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역사의 교훈
---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에 나오는 멸망과 흥성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거의 일치된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지혜로운 민족은 후손에게 역사를 가르친다. 역사를 망각하는 민족은 불행의 역사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역사를 무시하는 민족은 그 역사의 융성기의 강점을 결코 다시 누리지 못할 것이다. 제왕들의 책사는 일종의 역사서이다. 역사 전체를 다루지 않고, 중요 인물 중심으로 다룬 특이성이 있다. 그래서 농축된 지혜를 얻기에 용이하다. 조선, 고려, 삼국시대의 3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별히 고려시대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궁예가 성공적으로 새로운 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궁예의 매력적인 구호 때문이다. "부패와 억압으로부터의 민중해방"을 추구하는 미륵정토 구호의 매력이다. 구호가 좋으면, 사람들을 흥분시키게 된다. 구호란 무엇인가?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붙이는 가장 짧은 요약된 메시지이다. 시대를 움직이는 사람은 대개 강력한 카피라이터일 경우가 많다. 카피의 생명은 '핵심 파악'과 '요약 능력'이다. 둘째, 궁예의 보편성 추구이다. 미륵정토를 통해 어느 누구나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접근을 했다. 어느 한 집단만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품는 보편성이 빠른 시간 내에 세력을 결집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셋째, 고구려 영토회복과 부패한 신라 타도라는 명분이다. 아무리 강력한 무력집단이라 하더라도 명분 없는 싸움은 지게 되어 있다. 궁예는 명분을 가지고 싸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고려의 기반을 닦았다는 4대 광종의 강점은 무엇인가? 우선, 후주 사람 쌍기를 등용한 것을 들 수 있다. 쌍기는 후주를 개혁한 경험이 있다. 탁월한 행정가였다. 광종은 쌍기의 제안으로 말미암아 호족들의 세력을 적절하게 견제하고 중앙집권화를 이룰 수 있었다.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여 호족의 경제적 기반을 제거했다. 또한 과거제를 통해서 권력의 원천인 관직을 혈통이 아닌 능력에 의해서 뽑도록 만들었다. 광종은 모방을 통해서 성공을 이끌었다. 모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창의력이 없으면 모방이라도 제대로 하면 낙오는 되지 않는다. 독창적인 창의력이 없는가? 영감을 가지고 모방만 해보라. 결코 뒤지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6대 성종의 탁월함은 어디에 있는가? 보통 각 왕조마다 가장 혁혁한 기여를 하고 나라의 기틀을 잡은 왕에게 성종이라는 시호를 붙인다. 고려의 성종도 마찬가지로 국가의 위용과 체제를 정비한 왕이다. 언제나 구호는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구호만 가지고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구호에 깃든 정신을 기반으로 '제도화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민족은 감정에 불이 쉽게 붙는다. 이런 다이나믹은 우리 민족의 강점이다. 그러나 냉철하게 이성을 가지고 제도화하고, 매뉴얼화하는 데는 약하다. 그래서 장기전에서는 무력하다. 우리 민족에게는 성종 류의 이런 체계적인 제도화의 작업이 항상 절실하다. 성종은 선진제도를 도입하고, 법률체제를 정비한다. 그리고 군현제를 실시하여 국가 전체를 다 관할하는 제도를 만든다. 제도화, 매뉴얼화, 이것이 바로 성종의 탁월성의 뿌리이다.
성종은 무엇보다도 인재를 제대로 등용할 줄 알았다. 성종 대의 최승로가 바로 그 사람이다. 최승로는 조금 깊이 연구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광종 때의 쌍기 이후 고려는 지나치게 외국에 의존하는 정책을 펼쳤다. 항상 그렇듯이 토착적인 인재보다 더 나라의 상황을 이해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재원은 없다. 최승로는 당시에는 특이하게도 국내파 학자였다. 전혀 외국 유학경험이 없는 사람이었다. 최승로는 토착적 정서를 지닌 개혁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시무28조'를 올려 가장 국내에 맞는 효율적인 정책을 펼친다. 또한 최승로의 강점은 그의 긍정적인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최승로는 역대의 왕의 장점을 분석하고, 그 강점을 가지고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태조는 넓은 도량과 포용력, 혜종은 왕족간의 각별한 우애를 강조한 점, 정종은 사직을 수호하려는 강한 의지, 광종은 공평무사한 정책, 경종은 현명한 판단력의 사람이었다고 평가한다. 최승로는 강점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최승로는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비난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장점을 파악하고 그 장점을 본받으려는 긍정적인 태도의 사람이었다. 바로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이 이런 최승로와 같은 태도의 사람이다. 눈이 바뀌어야 한다. 눈이 바뀌면 세상이 바뀌게 되어 있다. 피터 드러커의 말이 기억난다. "강점을 기반으로 세우라"(Build on your strength)
성종 대에 또 하나 놓쳐서는 안될 인물이 서희라는 탁월한 외교관이다. 거란의 소손녕이 대군이 이끌고 와서 거의 저항없이 서경을 점령하고, 개경까지도 함락의 위기에 놓였다. 소손녕은 고려 조종에 항복을 권유하는 문서를 보낸다. 평상시에 큰소리치던 대신들도 이런 위기에 처하자 모두 고려의 땅을 내어주자는 '할지론'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논쟁만 일삼는 사람은 진짜 위기에 처했을 때,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귀중한 교훈이다. 이때 서희가 등장한다. 서희는 흥분하기 보다는 당시의 국제정세를 분석한다. 그리고 거란의 본심이 무엇인지를 탐지한다. 서희는 여러 분석을 통해 거란의 본심은 고려를 점령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원의 송나라를 제압하는데 있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는 소손녕을 만나 담판을 벌인다. 고려는 고구려의 후예이고, 거란과는 과거 발해를 통해 한 나라를 이루었던 혈족이라는 논지를 편다. 오히려 거란이 고려의 점령한 땅을 돌려주어서 형제의 우애를 유지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그런 작업을 통해서 동쪽 전선을 안정화시키고, 중원을 도모하는 것이 거란이 취해야 할 정책이라고 설득한다. 결국 이 설득이 통해서 영토를 빼앗기고 항복해야 할 처지에서, 서희의 세치 혀로 인해 강동 6주를 더 얻게 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소리 지르고 구호외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분석과 명확한 판단을 통해서 실리를 추구하는 이런 서희가 일어나야 한다. 지금 우리는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시대의 난제를 풀어가는 21세기의 서희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