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치 고대로부터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의식이라도 발굴하듯이, 사춘기에 할 수 있는 최고의 게임을 찾아내고야 말았단다. 아주 간단하지만 무척이나 황홀한 병 돌리기 게임 말이야! 만약 내 기억이 맞다면, 1985년 7월의 어느 후텁지근한 밤이었을 거야. 여드름투성이인 10대 초반의 아이들이 열광의 도가니에 휩싸인 채 둥글게 모여 앉아 숨죽이고 있었지. 우리는 팽그르르 돌아가는 펩시콜라 병을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었어. 그 병이 멈추는 방향에 앉은 친구와 난처하게도 입맞춤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 방금 내가 돌린 병이 내가 3학년 때부터 무지무지 좋아해온 아만다 스튜어트를 향해 멈추자, 나는 꿈인지 생신지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어. 떨고 있는 어릿광대처럼, 눈을 감은 채 그녀를 향해 조금씩 다가갔지. 그런데 사실은 너무 서툴러서 들쭉날쭉한 내 치아교정기와 도마뱀같이 제멋대로 날름거리는 혀로 그녀를 찔러댄 셈이었단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나에게 어떤 변화가 온 것 같았어. 마치 내가 금은보화로 가득 찬 비밀의 방으로 통하는 문을 열기라도 한 것 같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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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끝나는 고통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아. 네가 좋아하는 노래나 아이스크림도, 가장 친한 친구나 네 아빠도 그 고통을 치료해줄 수는 없어. ‘첫사랑의 아픔’은 누구나 겪는 과정이거니와 하루하루 흘리는 눈물과 함께 쫓아내는 수밖에 없거든. 바라건대 네가 내 충고를 받아들여서 너를 사귈 만한 자격도 없는 녀석에게 너무 감정적으로 몰입하기 전에, 좀 더 기다렸으면 좋겠구나. 언젠가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야. 남자 친구를 고를 때는 꼭 상식을 발휘하겠다고 약속해주렴. 만약 네가 어느 날 밤에 축구를 잘하는 어떤 녀석을 집에 데리고 와서 너무 성급하게 관계를 해버린다면, 나는 권총으로 자살해버릴지도 몰라. 그러니 나를 위해서라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주기 바란다. 물론 그놈의 감미로운 미소와 앙증맞게 드러나는 송곳니를 무시하기 어렵다는 건 나도 잘 알아. 하지만, 남자 친구의 겉모습보다 그 아래에 숨은 영혼을 보려고 노력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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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콘돔을 역겨워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조그만 라텍스 조각의 사용 여부에 따라 해롭지 않은 경험을 할 수도 있고 후회로 얼룩진 삶을 살게될 수도 있어. 물론 콘돔이 성병이나 임신을 100퍼센트 막아주지는 못하지만, 꽤나 효과가 있거든. 콘돔은 쉽게 찢어질 수도 있고 우유처럼 유통 기한이 지났을 수도 있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해야 해. 콘돔이 사용 중에 찢어지면, 무방비 상태로 성관계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앞서 언급했던 모든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어. 나도 17살 때를 비롯해 그런 적이 몇 번 있었어. 여자 친구가 매달 치르는 행사를 기다리는 몇 주 동안 생지옥이 따로 없었지. 다행히도 최악의 경우는 피했는데, 10대에 아빠가 되면 어쩌나, 밤마다 울며 한동안 진땀을 흘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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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으로 사는 건 정말 힘든 것 같아. 나는 그 원인 중 하나로 사방에 98파운드(44.45킬로그램)의 완전무결한 슈퍼모델들이 보이는 것도 한몫한다고 생각해. 나도 잡지에서 근육이 울퉁불퉁한 남자 모델을 볼 때마다 하루 종일 터무니없는 괴물을 본 것처럼 느껴지는데, 여자아이들은 어떻겠어. 틀림없이 훨씬 더 심각하게 받아들일 거야. 학교에는 언제나 완벽한 피부와 놀라운 머릿결에 아름다운 몸매까지 갖추고, 가장 인기 있는 훈남을 남친으로 둔 여자아이들이 몇 명쯤 있게 마련이지. 특별하게 타고난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분명 너는 스스로가 역겹게 느껴지면서 끔찍하게 자신감이 없어질 거야. 그러나 내가 전에도 말했듯이, 누구나 결함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남들보다 자신의 결함을 간신히 더 잘 숨기는 것뿐이야. 네가 다른 사람의 결함을 겉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거든. 사람의 마음속 고통은 타인이 결코 알지 못하는 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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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에 블록 파티가 열렸어.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마약 버섯을 먹고 밴드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며 점점 미쳐갔어. 그때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드는 거야. 어깨너머로 슬쩍 보니 프랭키 스피넬 리가 티셔츠 차림의 기니 친구들과 함께 나를 쳐다보고 있더라고. 나를 향해 실실 웃으며 수군거리는데, 내 가슴을 터질 듯이 방망이질 치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온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어. 이때쯤 마약 버섯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지. 편집증적 망상으로 내 마음이 갑자기 전투적인 상태가 되었어. 나는 이 녀석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를 때려눕히려고’ 왔다고 정말로 믿었어. 두려워서 온몸이 얼어붙은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자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내 친구들조차 나를 지켜보며 은밀히 나를 죽이려고 모의하는 것같이 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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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폭력적인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도 여자아이들이 맨 처음 하는 생각은 안일하기 그지없어. “폭력을 당하면서도 왜 그 관계를 유지하는 걸까?” 또는 “그런 일은 절대로 나한텐 일어나지 않을 거야!” 너도 이렇게 생각하진 않았니? 내가 담임을 맡았던 수많은 중학생들에게도 이와 똑같은 말을 들었거든. 정말로 그들은 폭력을 당하고 있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스스로 이런 똥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는 걸까? 자신들의 삶을 결국 고통스러운 지옥으로 만들어버릴 사람인 걸 알면서 어느 날 문득 관계를 하기로 결심했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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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0대였을 때, 우리 아버지는 매일 한결같이 나에게 두 가지 당부를 하곤 했어. 한 가지는 “오일을 점검해라”였는데, 이건 내가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어. 또 다른 한 가지는 바로 이거야. “네가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상관없지만, 복리 후생이 좋은지는 꼭 확인하렴.” 나는 17살 때 복리 후생이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단다. 때문에 꼭 그렇게 하겠다고 각오를 다짐했고, 너에게도 확신을 가지고 바로 지금 말해주는 거야. 우리 아빠가 100퍼센트 옳았다는 것을 곧 배웠거든. 복리 후생이란 너를 고용한 직장이 너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야. 건강 보험, 치과 보험 혜택, 퇴직자 연금제도, 유급 병가/휴가, 주식 배당 같은 것들을 말해. 나는 1996년 겨울에 롱아일랜드에 수십 년 만에 최악의 눈보라가 몰아쳤을 때 복리 후생 혜택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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