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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경이 아니라 경찰관입니다 (큰글씨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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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경이 아니라 경찰관입니다 (큰글씨책)

장신모 | 행성B | 2020년 06월 26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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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6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210*297*20mm
ISBN13 9791164710256
ISBN10 116471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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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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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을 사랑하면 할수록, 경찰을 이해하면 할수록 틀 안에 갇혔다. 점점 마음 쓰는 일에 인색해지고, 누가 마음을 내비치면 의심부터 하는 직업병을 앓았다. 그렇게 지극히 ‘정상적인’ 경찰관의 길로 접어드는 중이었다. 이 길로 가야 성공도 하고, 인정도 받을 텐데 묵직하게 밀려오는 거부감의 정체는 뭘까? --- p.6~7

세상은 내게 말했다. 당신은 원서 쓸 자격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그 세상을 뛰어넘어 원서를 썼고, 스스로 자격을 얻어 냈다. 그 원서는 경찰대로 가는 열쇠가 아니었다. 내 인생을 열고, 당차게 나아갈 수 있는 꿈의 관문이었다. --- p.32

중앙경찰학교의 입교는 곧 현실이었다. 꿈을 신고하고 이를 검증받는 관문은 예사롭지 않았다. 먼저 외모와 복장, 태도가 경찰답게 변했다. 입교 첫날, 검은색으로 머리칼을 강제적으로 염색 당하는 교육생도 있었고, 소소한 잡담이나 웃음이 발각되면 오리걸음을 해야 했다. 군대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 일상에서 펼쳐졌다. --- p.53

“여자랑 말이 안 통하네. 남자 경찰관으로 바꿔.” 흔히 듣는 말이라서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지만, 사실 당사자에게는 비수처럼 꽂히는 말이다. 지켜보다 자리를 박차고 후배 뒤로 갔다. 내가 겨우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경찰관에게 반말하지 마세요!” 정도였다. 그분에게나 역시 말 안 통하는 여자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 p.76

여전히 성희롱이나 성범죄의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고, 여경이다. 어떤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피해자 전수조사가 시행된다. 물론 여자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사후 예방을 위해서라도 당연히 필요한 절차지만, 그때마다 피해자가 아닌 여성들도 덩달아 불편함을 느낀다. 잠정적 피해자는커녕, 잠정적 가해자로 눈치받기 일쑤다. --- p.82

누가 시킨 적도 없는데 ‘여경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며 살았다. 무엇을 하든, 어떤 말을 하든 내가 여경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며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왜 굳이 여경이라서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살았던 걸까? 14년째 여경으로 살고 있지만, 여전히 어떻게 사는 게 정답인지 모르겠다. --- p.94

경찰은 의도하지 않게 타인의 삶에 깊이 관여한다. 대부분 업무적으로 스치며 지나가지만 어떤 삶은 긴 여운으로 남아 경찰관의 삶까지 움직이게 한다. 삶의 무게가 기어코 자국을 남기기 때문이다. --- p.102

기동대 버스는 늘 조용히, 소리 없이 떨고 있었다. 진동은 여경들의 생리불순을 유발하고, 허리 통증을 악화시키지만 모두 삼키듯 감내한다. 묵묵히 버티는 것이 기동대 업무 중 8할을 차지한다. 진동도, 멀미도, 태양도 다 좋다. 심지어 현장 상황에 따라 커튼 하나만 치면 탈의실로 탈바꿈하는 버스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긴장감이 모든 것을 덮어버리니까. --- p.117

집회는 최절정에 달했다. 무전으로 전해져 오는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기동대 버스들이 하나둘 공격을 당했다. 창문 파손, 타이어 탈취는 물론 주유구 속으로 화기를 넣으려고 시도했다. 머리 위로 보도블록이 날아들었다. 물통이나 소지품으로 수시로 맞아봤지만 보도블록까지……. 경찰 검문에 걸려 시위용품들을 빼앗기자 급기야 인도에 있던 보도블록을 떼어냈다. 하기야 도로에 박혀 있던 휴지통까지도 뽑았으니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 p.123~124

부부 경찰, 맞벌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 고단하다. 부부 경찰은 한 사람이 일정 계급 이상 올라가면 ‘나머지 한 사람’은 휴직이나 명예퇴직을 종용당한다. 통상 ‘나머지 한 사람’은 여경이 되는데, 남편의 앞날에 조금이라도 누가 되어선 안 된다는 취지다. --- p.140

얼굴에 침이 아니라 칼을 뱉는 듯했다.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주변 소음에 묻혀 나만 위협하는 폭력성에 소름이 끼쳤다. 차라리 큰 소리로 말했다면 동료라도 눈치챘을 텐데 말이다. 교통민원실에서 근무하면서 ‘감정 노동자’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하루에 열두 번이 넘게 더 욕을 먹고 나면 정신이 혼미하다. 경찰관이라는 이유로 일단 맞고 보는 비난의 화살, 나의 잘잘못과 상관없이 사과부터 해야 더 큰 화를 면하는 현실이다. --- p.162

요즘은 순찰차에도 열선이 들어온다. 따뜻한 온기는 오히려 현장에 도착했을 때 맹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순찰차에서 데워진 몸이, 현장에 내리는 순간 갑자기 몰려오는 한기에 방어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열선을 끄고 긴장한 상태에서 근무하는 것이 오히려 건강에 득이 된다. --- p.175

현행법은 술에 관대하다. 취했다는 이유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잘못해도 쉽게 법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죄를 지어도 술을 마시면 감경해 주니 세상이 점점 비틀거린다. --- p.179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건물 아래에서 근무하던 경찰관 머리 위로 물컹한 무언가가 떨어졌다. 본사를 점거하고 있던 시위자들이 대소변을 모아 던진 봉투였다. 비가 강물처럼 출렁거리고 노폐물이 그 위를 둥둥 떠다녔다. 그 이후로 김치나 쓰레기를 마구마구 내던졌다. 죽창보다 날카롭고 혐오스러운 흉기가 폭탄처럼 머리 위로 떨어졌다. --- p.191

때론 경찰도 동요한다. 딱한 사정,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연 등을 만날 때면 소리 없이 흔들린다. 어렵게 번 돈을 과태료로 내는 건 나 역시 안타깝다. 하지만 ‘진심’ 감경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린 판사가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이고, 뜨거운 진심도 냉정하게 판단해야 하는 처지다. 냉정한 판단에 속상해할 분들도 있겠지만 경찰관의 진심을 통해 ‘심리적 감경’이라도 꼭 받고 가셨으면 좋겠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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