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농사일은 애 보기 위한 레크리에이션이 되고, 애 보는 일은 농사일을 위한 레크리에이션이 된다. 그래서 나는 힘들면서도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즐겁다면 즐겁다. 남들은 애도 보고 농사도 지으니 얼마나 힘드냐고 한다마는, 우리 손주들 네 명이나 몰고 다니는 걸 본 동대표 아주머니는 표창 상신해야겠다고 하신다. 그때마다 겸연쩍게 “뭐, 제 새끼 제가 돌보는데요” 하고 웃어넘긴다.
무슨 일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즐겁다고 생각하면 즐거운 마음이 일어나고, 싫다고 느끼면 하기 싫어지는 게 세상 이치다. --- p.28
우리 모두 콩을 심었으면 콩을 수확하길 바라고, 아이들에게도 콩을 심었으니 콩이 나오는 것을 정직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노력한 만큼 바라고 노력한 만큼의 결과물에 만족하면 행복한 마음이 일어난다. 흔히들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노력한 만큼 결실이 돌아온다고 한다. 그런데 어디 땅 뿐이랴!
매사가 노력한 만큼 돌아올 뿐이다. 자식들한테 존경받는 부모가 되려면 내가 먼저 자식들한테 잘해주면 된다. 남도 자기한테 잘해주면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게 인지상정인데 하물며 부모님이 잘해주면 말해 무엇하랴!
--- p.30
나는 16년차 농사꾼이만 아직도 어설픈 데가 많다.
쉬운 것 같아 보이면서도 변수가 많다보니 해마다 시행착오를 한다. 작년에는 ‘올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에는 더 잘 지어야지’ 하면서 올해 농사를 지었건만, 올해도 똑같은 소리를 하면서 내년을 기약한다. 그런데 한평생 농사를 지으신 어르신들께 내 착오와 후회를 말씀드리면 당신들도 똑같단다. 매년 잘 안 되고 후회스러운 부분은 내년으로 다짐한단다. 자식 농사도 비슷한 맥락이라서 첫 아이의 미진한 부분은 둘째 아이에게 기대해보고 싶은가 보다. 인지상정이겠지.
--- p.51
주자십회훈(朱子十悔訓)에도 ‘불효부모 사후회(不孝父母 死後悔)’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때도 그랬으니까 이렇게 키웠든 저렇게 키웠든 생색내지 말고 입 밖에 안내는 게 상책이다.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자기가 낳았으면, 부모가 되었으면 자기의 능력껏 자식을 잘 키울 의무가 있는 것 아닌가. 키울 때 보상 받고 싶고, 효도 받고 싶어서 키우지는 않았을 것이니.
늙으니까 생기는 욕심이다. 재물이 있어서 결혼 선물로 집이라도 사주고 나서 주말마다 꼬박꼬박 손주 데리고 안 온다고 화를 내고 야단친다는데, 그래서 얻는 게 뭘까. 억지 효도를 받아봐야 관계만 서먹하고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불화 밖에 더 생길까. 집 사주는 부모는 자기 주위 둘러보고 ‘큰 생색낼 일 했다’고 생각되겠지만, 받는 자식은 자기 주위 둘러보고 ‘남들도 다 해주는 건데, 뭐’ 하고 심드렁하게 여길 수도 있다.
--- p.67-68
하여튼 그 당시의 열악한 의료 환경을 생각하면 지금은 애 키우기 정말 쉽다.
웬만한 열은 해열제 두어 번 먹이면 뚝 떨어지고, 조금만 아파도 금방 병원에 갈 수 있고, 의사가 진찰해주고 약 처방해준 대로 약 지어 와서 먹이면 대개 잘 낫는다. 요새는 오히려 과잉진료, 과잉처방이 걱정일 때가 있다. 아기들이 아프지 않으면 평상시에 애 키우는 건 어려울 게 별로 없다. 배불리 먹이고, 똥오줌 가려주고, 얼러주고, 잠재우고, 하루에 두어 번 유모차 운전해서 바깥에 나가 햇볕도 쪼여주고, 맑은 바람을 쐬어주고, 세상 구경시켜주면 대체로 아기들은 잘 자란다. --- p.114~115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첫째가 마음가짐이고, 둘째가 체력 기르기다.
손주를 돌보는 것이 인류의 번성을 위하는 길이고, 애국하는 길이며, 가정의 행복을 가져 오는 길이고, 내 개인의 영원성을 전하고 확장하는 길임을 심도 있게 자각해보아야 한다. 남한테 보이기 위한, 설명하기 위한, 자존심 확립을 위한 얄팍한 합리화가 아닌, 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꼭 해야 할 지표의 하나임을 자각할 때 긍지와 자부심이 생기게 된다. 이런 마음이 되면 남 보기에 창피하다거나 남에게 자랑한다거나 하는 그 어떤 마음의 동요를 느낄 필요가 없고, 그저 내 삶의 일부이자 내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
--- p.118~119.
아이들 돌보면서 매 순간 주의, 집중해야 할 것이 바로 ‘안전’이다. 365일 중 364일을 잘 돌보다가도 하루 잘못해서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동안의 공(功)은 공(空)으로 돌아가고 원망만 잔뜩 짊어지게 된다.
