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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뚜벅이의 작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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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뚜벅이의 작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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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4월 17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400g | 138*194*20mm
ISBN13 9791155551318
ISBN10 1155551311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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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   수뗑이   평점4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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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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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 운전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내가 삼십 대 후반쯤이었다. 매일 아침 학원 차가 수강생을 실어 날랐다. 기계라면 비디오 작동도 겁내는 나에게 또래 엄마들이 자꾸 부추겼다. 열 명이면 할인을 받는데 한 명이 모자라는 모양이었다.
연이은 성화에 자격증이나 따 둘 요량으로 못 이긴 척 따라나섰다. 그리고 강사에게 말했다. 합격해도 운전은 안 할 거니까 쉽게 면허 따는 요령만 가르쳐 달라고.
몇 번의 낙방 후에야 겨우 면허증을 손에 쥐었다. 남편은 속뜻도 모르고 좋아했다. 손놓으면 힘들다며 출근할 때 데리고 나가 운전대를 맡겼다. 식은땀이 났다. 밤길을 더듬듯 몇 정거장 기어가다가 도중에 넘기고 버스로 돌아왔다. 심한 기합을 받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얼마 후 같이 면허 딴 친구가 사고를 내고 말았다. 고가도로 밑에서 커브를 돌다가 갑자기 인도로 뛰어든 것이었다. 또 옆집 아주머니는 연습 중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운전에 대한 공포가 엄습했다. 게다가 고속도로에서 본 끔찍한 사고 현장까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모두 내가 당할 일 같았다.
점점 운전 생각이 없어졌다. 울적한 날 혼자 자유로를 달리려던 야무진 상상도 지워 버렸다. 남편은 요즘 세상에 운전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약을 올렸지만 공포감에 비한다면 어떤 비난도 참을 만했다. 회식 후 차를 갖고 대기하는 동료의 아내가 누구보다 부러웠겠지만 어쩌겠는가. 겁쟁이 아내 둔 것을 한탄하는 수밖에.
그렇다고 운전이 필요 없는 건 아니다. 마트에서 잔뜩 산 물건을 두 팔이 늘어지도록 들고 오는데 주차장에 놀고 있는 차를 보면 나 자신이 한심하기 그지없다. 또 어쩌다 오시는 친정어머니를 내가 운전하는 차에 모시고 교외로 나가 특별한 음식 한번 못 사드린 건 평생의 한이다. 게다가 단둘이 즐긴 외식에서 곁들인 반주 두어 잔 때문에 대리기사를 부를 때면 내 처지가 한없이 초라하다.
하지만 운전을 안 해서 괜찮은 점도 적지 않다. 우선 주차 자리를 찾느라 헤맬 필요가 없다. 주차는 운전자의 몫으로 두고 내 몸만 옮기면 된다. 또 눈을 부라리며 고함치는 난폭 운전자의 삿대질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 조수석에 앉아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본들 범칙금도 요구하지 않는다. 수시로 변하는 바깥 풍경을 눈요기하며 머릿속에 수백 개의 그림을 그린들 어떠하리.
우리나라 지하철은 얼마나 편리한가. 거미줄 같은 노선을 그림 하나로 보여 주는 앱이 있으니 어쩌다 잘못 내려도 당황하지 않는다. 게다가 카드를 댔을 때 ‘환승입니다’라는 낭랑한 목소리는 보너스 받는 기분이다. 갈아타는 위치는 물론 어디쯤 지난다는 정보까지 주니 애인인들 그만큼 자상할까 싶다.
얼마 전 동탄신도시로 이사 왔다. 처음에는 버스가 별로 없어 불편했지만 이제 웬만한 곳은 거의 연결된다. 특히 서울로 가는 광역버스는 네댓 정거장만 지나면 고속도로를 탄다. 넓은 도로 위에 딱정벌레처럼 들러붙은 승용차의 행렬. 하지만 버스는 몇 걸음 스텝만 밟으면 금세 전용차로를 차지한다. 위용을 과시하는 몸집, 레드 카펫 위를 미끄러져 가는 우쭐한 기분은 그때부터다. 정체가 심할수록 더 시원한 느낌. 그날 앞자리의 통쾌함은 배가 된다.
버스는 앉는 위치에 따라 기분이 완전히 다르다. 탁 트인 시야에서 다양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앞자리. 전망대에 앉아 호령하던 사람이 침을 흘리며 자고 나도 부끄럽지 않은 뒷자리가 있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바뀌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창가 자리는 어제 오늘, 아니 아침저녁이 다른 초대형 정원이다.
얼마 전 산수유, 개나리가 노란 물을 쏟더니 금세 연초록 이파리가 여백을 채운다. 버스 안에서만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산수화 전시회다.
정체된 도로를 버스전용차선으로 달릴 때면 초등학교 마지막 운동회가 떠오르곤 한다. 주로 6학년이 하는 ‘손님 찾기’다. 말 그대로 내빈과 함께 달리는 경기인데 운 좋으면 ‘선생님’도 들어 있다.
예닐곱 명이 출발선에 섰다.
“탕!”
신호탄이 울리자 우르르 뛰어가 멀리 놓인 쪽지를 하나씩 주웠다. 나도 얼른 집어 펼쳤다. 아! 선생님. 우리 학교에서 제일 멋지고 박력 있는 옆 반 선생님이었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주태규 선생니임!”
발을 구르며 본부석을 향해 힘껏 소리질렀다. 어디선가 반사적으로 뛰어나온 선생님이 내 손목을 낚아챘다.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트랙을 둘러싼 우레 같은 함성이 우리 두 사람의 등을 떠밀었다. 태어나서 처음 맛본 1등. 그토록 가고 싶던 4반인데 그 선생님 손을 잡고 달리다니. 지금도 생각하면 어깨가 으쓱해진다.
오늘도 버스는 개선장군처럼 달린다. 엎드린 승용차 어깨너머로 뒤꿈치 들고 응원하는 벚꽃 행렬까지 보태니 관중은 더 많아졌다. 서울이 가까워지면 옛사랑을 만나러 가는 것 같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손녀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살아가는 일도 이렇게 순조로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앞으로도 내 운전면허증은 장롱 안에만 있을 것이다. 나이 들수록 몸 따로 마음 따로인데 무슨 용기로 핸들을 잡겠는가. 내 생명은 물론 자칫 상대방에게 흉기가 될지도 모를 자동차 운전. 좀 느리고 불편하더라도 세상살이에 뒤처지지 않는 지금 이 뚜벅이가 나는 행복하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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