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냐 인식이냐의 문제는, 많은 경우가 인식의 수준대로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때로 질문 자체가 의미 없는 짓이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능력만큼 신을 만난다. 또한 자기 지평대로 세계를 해석하며, 자기 수준대로의 정치를 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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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간세가 신학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할 즈음부터 자본이 신의 자리를 꿰찼다는 마르크스의 일갈, 이제 인류에게 돈은 신앙의 속성이다. 금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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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사이에는 대중의 구매욕을 조장하는 광고의 매질이 있긴 하지만, 대중들 스스로가 선택하게끔 하는 방식을 취한다는 것. 이를테면 광고는 이 차를 사달라고 애원하지 않는다. 당신은 아직도 이 차를 사지 않았는가를 묻는 식으로, 차가 지닌 위계의 상징성을 슬쩍 흘릴 뿐이다.
--- p.90
너는 가능할 것 같을 때만 시도하나? 가능할 것 같은 일에만 도전하나? 같은 맥락으로 바디우의 어록을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너는 가능할 것 같은 사랑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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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주어졌을 때는 그것이 청춘인지도 모르고 지나왔거늘, 멀어진 후에야 비로소 그 자리가 청춘이었음을 깨닫는 역설. 하여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청춘은 늦게 도래한다. 더 이상 그것을 향유할 수 없을 시기에…. 그렇듯 때로 과거는 미래에서 발견이 된다.
--- p.143
소를 잃고 나서야 외양간을 고치는 사람도 지혜롭지 못하지만,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사람은 도저히 어찔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대개 이런 사람들이 소를 다시 키울 생각은 또 있다는 거. 반성할 줄 아는 인간도 간혹 실수를 반복할 때가 있다. 반성할 줄 모르는 인간은 가혹하도록 반복한다.
--- p.160
간디의 말마따나,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닮지 않은 경우, 저들은 자신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심지어 그리스도께서도 돌을 집어 던지실 일들도 서슴없이 저질러대는 현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p.173
베르그송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간적 삶과 공간화 된 삶을 살아가는 차이이다. 시간은 생동하는 것들 사이를 흐른다. 한 공간에만 머무는 것들은 대개가 죽어 있는 것들이다.
--- p.280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인간에 관한 지식들 중 적지 않은 사례가, 알게 모르게 그 시대의 구조적 욕망들이 투영된 것들이다. 당신을 위해 쓰여졌다는 많은 지식들이 실상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지식의 구조 안에서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학자들과 저자들을 위한 것이다. 들뢰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들은 대중들을 위해 존재한다기 보단 대중들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다.
--- p.328
미리 지정된 가치들의 파괴, 그로써 확보되는 열린 체계와 다양성. ‘포스트 모던’이란 말도 오래 전에 옛 것이 되었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것 아니면 저것이다. 팔릴 만한 것, 먹힐 만한 것, 될 만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
--- p.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