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말더듬이 노트케르의 라틴어 이름은 노트케르 발불루스(Notker Balbulus)다. 프랑크 명문 가문 출신으로, 성 갈렌 수도원 부근에 있는 투르가우 지방에서 840년경에 태어났다. 어릴 때 아달베르트(Adalbert) 밑에서 양육되었다. 아달베르트는 프랑크인들에게 강력한 저항 세력이었던 작센족, 훈족, 슬라브족을 상대로 한 정복전쟁에 참여했던 프랑크의 용감한 전사였다. 노트케르가 소년이었을 때 이미 연로했던 아달베르트는 그에게 수많은 전쟁담을 들려주었다. 그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회상하면서, 노트케르는 이 책의 제2권에 나오는 샤를마뉴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구성했다고 고백했다. 성 갈렌의 수도원학교에 들어가 그 수도원의 수사였던 그리말트(Grimald)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말트는 당시 프랑크 왕국의 최고 지성으로 알려진 앨퀸의 제자였다. 성 갈렌의 수도원학교에서 다양한 학문 분야를 두루 섭렵한 후, 노트케르는 스승의 뒤를 이어 그 수도원의 수사가 되었다. 수사가 된 후에는 주로 교사로 활약했으며, 시와 음악, 저술에 재능을 발휘했다. 신체는 가냘팠지만 마음은 강직했고, 혀는 어눌했지만 지성은 번뜩였다. 기독교 신앙을 보급하고 발전시키는 데 헌신하다가 912년에 사망했다. 1512년에 교황에 의해서 시복(beatification)되어 복자(the Blessed)의 반열에 올랐다.
이경구는 2001년부터 ‘콘스탄티누스 기진장(Donation of Constantine)’을 연구 주제로 설정해 지속적으로 공부했다. 이 주제는 내용상으로 샤를마뉴의 부친인 피핀 단신왕으로부터 샤를마뉴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들과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다. 따라서 옮긴이는 그동안의 연구 과정에서 샤를마뉴와 그의 가문에 관련되는 기본적인 사실들을 이미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트케르의 ≪샤를마뉴의 행적≫을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2000년 이후 주요 연구 성과물로는 ≪중세의 정치 이데올로기≫(느티나무, 2000), ≪꿰뚫는 논술 교과서≫(공저: 신서원, 2003), ≪만화 한국사·세계사 척척 논술≫(공저: 중앙재능북스, 2006) 등의 저서와 역서 ≪중세 이야기≫(공역: 새물결, 2003), 그리고 논문 <로마 교회와 프랑크 왕국의 제휴: 피핀의 쿠데타를 중심으로>(<서양중세사연구>제8집, 2001), <스테파누스 2세와 피핀의 상봉: 그 역사적 의미>(<서양중세사연구> 제9집, 2002), <콘스탄티누스 기진장의 작성 목적>(<서양중세사연구> 제11호, 2003), <신성로마제국의 출발점에 관하여>(<서양중세사연구> 제13호, 2004), <콘스탄티누스 기진장의 작성 시기>(<서양중세사연구> 제14호, 2004), <신성로마제국의 성격: 교황권과 황제권의 관계를 중심으로>(<서양사연구> 제37집, 2007), <콘스탄티누스 기진장의 적용 사례: 13세기 전반기의 교황들을 중심으로>(<호서사학> 제49집, 200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