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문학비평가인 블리스 페리(Bliss Perry)의 『시론』(원제 A Study of Poetry)을 맹문재, 여국현 교수가 번역했다. 시의 영역, 시의 상상력, 시의 언어, 리듬과 운율, 각운과 연, 자유시 등 시 일반론을 기술하고 있다. 특히 서정시의 영역과, 서정시의 관계와 유형들, 서정시의 현재 상황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블리스 페리는 시의 기능과 의의 등을 일반 독자와 학생들에게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기 위해 지대한 노력을 했다.
제1부에서는 시 일반론을 펼치며 시 연구와 미학 연구를 통해 ‘리듬감 있게 배열된 언어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시의 정의에 이어서,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 작품 전반에 걸친 예술적 자극과 형식 및 의미 등을 정리했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신화를 통해 시의 영역을 설명하고, 시인의 창조적, 예술적 상상력을 고찰하였으며, 시적 상상력과 언어 이미지에 관해 해설했다. 시를 통해 말로써 감정을 전달하는 시인의 언어도 알아보았다. 리듬와 운율, 각운, 연 자유시에 대해서도 고찰했다.
제2부에서는 고대 그리스 시의 중요한 유형인 서정시, 서사시, 그리고 극시 중 서정시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았다. 서정시는 음악적 특성을 지녔으며, 작가의 기분과 감정, 경험을 리듬에 담아 드러낸다. 가장 개인화된 시의 양식으로 인간 삶의 비전에 대한 무한한 다양성을 드러낸다. 이 책은 서정시가 생존하고 소멸하는 과정과 서구 문학사에 걸쳐 다양하게 전개되어온 서정시의 양상을 고찰하며 더 나아가 서정시의 현재 상황을 알아보았다. 또한 시론을 공부하는 데 있어 참고가 될 만한 상세한 서지 목록을 덧붙였다. 이 시론은 시를 공부하고 시를 창작하는 이들에게 좋은 기본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서문」중에서
그리스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를 하나의 예술로 간주하며, 시란 리듬감 있게 배열된 언어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그들이 시에 유용한 특정한 종류의 감정과 시인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유형의 리듬감 있는 언어 배열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는 순간, 그들은 다른 질문들을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다른 예술은 감정을 어떻게 전달하는가? 그 과정에서 그들은 어떤 율동적 질서와 배열 속에 사실들을 활용하는가? 예술 작품을 대할 때 우리 내면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달리 말해 예술적 자극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무엇인가?
이러한 폭넓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우리 현대인들은 소위 미학으로 눈길을 돌린다. 그리스어인 “aisthanomai”(지각하다)로부터 나온 미학이라는 용어는 “감각 지각과 관련 있는 모든 것”이라고 규정되어왔다. 그러나 이 용어를 오늘날과 같은 의미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18세기 중엽의 독일사상가 바움가르텐(Baumgarten)이었다. 그가 의미한 바에 따르면 그 용어는 “순수예술 이론”이었다. 이 용어는 “미(美)에 대한 학문”과 “미의 철학” 양자, 즉 미 자체의 본성과 기원에 대한 성찰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것에 대한 분석과 분류를 묘사하는 데 유용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 p.18
서정시는 어떻게 정의되더라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확실한 일반적 특성이 있다. 서정적 “비전”, 다시 말해“ 단순하고 감각적이며 열정적인” 특성을 부여하는 독특한 경험, 사고, 항상 신선한 정서, 자아의식, 그리고 진심을 드러낸다는 특징이 있다.
서정 시인에게 모든 것은 새로워 보인다. 매번의 일출에 대해 그는 말한다. “첫 햇살은 얼마나 화창한가.” 햄릿의 모친은 햄릿 부친의 죽음에 대해 “그건 흔한 일이라는 걸 너도 알잖니. 대체 그게 왜 그렇게 너한테는 특별해 보이는 것이냐”라고 말한다. 하지만 서정적 기질의 사람들에게 모든 것은 “특별하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새로운 경험에 대한 절묘한 그들의 인식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의 나이 일흔네 살에 쓴 “이른 봄”에 관한 테니슨의 시행들, 일흔두 살에 브라우닝이 쓴 「세월과 시간은 다시 오지 않네」(Never the Time and the Place), 괴테가 여든 무렵에 쓴 사랑의 서정시들, 이 모든 시들은 섬세하게 피어나는 사춘기의 특성을 담고 있다.
때로 이 신선함은 부분적으로는 그 시인이 속한 민족 문학이 발전하는 가운데 시인 자신이 차지하는 초기 위치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그는 자신의 특별한 주제에 대한 최초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이었다. 1250년경 한 무명의 시인이 오늘날 우리가 그 악보를 간직하고 있는 영국 최초의 서정시를 쓰기 전에도 무수한 봄들은 있었다.
--- p.205~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