게일의 활약보다도 앞서는 것이었다. 1853년, 크림 전쟁의 의료인들이 부족하다는 참상을 듣고 간호사로 지원하기 위해 런던으로 달려가 나이팅게일 간호단을 비롯한 여러 전쟁사무소에 지원했으나 흑인이라는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 결국 혼자서 자비를 들여 전쟁이 발발하고 있는 최전방에 호텔 겸 치료소를 설립해 부상당한 병사들을 치료하고, 영양식과 쉼터를 제공하며 모든 이들에게 ‘마더’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전쟁이 끝난 후, 런던으로 돌아온 시콜은 비록 전재산을 잃고 부상을 얻었지만 그의 눈부신 활약과 헌신을 기억하는 군인들의 도움으로 행복한 노후를 보냈다. 1857년, 자서전을 출간한 시콜을 위해 템즈강에서 모금 행사가 열렸고, 퇴역군인과 왕족을 비롯해 무려 8만 명이 운집했다. 이후 영국, 터키, 프랑스로부터 공로 훈장을 받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나이팅게일에게 가려져 사후 1세기 넘게 완벽히 잊혀졌던 시콜이란 이름은 2005년 우연히 액자 뒷면에서 그의 초상화가 발견되면서 다시 재조명 받기 시작했다. 2016 년, 세인트 토마스 병원에는 ‘선구자’라 기록된 시콜의 동상이 건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