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출장을 다녀오실 때마다 아빠의 구두는 검정색인지 황토색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아빠는 어딘지는 알 수 없으나 매일 걸어 다니심이 분명했습니다.
그나마 그 구두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본래 낡은 구두는 마침내 굽도 반질반질 다 닳고, 구두코도 너덜너덜 벌어졌습니다.
몇 차례 수선했지만 더 이상 수선조차 불가능해졌을 때, 아빠는 가장 값싼 운동화를 사 신으셨습니다.
우리 남매를 키우시느라 구두를 살 형편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운동화 역시 한번 출장을 다녀오시자 금방 낡은 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빠의 그 신발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아파 견딜 수 없었습니다.
다가오는 아빠의 생신 때, 반드시 구두를 선불해 드리리라 다짐했습니다.
용돈을 받아 따로 모을 형편이 아니었으므로 학교 오갈 때 버스를 타는 대신 걸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금세 이천 원이 모였습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한없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어느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소복이 쌓인 은행잎을 밟으며 중앙청 앞길을 걸어 집으로 가던 중,
저 앞에 웬 키 작은 남학생 한 명이 힘없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바로 중학교 일학년인 남동생이었습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동생의 팔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왜 자꾸 누나 말 안 듣니? 넌 아직 어려. 걸어 다니면 피곤해서 성적 떨어지니까 반드시 버스타고 다니라고 했잖니.”
동생이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럼 난 아빠 구두 값을 어떻게 모으란 말이야?”
---「구두 한 켤레」 중에서
해성이는 세상에 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해성이가 앓고 있는 병은 난치병이 아니라 불치의 병입니다.
현대의학으로선 전혀 치료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하지만 해성이 얼굴은 마치 천사처럼 환합니다.
제가 방문할 때마다 언제나 밝은 미소로 맞아줍니다.
“개구리아저씨, 안녕하셨어요?”
제 아들은 때로 이해하기 힘든 모양입니다.
어른에게 별명을 부르는 해성이를, 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받아주는 아빠를 말입니다.
그때마다 아들에게 말합니다.
“해성이와 아빠의 관계는 아주 특별하단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주 특별한 사이입니다.
절친한 벗의 아들이라는 점 외에 또 다른 사연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조창인의 대표작이 되어버린 『가시고기』.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바로 해성이 때문입니다.
--- 「아주 특별한 친구」 중에서
뱃사공은 마흔 중반의 사내였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시력을 잃었지만 능숙하게 노를 저어 강을 건넜습니다.
장마로 물길이 거칠어져도, 가뭄으로 군데군데 바위가 수면 밖으로 드러나도
이편과 저편 손바닥만한 나루까지 정확하게 배를 댔습니다.
언제나 그의 아내가 뱃머리에 앉아 남편의 눈이 되어준 까닭이었습니다.
그들의 배를 탔습니다.
귀 밝은 남편이 노를 저으면, 눈 밝은 아내가 강 건너 나루를 가리켰습니다.
남편의 노질이 엇나갈 기미가 보일 때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왼쪽으로 밀리고 있어요.”
남편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습니다.
뱃일을 마치면, 뱃사공은 아내를 등에 업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내는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상태였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발이 되어주고, 아내는 등에 업힌 채 남편의 눈이 되었습니다.
--- 「귀 밝은 남편, 눈 밝은 아내」중에서
아빠가 싫어서 가출했습니다.
아빠의 모든 면이 싫었습니다. 아니, 싫다는 표현은 너무 간단합니다.
아빠를 증오합니다. 아빠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빠는 자신의 생각만을 강요합니다.
제 입장 따위는 아예 관심 밖입니다.
하지만 『가시고기』를 읽으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우리 아빠에게도 다움이 아빠와 같은 면이 있을지도 몰라.’
아니라고 고개를 저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빠에 대한 생각을 좀처럼 떨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아빠도 다움이 아빠처럼 저를 사랑할까요?
