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리사 옆에 서 있는 스무 살 정도 돼 보이는 두 소녀는 서로 얽혀 몸을 구부리고 있고, 둘 다 할인점에서 구입한 연한 색깔의 가방을 지고 있다. 이 아이들도 자라서 중년이 되고, 그러다 보면 늙게 되어 시들거나 아니면 뚱뚱해질 것이고, 결국 그들이 묻힌 묘지는 폐허로 피폐해지고 풀이 무성하게 자라, 밤이면 개들에게 뜯어 먹히게 될 것이다.
--- pp 81
로라는 자신이 남편을 위해서 산 선물들을, 남편이 고맙다고 말하고 심지어 소중히 간직하긴 하겠지만 결코 진정으로 원한 것은 아닌 그 선물들을 생각해 본다. 왜 그와 결혼했을까? 그녀는 사랑으로 그와 결혼했다. 죄의식에서, 혼자 남을까 두려워서, 애국심에서 그와 결혼했다. 한마디로 결혼을 하지 않기에는 그라는 존재가 너무도 선량하고, 너무도 친절하고, 너무도 진지하고, 너무도 달콤했다. 그는 너무도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리고 그도 그녀를 원했던 것이다.
--- pp 163
1965년이었다. 남에게 베푼 사랑은 그와 똑같은 사랑을 몇 배로 증식시킬 것이다. 적어도 그게 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그대가 그들을 원하고 그들이 그대를 원할 때, 왜 그들과 섹스를 나누지 않는가? 그래서 리처드는 루이스와 계속 관계를 가지면서도 그녀와 새롭게 관계를 시작했는데, 그것도 옳은 일로 느껴쪘다. 그저 옳은 일로 말이다. 그렇다고 섹스와 사랑이 까다롭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한 예로, 루이스를 사랑하려던 클라리사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그도 그녀한테 관심이 없었고, 그녀 역시 그의 준수한 용모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 들 다 리처드를 사랑했고, 그들 둘 다 리처드를 원했으며, 그게 아마 그들 사이의 끈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연인이 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리고 그들 둘은 그해 여름 내내, 그리고 리처다가 클라리사와 함께 하지 않는 날 밤에, 루이스가 리처드하고만 같이 쓸 침대에서 그 짓거리를 할 만큼 순진하지는 못했다.
--- pp 148
어쩌면 이렇게 멋있을 수가! 대기에 몸을 던지는 상큼함이란! 대기에 몸을 던지는 것이란! 돌쩌귀의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프랑스 식 창문들을 활짝 열어젖히고 부어턴의 대기 속으로 뛰어들 때마다 그녀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이른 아침의 공기는 매우 상큼하고 상쾌했으며, 당연히 지금보다 더 고요했다. 물살의 키스 같고, 서늘하고 날카로웠고, 더욱이 그 당시 열여덟 소녀였던 그녀에게는 엄숙하게까지 느껴졌다. 활짝 열린 창가에 선 그녀는 뭔가 무서운 일이 막 일어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던 것이다. 꽃, 가느다랗게 피어오르는 연기에 묻힌 나무들과 하늘을 솟아올랐다가 내려앉곤 했던 까마귀 떼를 바라보면서. 피터 월슈가 다가와서 말을 걸 때까지 그녀는 그렇게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채소밭에서 명상중인가요?" 그렇게 말했던가? 아니면 이렇게 말했던가? "나는 양배추꽃보다 사람을 더 좋아하는데."
어느 날 아침, 그녀가 테라스로 나갔던 날 아침 식사 시간에 틀림없이 그가 그렇게 말했다. 피터 월슈가 말이다. 그런 그가 머지 않아 인도에서 돌아오게 되어 있었는데 그게 6월인지 7월인지 그녀는 까먹고 말았다. 그의 편지가 너무나 재미었었기 때문이었다. 기억나는 것은 그의 말뿐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신기할 수가 있담! 그의 눈, 주머니칼, 미소, 까다로운 성격, 그리고 수많은 것들이 완전히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는데도 양배추에 관한 이야기 같은 그의 말 몇 마디가 떠오르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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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깊숙이 숨을 들이킨다. 너무나 아름다워 너무 너무 ... 다른 어떤 것보다도, 정말로. 다른 세상에서라면 그녀는 책을 읽으며 자신의 인생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새로운 세상, 구원받은 세상이 아닌가. 게으름이나 피우고 있을 여유가 별로 없다. 너무나 많은 것이 위태로워졌고 잃어버리기도 하지 않았는가. 그토록 많은 사람이 죽었고.
--- pp 6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