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高遠)의 본명은 고성원(高性遠)으로 1925년 12월 8일 충북 영동군 학산면 박계리 587번지에서 태어났다. 1938년 양산 보통학교를 거쳐, 전주 북중학교(현 전주중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이 시기 고원은 일제 치하의 공립 중학교 건물 안에서 한국말을 하다가 발각되어 정학 처분을 받는 경험을 한다. 이 사건은 그 자신의 역사를 해방과 함께 찾아온 한국말의 소생과 발전의 역사로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1948년 동국대학교 전문부 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 영문과 2학년에 편입학해 학업을 이어 가던 중, 이번에는 한국 전쟁의 여파로 더 이상 학업을 계속하기 어려운 형편에 이르렀고, 이미 두 권의 개인 시집을 갖고 있었던 고원은 1958년 3월에 가서야 학업(영문학)을 마무리하게 된다. 최초로 활자화한 시의 흔적은 1947년(혹은 1946년 초반) ≪습작시집 새움≫이라는 제목이 붙은 시집이다. 1952년 12월 그는 장호, 이민영 등과 3인 공동시집 ≪시간표 없는 정거장≫을 협동문화사에서 간행했다.
1952년부터 ‘고원’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주간국제≫, ≪제일신보≫, 협동문화사의 아동지 ≪파랑새≫, ≪연합신문≫ 등에 글을 발표하는 한편 문학 서클(‘구봉 문학회’) 활동을 본격화하기 시작한다. 1954년 시지(詩誌) ≪시작≫을 창간하고, 이해 12월 두 번째 시집(개인시집으로 제1시집) ≪이율(二律)의 항변(抗辯)≫을 시작사에서 출간한다. 이어 1956년 5월 제2시집 ≪태양(太陽)의 연가(戀歌)≫를 이문당에서 펴낸다. 그리고 같은 해 ‘영국 유학’ 경험을 쌓는다. 1959년에 고원은 ≪영미 여류 시인선≫, D. H. 로렌스의 ≪사랑의 시집≫ 등 번역 시집을 간행한다. 1960년 6월 제3시집 ≪눈으로 약속한 시간에≫를 정신사에서 간행한다. 이후 고원은 ≪오늘은 멀고≫(동민문화사, 1963), ≪속삭이는 불의 꽃≫(신흥출판사, 1964), ≪미루나무≫(해외한민보사, 1976), ≪북소리에 타는 별≫(해외한민보사, 1979), ≪물너울≫(창작과비평사, 1985), ≪다시 만날 때≫(범우사, 1993), ≪정(情)≫(둥지, 1994), ≪무화과나무의 고백≫(창작춘추사, 1999) 등 총 12권의 시집과 ≪새벽별≫(태학사, 2000), ≪The Turn of Zero≫(Cross-Cultural Communications, 1974), ≪Some Other Time≫(Bombshelter, 1990) 등 한글 시조집 한 권과 영시집 두 권을 상재한다.
1964년 시인은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의 ‘문학’의 중핵을 이루는 ‘문학적 탐구’의 열망은 도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추구된다. 1965년 미국의 아이오와대학에서 영문학 석사(MEA)를 받고, 그 이듬해까지 그의 학문적 열정은 식을 줄 모르고 타오른다. 1966년 아이오와 시인협회 주관의 현상 공모에 대학부 1위로 당선되기도 한다. 그리고 같은 해 ≪Kansan City Star≫ 신문 현상 시에 당선되는 영예를 얻는다. 이후 그의 미국 생활은 그야말로 문학적 출발점에서부터 추구했던 학문적 열정에 오롯이 바친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74년 뉴욕 대학에서 비교문학 박사 학위를 획득한 고원 시인은, 캘리포니아대학교 리버사이드(UC Riverside)의 대학 강단에서 은퇴할 때까지(1987∼1992), 그리고 2008년 1월 그의 문학적 생을 마감할 때까지 ‘문학’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탐구의 열정을 보여 주었다.
이석(李碩)은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에서 <김수영 시의 ‘주체’ 문제 연구>로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문학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는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현대시와 문학사이며, 특히 ‘현상학’을 주축으로 하는 철학적 사유와 문학 비평의 통섭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 시(문학)와 역사성에 대한 존재론적 탐구에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