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응하는 거야.”
엄마는 입버릇처럼 그런 말을 자주 한다. 대개는 나쓰키에 대해 말할 때 사용한다. 그녀에게 그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나쓰키는 엄마에게는 꿈 얘기를 하지 않는다. 아빠에게도. 경험상, 그들이 서로에게 무슨 말이든 한다는 것을 나쓰키는 알고 있다.
그 꿈에는 나쓰키 외에는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나쓰키는 혼자 거기에 있다. 일본에서 전에 살았던 집에. 현관으로 들어서면, 나쓰키는 심장이 터질 듯이 반갑다. 그런 기분으로, 방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걷는다.
‘아, 여기.’
그 꿈속에서, 나쓰키는 많은 것을 본다. 커튼과 벽과 부엌, 복도와 침대와 천장.
‘아, 이거.’
모든 것이 또렷하게 보이고 그리움으로 가득한데, 눈을 뜨고 나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커튼의 무늬도, 벽의 모습도, 부엌에 뭐가 있었는지도. 그래서 잠이 깬 후에는 한참이나 멍해지고 만다.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리고 집이 가엾어서 슬퍼진다. 때로 나쓰키는 그런 꿈을 꾸지만, 꿈 얘기를 하면 엄마와 아빠는 딸이 일본에 돌아가고 싶어 하나 보다고 걱정할 것이다. 실제로는,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닌데.---pp.44~45
어머니에게 건강해 보인다고 한 것은 인사치레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2년 반 전, 병원에서 다시 만났을 때의 어머니는 죽은 사람 같았다. 영양실조에 극도로 쇠약해진 데다 알코올중독 직전이라고 들었다. 의식이 돌아온 후에도 표정 하나 없고, 목소리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얼굴도 몸도 딱딱하게 쪼그라든 것처럼 보였고, 긴 머리는 더럽게 엉켜 있고 피부는 누렇게 떠 있었다. 마코토에게는 어머니가 집을 나갔을 때보다 돌아왔을 때(그걸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가 더 견디기 힘들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한편, 어쩔 수 없으리만큼 화가 났다. 기억 속의 엄마, 쾌활하고 정이 깊고, 언제든 아빠를 웃게 하고, 어렸던 자신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예쁘고 부드러운 몸의, 옆에 있는 게 너무도 당연했던 사람은 이미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런 사람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pp.76~77
“동생을 찾아보겠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까?”
남자의 말은 순식간에 히나코를 산산이 부서뜨렸다. 방 안에 있는 가공의 여동생을 소멸시켰고, 밖에서 내리는 빗소리마저 끊기게 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 방과, 그렇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인 이 기묘한 아파트 자체, 눈앞의 남자(거의 알지도 못함에도 집 안에 들이고 홍차까지 끓여주는). 그런 현실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굴욕적인지 순식간에 깨닫게 하고 말았다. 마치, 히나코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처럼.---p.121
해 질 녘. 오늘은 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해서 러브호텔에 들러 여기로 왔다. 아미는 마코토와 나눈 섹스를 수첩에 기록하고 있다. 물론 말할 생각은 없지만, 오늘은 그 백 번째로 기념할 만한 날이다. 1년 8개월에 백 번. 횟수에 의미는 없다 쳐도, 꽤 멋진 사실이 아닌가.
아미는 만날 때마다 자신이 마코토를 더욱 좋아하게 되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기쁜 한편 두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아미는 지금의 자신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마코토든 아니든, 이 이상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자신이 자신이 아니게 되고 말 것 같아, 그런 상황만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p.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