아기가 누워서만 지내는 기간은 겨우 120여 일. 대개 130일이 지나면 뒤집기 시작하고 조금 지나면 기기 시작한다. 이때는 아기 주변에 떨어질 물건이 없는지, 기어가는 주변에도 해를 끼칠 물건이 없는지 살펴보고 치워주면 되므로 크게 신경 쓸 일 없다. 앉기 시작하면 금방 무얼 잡고 일어서기 시작한다. 시키지도 않는데 열심히 스스로 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생명이란 참으로 신비하고 경이롭다. --- p.129~130
나는 10년 동안 손주 넷 모두를 백일 정도 아기 때부터 지금까지 돌봐주면서 지키고 있는 원칙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밤에 아기를 데리고 자지 않는 것이다.
엄마들이 낮에 가사일이나 직장 일에 힘들고 밤에 아기까지 끼고 자려면 얼마나 어렵겠냐만, 나는 그것도 다 한때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고 말하고 싶다. 행여 힘들다고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에게 밤에도 봐달라고 맡기지 말라.
나이 많은 어른은 아기들이 조금만 뒤척여도 잠에서 깨어 밤새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속 그러면 병이 나고 말 것이다. 큰 불효를 저지르게 될 것이다. 젊은 엄마는 아기가 웬만큼 칭얼대도 모르고 그냥 자는 경우가 많고, 설사 깬다 해도 젖 물리거나 분유 데워 먹이고 다시 잠들면 된다.
--- p.142~143
판단력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 올바른 사고, 깊이 있는 생각을 자주 많이 하게 해야 한다. 아이는 아이답게 키워야 한다. 지덕체(智德體) 교육을 균형 있게 나이에 맞게 시켜나가면 된다. 내 자식이 모두 다 천재이지만 수재, 영재는 아니니, 부모 욕심 줄여 아이들 힘들게 하지 말고 자식들의 천재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해주고 지지해주고 보살펴주는 게 우리들 할배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올바른 인생은 평소의 올바른 생활습관에서 나오며, 습관은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생기고, 행동은 생각이 있기 때문에 하게 되는 것. 그러므로 올바른 생각을 많이 할수록 올바른 인생살이를 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 p.159~160
한동안 시우가 그 말을 해대면 듣기 싫어서, “요년 봐라! 기껏 키워놨더니 한다는 소리가!” 하면서 눈을 부라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우리 둘 다 “그래 네 말이 맞다. 할배 할매가 늙어서 그래” 하고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둘 다 이제부터 늙음을 인정하고, 몸조심하기로 서로 다짐한다. 밥 씹을 때 살살 씹기, 한 가지 동작 오래 안 하기, 무거운 것 들 때 예비운동하기, 아침에 일어날 때 가벼운 스트레칭하기, 급격하게 동작 바꾸는 것 안 하기 등등.
요새는 시우의 지당한 말씀(?)을 고맙게 생각하며 서로가 불편한 몸을 호소하면서 서로에게 “늙어서 그래”를 주고받으면서 산다. --- p.181~182
참, 함박꽃에는 두 종류가 있단다. 작약꽃도 함박꽃이라 하고, 산목련꽃도 함박꽃이라 한다. 화사한 작약꽃도 아름답지만 좀 요염한 것 같아서 나한테는 안 어울리는 것 같다.
산목련은 꽃을 피워도 잎 속에 숨어서 눈에 잘 안 띄지만, 은은한 향기와 고귀해보이는 꽃송이가 내 마음에 들어 이 할배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라고 말할 수 있단다.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꽃은 아니지만 할아버지의 자그마한 농장에 여섯 그루가 5월부터 6월까지 꾸준히 꽃을 피워주니 할배 생각나고 보고 싶으면 언제든 와서 “할배꽃~!”하고 불러주며 나를 생각해주렴.
그 그늘 아래서 너희들이 언제나 환한 웃음 터뜨리도록 이 할배는 영원히 지지 않는 할배꽃으로 피어나리라!
--- p.188~189
그래도 글을 써보고 싶었던 이유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국가 위기로 다가오고 조부모님들의 수명이 백세시대를 맞이하다 보니, 손주 돌봐주는 것이 위의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작게는 내가 지난 10년 동안 손주들을 키워온 것에 대한 나의 합리화, 자존심, 자긍심을 자위하기 위해서 졸문을 썼지만, 좀더 욕심을 내서, 이 변변치 못한 글을 읽고 온세상의 손주 키우고 돌보고 가르치는 - 노인은 도서관이라는 그 지혜와 지식을 - 할배, 할매님들의 노력이 인류를 위하고, 국가를 위하고, 가정을 위하고, 자식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드려서, 그분들의 자존감, 자부심을 조금이나마 고양시켜드리고 싶어서였다.
그러니 부디, 할배 할매님들!
건강 잘 돌보시고, 허리 삐끗 안 하시려면 매일매일 체력 단련하시고, 영양 골고루 담긴 음식 챙겨 드시고, 사명감을 가지시고, 행복을 느끼시면서 손주들 잘 키워주시고 예뻐해주시고 사랑해주세요!
--- p.19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