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을사조약
정식 이름은 ‘한일 협상 조약’으로 1905년 11월에 대한 제국과 일본이 체결한 조약이에요. 1905년 을사년에 체결되었다고 해서 ‘을사조약’이라고도 불리고, 일본이 대한 제국을 보호하는 나라가 된다는 의미에서 ‘을사 보호 조약’이라고 하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을사조약이 강압적으로 체결되었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억지로 하다’라는 의미의 ‘늑(勒)’ 자를 써서 ‘을사늑약’이라고도 불러요.
조약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조약을 체결한 사람이 누군지 확인해 보세요. 조약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조약을 체결한 사람의 이름이 나와 있어요. 이상한 점을 발견했나요? 조약을 체결한 사람이 대한 제국의 고종 황제가 아닌 외부대신 박제순이에요.
조약이 체결되기 전,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 황제를 만나 조약을 승인하라고 요구했어요. 그러나 고종 황제는 이를 거부했지요. 그러자 화가 난 이토 히로부미는 대신들을 불러 어전 회의를 열고 위협했어요. 여덟 명의 대신 중 다섯 명의 대신이 을사조약에 찬성했어요. 이때 조약 체결에 찬성한 박제순·이지용·이근택·이완용·권중현 다섯 명의 대신을 ‘을사오적’이라고 해요. 을사년의 다섯 명의 적이라는 뜻이지요.
이처럼 을사조약은 대한 제국을 대표하는 고종 황제가 체결한 조약이 아니었어요. 고종 황제는 끝까지 승인하지 않았지요. 조약이란 나라와 나라가 맺는 약속이에요. 그래서 조약의 체결은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또는 그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이 해야 해요. 그렇지 않다면 조약은 효력을 가질 수 없어요. 그리고 을사조약은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억지로 체결된 조약이었어요. 이런 이유들로 을사조약이 효력을 갖는 제대로 된 조약으로 볼 수 없다는 거예요.
을사조약의 내용을 저세히 살펴볼까요? 1조와 2조의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관계를 맺고, 약속할 수 있는 권리를 일본이 대신 갖는다고 되어 있어요. 이 말은 대한 제국이 외교권을 갖는 독립된 나라가 아니라, 일본의 간섭과 지배를 받는 나라가 된다는 뜻이었어요. 을사조약 체결 이후 외국에 나가 있던 우리나라 외교 기관이 전부 폐지되었고, 우리나라에 있던 공사들은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갔지요.
3조를 보면 정치, 군사와 관련된 모든 일을 통솔하는 통감을 둔다는 내용도 있어요. 이 조항에 따라 1906년에 통감부가 설치되고 첫 번째 통감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취임했어요.
외교권 박탈과 통감부 설치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을사조약은 우리나라를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첫 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국민들은 분노하고 저항했던 것이지요.
을사조약 체결 이후 일본은 대한 제국의 군대를 해산시키고, 경찰권과 사법권도 차례로 빼앗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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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임시 헌법
독립 선언서를 발표한 3·1 운동은 일본에게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어요. 또한 조직적인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우리 민족이 깨닫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지요.
조직적인 독립운동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임시 정부를 세우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서울, 중국 상하이에 임시 정부가 세워졌는데, 1919년 9월에 상하이 임시 정부로 통일이 되었어요.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대통령제를 도입하고 입법·행정·사법의 삼권 분립(국가의 권력을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으로 분리하여 서로 견제하게 함으로써 권력의 남용을 막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 조직의 원리)에 기초해 정부를 구성했어요. 첫 번째 임시 대통령은 이승만이 맡았지요.
그러나 이승만은 독립운동의 방법을 놓고 이동휘, 신채호, 안창호 등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갈등을 빚었어요. 결국 이승만은 1925년에 탄핵(대통령·국무 위원·법관 등을 국회에서 소추하여 해임하거나 처벌하는 일)되어 대통령에서 물러났어요. 이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혼란에 빠졌지요. 이 혼란을 수습하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다시 일으킨 사람이 김구였어요. 김구가 주석을 맡으면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 한국광복군 조직 등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며 독립운동의 중심이 되었어요. 그리고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독립이 된 이후에 해야 할 일도 준비했지요.
대한민국 임시 헌법은 1919년 9월에 상하이 임시 정부로 통일되고 공포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헌법이에요. 1919년 4월 상하이 임시 정부가 만든 대한민국 임시 헌장의 내용을 보완해 헌법으로 바꾼 것이지요. 대한민국 임시 헌장은 총 10개 조로 간략한 내용이었지만, 대한민국 임시 헌법은 총 8장 58조로 그 내용이 많아졌어요. 대한민국 임시 헌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나라 이름은 ‘대한민국’으로 하고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 공화국’ 정치 체제로 정했음을 알 수 있어요. 또한 3조와 7조의 내용을 보면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대한 제국을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어요. 3장의 내용을 보면 대통령제를 택한 정부 형태라는 것도 알 수 있지요. 대통령제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정이 운영되는 정부 형태예요.
이후 대한민국 임시 헌법은 그대로 유지된 것이 아니라 바뀌었어요. 그리고 광복을 맞으며 새 헌법이 만들어졌지요.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헌법의 기틀을 만든 아주 중요한 헌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사실은 헌법 전문에서도 밝히고 있답니다.
- 대한민국 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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