아빠에게서 과연 사랑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요?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합니다.
저 역시 아빠를 제대로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게 참 마음에 걸립니다.
집으로 돌아가 아빠에게 한번쯤 기회를 줘야겠어요.
---「어느 가출 소녀의 고백」 중에서
반년쯤 글 한 줄 쓰지 못하고 있는 제게 아내는 말했습니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매일매일 행복을 가르쳐줘서 고마워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매일매일 행복을 보여주세요.”
행복해할 까닭이 전혀 없으면서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아내 앞에서 저는 대꾸할 말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말이 저를 다시금 기운 내게 만들었습니다.
세상과 절연한 채 대부도 외딴집에 틀어박혀 글쓰기에 매달렸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나온 네 번째 소설이 『가시고기』입니다.
『가시고기』는 독자여러분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비로소 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유를 얻었습니다.
돌이켜 생각건대 아내의 그 말이 없었다면, 전 여전히 참담한 방황을 계속하고 있었을 겁니다.
당연히 『가시고기』는 제 마음속에만 틀어박혀 있었을 겁니다.
『가시고기』가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날, 아내가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난요, 당신에게 계속 글을 쓰라고 말해놓고도, 솔직히 자신이 없었어요. 당신의 능력을 의심한 건 아니고요. 다시 실패한 뒤 당신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거든요. 난 당신이 곁에 있으면 되는데, 또 한 번의 실패가 당신의 원래 모습을 망가뜨릴까 봐 무서웠어요.”
아내의 행복이란 처음부터 남편의 성공과 실패와는 무관했던 것입니다.
--- 「어떤 프러포즈」중에서
톨스토이의 모음 글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로마의 한 여왕이 몹시 아끼는 보석을 잃어버렸습니다.
여왕은 온 나라에 아래와 같은 공고를 내렸습니다.
‘한 달 안에 보석을 찾아 돌려주는 이에게 후한 상을 내리겠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뒤에 돌려준다면 가차 없이 사형에 처할 것이다.’
유대의 한 랍비의 손에 우연히 보석이 들어왔습니다.
여왕이 기약한 한 달 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랍비는 약정된 날이 지난 후에야 여왕 앞으로 나갔습니다.
여왕이 물었습니다.
“한 달 안에 오지 못할 사정이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그럼 공고를 보지 못하였구나?”
“봤습니다.”
“한 달의 기한을 지키지 못하면 사형에 처한다고 하지 않았더냐?”
“알고 있습니다.”
“죽기가 두렵지 않느냐? 스스로 죽기를 각오한 이유가 무엇이냐?”
“두렵습니다. 그럼에도 보석을 가져온 것은,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을 여왕께 보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 「랍비와 보석」중에서
홍콩의 영화배우 장국영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인물이었습니다.
<아비정전>에서는 방황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패왕별희>에서는
섬세한 내면연기를 통해 세계적인 배우로 인정받았습니다.
그가 돌연 자살로 생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동성연애자로 알려진 그는 자살 직전, 상대의 변심으로 고생했다고 합니다.
고통과 정면으로 맞서 나가는 대신, 죽음으로 회피해 버렸습니다.
‘감정이 피곤하여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도다 感情疲困 無心變愛世.’
그의 유서입니다.
자살이라는 막다른 선택에 이르게 된 심리상태를 여실히 드러낸 표현입니다.
그는 사랑을 단순히 감정의 수준으로 이해한 듯싶었습니다.
뭉게구름을 떠올랐다 사라져가는, 즉흥적인 감상의 수준으로 사랑을 판단한 셈입니다.
사랑은 이성과 감성의 완전한 결합체입니다.
우울하다고 사랑해야 할 당위성마저 상실했다면, 사랑의 본질을 크게 오해한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할 마음이 없도다.’
그는 왜 사랑의 의지를 스스로 꺾은 것일까요?
--- 「장국영의 선택」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