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1902년 6월 20일 사망 1950년 9월 25일 (48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또는 대한민국 경기도 양주군 이담면으로 추정(사인은 폭사로 추정) 직업 시인 국적 대한제국(1902~1910) 대한민국(1948~1950) 학력 도시샤 대학 영문과 종교 천주교(세례명: 방지거) 필명 아명(兒名)은 정지룡(鄭池龍) 활동기간 1926년 ~ 1949년 부모 정태국(부), 정미하(모) 배우자 송재숙(宋在淑) 자녀 장자 구관(求寬), 차자 구익(求翼), 삼자 구인(求寅), 장녀 구원(求園)
이력 1902년 (0세) 6월 20일(음력 5월 15일)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40번지에서 정태국과 정미하의 장남으로 태어남. 1910년 (8세) 옥천공립보통학교(현재 죽향초등학교) 입학. 1913년 (11세) 동갑인 송재숙과 결혼 1914년 (12세) 옥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함. 1918년 (16세)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함. 학교성적은 우수하고 집안이 어려워서 교비생(校費生)으로 학교를 다녔음. 1922년 (20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함.마포 하류 현석리에서 첫 시작품인 〈풍랑몽〉을 씀. 1923년 (21세) 일본 교토시의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입학함. 1924년 (22세) 시 〈석류〉· 〈민요풍 시편〉을 씀. 1925년 (23세) 〈새빨간 기관차〉· 〈바다〉등을 씀. 1926년 (24세) 《학조》 창간호에 〈카페 프란스〉등 9편의 시, 《신민》· 《문에시대》에 〈Dahlia〉· 〈홍춘〉 등 3편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활동을 시작. 1927년 (25세) 〈뻣나무 열매〉· 〈갈매기〉 등 7편의 시를 교토와 옥천을 오가며 씀. 《신민》· 《문에시대》· 《조선지광》· 《청소년》 · 《학조》 지에 〈갑판우〉· 〈향수〉등 30여편의 시를 발표함. 1928년 (26세) 장남 정구관 출생(음력 2월). 《동지사문학》 3호에 일어시 〈馬1· 2〉를 발표함. 1929년 (27세) 도시샤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귀국함. 12월에 시 〈유리창〉을 씀. 1950년 (48세)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정치보위부로 끌려가 구금됨. 정인택, 김기림. 박영희 등과 서대문형무소에 수용되었다가 평양 감옥으로 이관되는 도중 또는 이관된 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