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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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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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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1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354g | 130*190*18mm
ISBN13 9791155641965
ISBN10 1155641965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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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   수뗑이   평점4점
  •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  특이사항 : 한국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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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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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많은 것들을 관습이라는 관점으로 당연하게 인식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비판적 사고 없이 여성 질환을 가진 환자에게 ‘여성성이 훼손되었음’이란 무의식적 낙인을 찍었다. 문화란 이름으로 사고방식을 결정짓는 과정에 대한 비판이 없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결국, 근종이라는 질병이 아니라 사회가 정한 여성 정체성이 나를 비롯한 많은 여성들을 공격했고 자궁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상처가 생겼다.
고정관념에 의해 건강에 관한 인식마저 좌지우지된다는 건 화가 나는 일이었다. 물론 고정된 성 역할로 한국에서 산다는 건 단순히 여성만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남성 역시 ‘남자는 이래야 해’라는 고정관념 속에서 사회가 규정한 남성다움을 지키기 위해 이유 모를 애를 쓰고 살았다는 데 당연히 동의한다.
질병으로서 자궁근종은 역설적이게도 나의 삶의 태도를 조망할 기회를 주었고 새로운 가치를 생각하게 했다.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여성성을 기준으로 오늘을 산다는 건 과연 유의미한 일인가? 그들로 인해 받은 상처를 안고 사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은가?’
난 사회의 인식이란 안개에 갇혀 있던 건강하게 살 권리를 되찾고 싶었다. 그리고 거창하지 않아도 입고 싶은 옷을 입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하나씩 나를 위한 선택으로 인생을 채워나갈 필요가 있었다.
--- pp.43-44

지나간 과거에는 무언가를 진정으로 사유할 여유가 없었다. 마음이 원치 않아도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려고만 했고 왜 그래야 하는지 물음도 없었다. 사람을 소모품처럼 사용하는 사회에서 이유가 어찌 되었든 살아남아야 했다. 그러니 무언가의 본질을 관찰하는 과정은 불필요했다. 때문에 사회가 나를 대한 것처럼 나 역시 나의 몸을 소모품처럼 여겼다. 일회용 커피 용기가 하루에도 서너 개씩 책상에 쌓였다. 일주일 중 5일 동안은 넘쳐흐르는 스트레스를 감당 못하고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연거푸 몸에 쏟아부었다. 뽑힌 머리카락은 잔디처럼 방바닥에 뻗쳐 있었다. 웃는 날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때의 나는 내일도 어제와 동일할 거란 착각을 하곤 했다. 젊음의 소중함을 느끼기보다는 지겹게 반복되는 이 하루가 어서 끝나길 기대했다. 영혼이 조금씩 갉아 먹히고 몸도 병이 났다. 코미디언이자 방송작가인 유병재의 말이 맞았다. 아프면 환자지, 뭐가 청춘이야!
역설적이게도 나는 정말 환자가 되었다. 죽을병은 아니었지만 과거의 사고방식과 생활 습관 때문에 자궁에 주먹만 한 혹이 생겼나 싶었다. 그러니 근종을 발견한 건 감사한 일이었다. 근종은 나로 하여금 과거를 성찰하게 했고 사고방식과 생활 습관, 식습관 등을 변화하도록 이끌었기 때문이다.
--- pp.103-105

내가 경험한 사회는 이유가 어찌 되었든 타협과 실패가 나쁘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유명한 저자들이 쓴 자기계발서에도 타협하지 않는 자세에 관한 주제가 빠지지 않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이야기를 성공 스토리처럼 읊어댄다. 그래서 실패를 할 때마다 사람들은 실패 그 자체의 교훈보다는 ‘실패한 인생’이란 죄책감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의문이 생겼다. 왜 타협과 실패가 나쁠까?
‘좀 틀리면 어때.’
반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타협과 실패는 인생의 필수요소임이 분명했다. 직접 부딪쳐 깨지고 나니,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삶이란 긴 여행에서 언제든 틀려도 괜찮다는 안도감이 생겼다. 실패는 했지만 변화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고 노력은 항상 진실되었다. 오히려 환상에 가까운 완벽주의가 희망찬 변화를 가로막을 것이다. 적당히 좋은 것이 완벽한 것보다 더 나았다.
--- pp.151-152

나는 누군가로부터 앞서 나간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계급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상품과 브랜드의 이미지를 소비했다. 그런 활동들로 완벽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고 물건을 사는 걸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마케터임에도 이런 심리 조작에 허우적거린 적이 많음을 양심 고백한다. 동시에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 상품에서 나오는 화학물질 같은 부정적 사실들을 보고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나의 삶을 깨끗하고 예쁘고 효율적이며 완벽하게 만들어줄 거라 생각했던 더 많은 물건은 전혀 삶의 질을 개선시켜주지 않았다. 오히려 해가 되어 돌아왔다. 곰팡이 제거에 탁월하다는 세제를 사용할 때에는 나까지 녹아내릴 만큼 유독한 가스에 콜록거리며 기침을 했다. 매일 운동하겠다며 산 운동기구는 플라스틱 냄새가 진동을 해서 잠시 베란다에 두었다가 사용하지 않은 채 버려졌다. 유행하는 가구에는 독성물질이 검출되었다며 연일 리콜이었다.
‘과연 이 물건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환경호르몬을 포함한 유해 물질을 줄이려는 노력에서 계속적으로 떠오른 의문이었다. 멀리서 바라본 세상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 보였으나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었다. 무언가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피폐할 정도로 부족했다.
--- pp.216-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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